1분기 성장률 0.3%, 15개월 연속 무역적자, 5월 근원물가 3.9%…. 최근 우리 경제를 보여주는 각종 경제 지표들이다. 수출 등 성장 동력은 부진한 가운데 물가는 잡히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경제 컨트롤타워’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을 언급할 만큼 올해 우리나라 경제는 역대급 저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4월까지 국세수입은 전년과 비교해 34조원가량 줄었다. 경기 둔화 상황에서는 확장적 재정운용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물가 안정과 재정건전성 확보를 강조하며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엔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야당을 중심으로 추경 편성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돈 풀기라는 지적도 있지만, 경기 전망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만큼 추경을 통한 경기 부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줄줄이 하향
12일 기재부 등에 따르면 국내외 기관들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하향 조정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기존 전망에서 0.1%포인트 하향한 1.5%로 전망했다. OECD의 이러한 결정은 중국의 리오프닝, 에너지·식량 가격 하락 등을 이유로 세계 경제성장률을 2.7%(0.1%포인트↑)로 상향 전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OECD뿐이 아니다. 올해 1.6% 경제성장을 예측했던 한국은행은 지난달 1.4%로 전망치를 낮췄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기존 전망치보다 0.3%포인트 낮춘 1.5%를 전망했고, 국제통화기금(IMF)도 기존보다 0.2%포인트 내린 1.5%로 경제성장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이처럼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 전망이 어두워지는 이유는 무엇보다 수출 부진에 있다. 특히 대중국 무역 및 반도체 수출이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에 따르면 한 해(2013년) 최대 628억달러(82조여원)까지 흑자를 기록하던 대중국 무역수지는 올해 1∼5월 적자만 약 130억달러에 달한다.
게다가 우리나라 총수출의 20%가량을 담당하던 반도체 수출이 올해 1~4월에 전년동기 대비 40.3% 감소했다. 2016년 이후 처음으로 반도체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5% 이하로 떨어졌다. 국내 반도체 수출의 약 40%를 차지하는 큰손이었던 중국이 구매량을 줄인 영향이 크다.
무역적자로 나타나는 경기 부진은 세수결손으로 나타났다. 올해 1∼4월 법인세수는 전년 동기 대비 16조원가량 줄었고, 소득세도 9조원 가까이 빠졌다. 지난해 말부터 상반기 내내 이어진 수출 역성장에 비춰봤을 때 8월 법인세는 더욱 줄어들 공산이 크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바닥을 찍은 올해 상반기 실적에 조세특례 등 각종 세액공제까지 소급적용되는 8월 법인세는 상반기보다 더 안 좋을 것이 자명하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정부는 “추경 없다”지만, 국회 등 요구 잇따라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지만 정부는 추경 편성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는 지난 8일 관훈토론에서 “추경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세계잉여금 남은 부분과 기금 여유 재원 등을 활용해 가능한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이전에는 ‘자연스러운’ 불용액(미집행 예산) 활용을 언급하기도 했다.
정부가 선뜻 추경 의사를 밝히지 못하는 이유는 그동안 여러 차례 강조해온 ‘재정 건전성’ 기조 때문으로 해석된다. 여기에 세수 결손에 따른 재원 마련이 어려운 현실도 있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가 그동안 전 정권의 방만한 행정을 비판하며 정반대인 ‘알뜰한 행정’을 기치로 삼아온 탓에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추경 편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35조원 규모 추경 편성을 제안했다. 이 대표는 “고금리 피해 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약 12조원, 고물가·에너지 요금 부담 경감을 위한 약 11조원, 주거 안정을 위한 약 7조원 등을 비롯해 미래 성장과 경기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할 재생에너지·디지털·SOC(사회기반시설) 인프라 투자,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까지 합쳐서 약 35조원 정도의 추경 편성이 시급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부가 강조하는 재정건전성 때문에라도 추경을 하는 것이 맞다”며 “내핍 생활을 해서 기초체력을 손상시키는 것은 국가 경제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했다.
경제학자들도 대체로 추경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한국재정학회 이사를 맡은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일반 가정과 달라 예정된 예산을 집행하지 않을 경우 알뜰한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률을 갉아먹는다”며 “만약 한국 GDP에 1%에 달하는 20조원을 불용할 경우 경제성장률이 1% 떨어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도 “(한국 정부는) 가뜩이나 예산을 빠듯하게 잡는데 여기서 불용까지 한다면 오히려 성장세가 더 떨어질 수 있다”면서 “주요 기관들이 성장률을 낮추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를 살리려면 추경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