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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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조 ‘노란봉투법’ 손들어준 대법…“불법 파업 손배 책임 개별 판단해야”

현대차 사측 승소 원심 파기
산업계 “불법행위 조장 유감”

사측이 공장 점거 등 불법 파업에 참여한 노동조합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때는 각각의 불법 행위 정도에 따라 배상액을 달리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야당 주도로 입법이 추진 중인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의 쟁점 사안에 대해 사실상 노조 측 손을 들어준 셈이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는 잇따라 “불법파업에 대한 책임을 경감시켜 산업현장 불법행위를 조장하는 것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도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5일 현대자동차가 전국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인 A씨 등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에 돌려보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뉴시스

대법원은 “개별 조합원에 대한 책임 제한 정도는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들이 부담하는 손해에 대해서는 책임비율을 개별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불법 쟁의행위를 주도한 노조와 달리 조합원 개인에 대해서는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조합원으로서는 쟁의행위가 다수결에 의해 결정돼 방침이 정해진 이상 쟁의행위의 정당성에 의심이 간다고 해도 노조 지시에 불응하기를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의사결정과 실행행위에 관여한 정도에 가담자마다 질적인 차이가 있는 점 등 노동쟁의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해 조합원별로 책임제한의 정도를 개별적으로 달리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을 설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A씨 등은 2010년 11∼12월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에 참여해 울산공장 일부 라인을 점거했다. 현대차는 “278시간 동안 공정이 중단됐고, 271억여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파업 참여자 29명을 상대로 20억원의 손해배상금 청구소송을 냈다. 현대차가 일부 조합원에 대해서는 소송을 취하하면서 피고는 4명으로 줄었다.

1·2심은 A씨 등이 노동조합의 불법 쟁의행위에 참여한 만큼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2심은 조합원의 책임을 전체 손해액의 50%인 135억7000만원으로 산정했으나, 법원이 판결하는 배상금이 현대차의 청구액을 넘을 수 없는 관계로 20억원의 배상금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사건은 노란봉투법의 닮은꼴로 주목을 받았다. 노란봉투법은 ‘법원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조항을 담고 있다. 노동자 개인이 노조 활동 탓에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에 시달리는 것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 사옥. 연합뉴스

현대차 측은 이날 “대법원 판결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 산업계에 미칠 파장도 우려된다”며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 파기환송심에서 잘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불법파업에 가담한 조합원별 책임 범위 입증이 힘들어 파업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사용자가 떠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성토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입장문을 내고 “불법파업에 참가한 개별 노조원별로 손해를 입증하도록 한 것은 배상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노동조합에게만 책임을 국한한 것”이라며 “불법파업에 대한 책임을 경감시켜 산업현장의 불법행위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종민·정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