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마약사범 가운데 2000여명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마약중독 치료명령 처분을 받은 투약자는 15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하며 마약 단속에 힘 쓰고 있지만 마약 치료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대법원이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마약사범은 2075명으로, 이 가운데 치료명령이 부과된 건수는 15건(0.7%)에 그쳤다.
치료감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에 따라 법원은 2016년 12월부터 마약사범에 집행유예를 선고할 경우 마약치료도 명령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지난 4월까지 치료명령이 내려진 건수는 173건뿐이다. 같은 기간 집행유예 선고는 1만2011건이었는데 1.4%만 치료명령이 부과됐다.
치료명령 부과 건수를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7년 4건, 2018년 8건 수준에서 2019년 60건, 2020년 56건까지 올랐다가 2021년 23건, 2022년 15건으로 급감했다. 지난 1∼4월 동안에는 7건을 기록했다.
마약범죄는 재범률이 높은 강력범죄다. 지난 5년간 마약사범의 재범률은 꾸준히 30%대를 기록했다. 마약사범 3명 중 1명이 마약을 끊지 못하고 다시 손을 대는 셈이다. 마약 관련 전문가들이 “마약중독은 처벌보다 치료가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 겸임)는 “우리나라는 (마약사범에게) 수강명령만 내리는데 사실 수강명령은 상담 서비스 수준”이라며 “마약 중독은 치료회복이 필요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외에서는 단순 이용자는 비범죄화하고 의무적으로 치료를 받게 한다”고 부연했다. 실제로 지난해 1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마약사건 중 치료명령 부과 건수는 15건(0.7%)뿐이지만 수강명령은 1362건(65.6%)에 달했다.
치료명령 부과가 저조한 이유는 치료명령이 이행되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발간한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치료적 접근의 실효성 제고 방안’ 보고서는 “치료명령을 내리는 경우가 드문 원인은 치료병원 및 전문가, 중독재활센터가 부족한 탓에 치료명령 판결이 적절한 조치로 이어지기 힘들기 때문”이라며 “치료명령이라는 제도는 마련됐지만 제도 실행을 위한 적절한 인프라가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10월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치료보호 지원 예산을 기존 2억1000만원에서 4억1000만원으로 증액했다. 하지만 보고서는 “마약류 중독자 1명이 1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을 때 최소 비용이 500만원임을 고려하면 증액한 예산도 부족한 규모”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에서는 마약류 사용 및 중독에 대해 처벌보다 치료 중심의 정책을 국가가 주도해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국가 주도로 관련 인력을 양성하고 치료 병원과 재활 센터를 증설하는 치료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서영석 의원은 “윤석열정부의 ‘마약과의 전쟁’은 마약사범을 잡아서 처벌하는 데만 급급하고, 마약중독자를 치료해서 사회에 복귀시키는 데에는 소홀하다”며 “법원의 치료명령 부과 건수 자체가 적은 것도 문제지만, 치료명령을 수행하는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등 기관의 인력과 예산 부족 문제도 심각한데 이에 대한 지적에 귀를 닫고 있는 정부의 무관심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마약사범은 처벌의 대상이자, 치료의 대상이기도 하다는 정부의 인식 전환 및 적극적인 개선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