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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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대사 조치’ 요구에 中 ‘사실상 거부’…‘싱하이밍 사태’ 일파만파

“우호 증진의 태도 있는지 의심”
외국인 투표권·건강보험적용 등
상호주의 맞는 제도개선도 언급

中 “싱 대사 직무 화제 돼선 안 돼”
韓 ‘조치’ 요구 사실상 거부 시사

정부, 對中외교 ‘원칙 고수’ 강경입장
中 ‘수용 불가’ 밝히면서도 확전 자제

여권 “외교관 자격 재고해야할 사안
위안스카이 내정 간섭 맞먹는 치욕”

美 “싱 발언, 韓 압박 전략으로 사용
한국은 적절한 외교 결정 권리 있어”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내정간섭 논란을 일으킨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에 대해 외교적으로 부적절했다면서 불쾌감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1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싱 대사의 최근 발언을 언급하며 “외교관으로서 상호존중이나 우호 증진의 태도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싱 대사의 부적절한 처신에 우리 국민이 불쾌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여권 내에서 ‘싱 대사 추방’ 주장까지 나오는 와중에 윤 대통령이 직접 싱 대사의 발언을 문제 삼고 나서면서 싱 대사의 거취 문제가 한·중의 외교 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또 “(한·중 간에) 상호주의에 맞도록 제도 개선을 노력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선거 투표권이나 건강보험 적용 등에서 양국 간에 상호주의에 위배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을 고려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24회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이날 브리핑에서 싱 대사의 발언과 관련해 “대한민국은 헌법 정신에 기초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 동맹국들과 협력하고 있고, 이와 동시에 (그렇지 않은 국가들과도) 상호존중과 호혜원칙에 따라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간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며 “그런 정책이 편향적이고 특정국가를 배제하는 것처럼 곡해된 발언을 했기에 논리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에 와 있는 최고위 외교관으로서 아무리 (상대국 외교정책에) 문제점이 느껴진다 하더라도 그것을 비공개적으로 풀어가면서 협의하고, 국민들 앞에선 (외교관의 의무를 규정한)비엔나협약 정신을 지켜가면서 우호적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데 (국제 협약에도) 어긋난 점이 있었다”며 “중국 측이 이 문제를 숙고해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싱 대사는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만찬 회동에서 “미국의 승리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취지로 말하며 내정 간섭 논란이 일었다. 윤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의 싱 대사 비판 기류에도 중국은 싱 대사에 대한 징계나 소환 등의 조치는 없을 것임을 시사해 싱 대사를 둘러싼 한·중 외교 갈등이 증폭될 전망이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사가 한국의 각계각층 인사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은 그 직무이며, 그 목적은 중·한 관계의 발전을 유지하고 추동하는 것으로, 대대적으로 부각할 화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오른쪽)가 지난 8일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예방을 받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싱하이밍 사실상 ‘기피인물’ 간주 … 여권선 추방까지 요구

 

윤석열 대통령이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이른바 ‘베팅’ 발언이 외교적으로 부적절했다고 지적한 내용이 13일 알려지면서 이 문제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이는 한국 정부가 싱 대사의 교체를 중국 측에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풀이되며, 여권은 그의 추방까지 요구하는 강경 분위기다.

 

중국은 우리 측 요구를 수용할 뜻이 없음을 밝히면서도 확전은 자제하는 모양새이지만 주재국서 문제를 일으킨 대사 거취는 파견국이 결정하는 게 관행이라서 중국 측의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싱 대사의 발언을 언급하며 외교관으로서 상호존중이나 우호증진 의사가 있는지 의심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복수의 참석자가 전했다. 이는 정부가 사실상 싱 대사를 외교적 기피인물(PNG·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중국과의 외교에 ‘원칙’을 고수하며 당분간 강경 입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싱 대사나 중국 외교부가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절대 묵과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통화에서 싱 대사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회동에서 한 발언에 대해 “정치인과 회동한 자리에서, 언론이 입회한 자리에서 국내적 개입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는 잘못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문제 삼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진=연합뉴스

외교부는 당초 하반기 한·중 관계를 관리하고 고위급 회담 등을 통해 재구축하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었다. 이와 별개로 이번 일처럼 외교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적극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이날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우리 정부는 주한 대사가 정치인을 접촉한 것에 대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아니다”며 “외교 사절의 우호관계 증진 인물을 규정한 비엔나 협약과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매우 부적절한 언행으로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내정 간섭에 해당할 수도 있는 만큼 이에 대해 엄중한 경고와 강한 유감을 표명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외교부 당국자는 “(싱 대사에 대해) 특정 조치를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니다”며 “주한 대사의 언행이 적절하지 않았고 비우호적이었기 때문에 엄중한 경고를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추진하던 연말 한국, 중국, 일본 정상회의와 관련한 질문에는 “3국 간 협력이 중요하다는 데 한·중·일 3국은 공감대를 갖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의장국으로서 3국 간 협의체의 재활성화를 위해 관련국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해 나갈 예정”이라고 원론적으로 답했다.

 

여당은 한층 강경 기조다. 국민의힘은 이날 싱 대사를 PNG로 지정하고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이철규 사무총장은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지난 6월 8일(싱 대사와 이재명 대표가 만나 베팅 발언이 나온 날)은 조선 말기 청나라의 위안스카이가 조선에 내정 간섭한 것에 버금가는 치욕적인 날”이라며 “싱 대사의 무례한 태도와 언행은 부적절한 정도를 넘어 외교관의 자격마저 재고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는 아울러 ‘1박당 1000만원 숙박시설 접대’ ‘코로나 방역수칙 위반 대기업 임원 만찬’ ‘공관원 숙소 부지 주차장 전용 및 탈세’ 등 싱 대사 관련 의혹을 짚은 언론 보도를 인용, “이 같은 의혹이 사실이라면 국제협약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간사인 김석기 의원은 “싱하이밍 대사의 공식 사과를 요구, 이에 응하지 않거나 이런 무례가 반복된다면 PNG로 지정해 추방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외교부에 촉구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가 싱 대사에 대한 중국 측의 입장을 묻는 질의에 즉답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싱 대사 관련 한국 언론 보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일부 매체가 싱하이밍 대사 개인을 겨냥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인신공격성 보도를 했다”고 지적했다. 싱 대사의 한국 관광지 무료 숙박 의혹 등 관련 보도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왕 대변인은 우리 정부 측이 간접적으로 피력한 대사 교체 필요성에 대해선 “싱 대사가 직무범위 내의 활동을 했다”는 식의 언급으로 수용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중국 정부가 한국에 대한 고압적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싱 대사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치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면서도 확전을 피하려 하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한국 측 대응에 힘을 실었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조정관은 12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싱 대사의 발언 논란과 관련해 “분명히 (중국의) 일종의 압박 전략이 사용된 것처럼 보인다”고 날을 세웠다. 싱 대사의 도발이 한국이 미·중 경쟁 관계에서 미국에 밀착하는 것을 막아보려는 중국의 메시지라는 설명이다.

 

그는 싱 대사가 이 대표에게 ‘미국의 승리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 중국이 한국에 대한 보복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한국은 독립적인 주권국가이며 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훌륭한 동맹이자 친구”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커비 조정관은 이어 “한국은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외교정책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현미·홍주형 기자, 베이징·워싱턴=이귀전·박영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