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가장 유명한 극작가 리춘구가 사망했다. 황석영 소설가와 남북공동 시나리오 집필을 했던 인사다.
조선중앙통신은 1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고 리춘구 동지의 령(영)전에 화환을 보내시였다”며 부고를 알렸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김일성훈장 수훈자, 김일성상 수상자, 2중로(노)력영웅인 백두산창작단 작가 리춘구동지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고 밝혔다. 화환은 14일 영전에 진정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절세위인들의 각별한 보살피심속에 재능있는 영화문학작가, 창작지도일군으로 성장한 리춘구 동지는 지난 50여년간 혁명영화 ‘민족의 태양’과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 예술영화 ‘이 세상 끝까지’, ‘군당책임비서’, ‘생의 흔적’, ‘자신에게 물어보라’, ‘심장에 남는 사람’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문학들을 시대의 명작들로 창작하여 주체영화예술발전에 공헌하였다”고 전했다.
1999~2005년 남북공동 편찬사업에 의해 발간된 북한 자료인 조선향토대백과에 따르면, 리춘구는 1942년 평양 출생으로 올해 81세였다.
그는 1970년대 작품 활동을 시작해 1980년대 가장 유명한 작가로 통했다. 북한 당국이 주는 김일성 상, 노력영웅 칭호 등을 받은 때가 1980년대다. 일평생 약 90편을 창작했다.
탈북민 출신인 장진성 작가가 2012년 미국자유아시아방송(RFA)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리춘구는 김일성 종합대 어문학부 창작과를 갓 졸업한 새내기 시나리오작가 시절 김정일이 창작 지도를 위해 조선영화찰영소에 왔을 때, 젊은 작가들의 어려운 처지를 김정일에게 직접 당차게 제기해, 후배들의 ‘민원’을 해결해 “튀는 사람”으로 통했다.
북한이 신상옥 감독을 납치해 북한에 신상옥 영화촬영소를 세웠을 때 리춘구는 신상옥영화촬영소와 경쟁 상대가 된 조선영화문학창작사에서 창작실장을 맡아 이끌고 있었다. 신상옥 감독 탈북 후 신상옥영화촬영소에 대한 김정일의 관심이 떨어지고 다시 조선영화문학창작사가 주목받으면서 인생의 ‘영광의 시대’를 맞았다. 김정일이 리춘구 영화에 반해 외국관광을 시켜주고 독일 최고급차 벤츠를 선물하기도 했다. 리춘구는 자신의 시나리오에서 당 간부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파격’ 시도를 한 간 큰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민족과 운명’이란 영화를 만들 때 가상의 남한 여성 및 삼각연애관계가 등장하는 내용으로 김정일과 갈등을 빚어 명예직을 박탈당하고 양강도 농장으로 추방당했다고 한다. 훗날 명예회복이 됐지만 영광의 시절은 다시 누리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 노래방에도 있는 ‘심장에 남는 사람’은 리춘구가 작사한 노래다. 황석영 소설가와 1929년 광주 학생 항쟁을 소재로 한 ‘광주는 부른다’(1986)라는 영화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리춘구의 남한 인사들과의 활동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