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하트해변갈까 명사십리갈까…섬초와 천일염의 고향 비금도도 가보셨나요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억겁의 세월 모래사장과 기암괴석이 빚은 ‘하트’ 모양 하누넘해변 신기/자동차 타고 시원하게 달리는 명사십리 해변과 이세돌 바둑박물관도 만나

 

비금도 하트해변

거센 바람을 맞고 힘차게 돌아가는 풍력발전기의 하얀 날개. 그 앞에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과 넘실대는 푸른 파도. 모래사장을 거침없이 질주하는 스포츠카. 이쯤 되면 자동차 CF에 등장하고도 남을 멋진 장면이다. 나도 저렇게 차를 타고 모래사장을 달려보면 어떤 기분일까.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는 한 방에 날아갈 텐데. 버킷리스트의 작은 소망 하나를 완성하는 곳, 비금도 명사십리로 달려간다.

 

비금도 그림산

◆비금도 숨은 비경 하트해변 가보셨나요

 

매년 겨울이면 박스째 주문해 먹는 시금치가 있다. 바로 도초도와 형제섬인 비금도에서 나는 ‘섬초’. 한번 먹으면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많은 양념이 필요 없다. 참기름과 간장만 넣고 조물조물 무쳐 입안으로 밀어 넣으면 향긋한 섬초의 맛이 입이 귀에 걸리는 행복을 선사한다. 미식가들이 섬초가 나오는 때를 기다리는 이유다. 한겨울 매서운 바닷바람과 눈서리를 견디며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자라는 비금도 시금치는 잎이 두꺼워 식감이 좋고 특히 단맛이 일품이라 값이 일반 시금치보다 두세 배 비싸다. 전국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천일염도 신안에서 생산되는데 비금도가 원조다. 1946년 비금도 주민들이 만든 민간 최초의 천일염전이 바로 시조염전. 수림리 주민 손봉훈과 박삼만이 중심이 돼 ‘제염기술원조합’을 결성, 천일염전 개발을 주도했다. 비금도 가산리에 위치한 대동염전은 2007년 등록문화재 362호로 지정됐으며 지금도 여전히 천일염을 생산한다.

 

비금도 하트해변

섬초와 천일염 정도로만 알려졌던 비금도는 요즘 핫한 여행지로 변신했다. 연인들이라면 놓칠 수 없는 비금도 서쪽 여행지 ‘하트해변’ 하누넘 해수욕장 덕분이다. 가산항에서 차를 몰아 비금도를 관통하며 서쪽으로 30분 정도 달리면 하누넘 해수욕장 전망대가 등장한다. 연인이 서로 마주 보고 입맞춤하는 예쁜 하트모양 조형물 뒤로 펼쳐진 해변은 신기할 정도로 영락없는 하트모양. 하트 윗부분 한쪽은 아담한 모래사장, 한쪽은 기암괴석 절벽이 둘러싸며 완벽한 하트모양을 만들었다. 이곳을 찾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얘기가 전해져 연인들이 많이 찾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비금모 하트해변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이 깎아 만든 자연의 걸작이다. 침식작용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비교적 강도가 약한 암반은 부서져 모래가 됐고 강한 암반은 잘 견디는 차별침식으로 이런 하트모양의 해변이 완성됐다. 하누넘은 하늘과 바다만 보이는 바닷가라는 뜻과 거센 하늬바람이 넘어오는 언덕이란 뜻. 하누와 너미의 애절한 사랑 얘기도 담겼다. 배 타고 고기잡이 나간 하누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너미. 하지만 하누는 풍랑을 만나 바다에 잠겼고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너미는 지금도 하트해변에 누워 억겁의 세월을 기다리고 있단다. 전망대에서 하트해변 맞은편 왼쪽 끝자락의 기암괴석을 잘 살펴보면 마치 여인이 바다를 바라보면 옆으로 누워 있는 형상인데 지금도 하누를 기다리는 너미의 모습이란다. 드라마 ‘봄의 왈츠’가 촬영된 하트해변은 신안 섬 자전거길 6코스(도초·비금도)에 포함된 곳. 도초도 화도항∼가산항∼대동염전∼성치산임도∼이세돌바둑기념관∼명사십리해수욕장∼하트해변∼수국공원∼시목해수욕장∼세계생태섬방문자센터까지 77㎞가량 이어진다.

 

내촌마을 돌담길
내촌마을에서 본 선왕산

하트해변 인근 내월리 내촌마을과 월포마을도 걸어보길. 400년이 넘는 역사가 담긴 마을에는 섬 민속 문화를 보여주는 세 가지 보물이 남아있다. 우실, 마을 수호신 장승, 섬마을 전통 돌담이다. 우실은 하누넘 해변에서 부는 강한 바닷바람으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고 마을 액을 막기 위해 돌로 쌓은 울타리. 남아있는 우실은 길이 40m, 높이 3m, 폭 1.5m이며 자연석으로 축조했다. 선왕산 능선 너머에 불어오는 서북풍을 막기 위해 가옥마다 쌓은 돌담도 원형이 잘 보존돼 2006년 문화재청이 문화재로 지정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정겨운 돌담길을 걷다 보면 마을 넘어 병풍처럼 펼쳐진 선왕산의 암봉들이 어우러지는 풍경도 만난다.

 

명사십리
명사십리

◆자동차로 명사십리 시원하게 달려볼까

 

비금도(飛禽島)는 섬의 모양이 큰 새가 날아가는 것처럼 생겨 이런 이름을 얻었다. 그런 새가 왼쪽 날개를 활짝 펼친 곳이 비금도 북쪽의 명물 명사십리(明沙十里)다. 해변으로 들어서자 그 규모에 입이 쩍 벌어진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모래사장과 거센 바람을 맞고 힘차게 돌아가는 하얀 풍력발전기가 어우러지는 풍경은 매우 이국적. 전국에 많은 명사십리가 있지만 이곳이 진짜 명사십리다. 모래사장이 4.3㎞로 실제 십리 이상 펼쳐져 있어서다. 비금도 명사십리에 서면 다른 명사십리가 얼마나 과장됐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모래사장 바닥이 시멘트 포장처럼 단단해 차로 달려도 바퀴가 빠지지 않는다. 모래입자가 밀가루처럼 가늘기 때문이다. 덕분에 누구든지 CF처럼 푸른 파도가 밀려왔다 사라지는 모래사장에서 승용차를 몰고 질주하는 신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창문을 활짝 열고 모래사장을 달리니 마음속 한편에 웅크리던 답답함과 스트레스가 바람결에 모두 날아가 버린다.

 

이세돌바둑박물관

비금도가 배출한 유명한 인물이 세계적인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다. 대광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이세돌 박물관으로 꾸몄다. 박물관 앞 대형 바둑판 조형물이 포토존. 이세돌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에서 ‘신의 한 수’로 알파고를 무너뜨려 ‘인류의 위대한 승리’를 만든 4국의 상황이 담겼다. 전시실에는 이세돌이 아버지 이수오(아마5단)를 통해 바둑을 처음 배울 때 쓴 바둑판과 바둑알, 각종 우승 트로피 등이 전시돼 그의 성장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세돌 형제들은 아버지의 지도로 어린 시절부터 바둑을 배웠는데 이세돌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이미 아버지와 맞바둑을 두는 수준에 오를 정도로 재능을 보였다. 세계 어린이바둑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천재성을 보인 이세돌은 1995년 만 12세 4개월 나이에 프로에 입단해 2002년 처음으로 세계 대회에서 우승했다. 박물관 뒤에 마련된 ‘망각의 길’도 걸어보길. 섬의 맑은 공기와 자연을 즐기며 걷다 보면 바쁜 일상에서 얻는 스트레스를 금세 망각하게 만든다.


신안=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