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지난 3월 경기 김포시 한 도로에서 회색 승용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달아났고, 경찰이 탄 승합차가 쫓았다. 1.5㎞, 10여분에 걸친 도주극은 인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다른 경찰차를 들이받고서야 마무리됐다. 차량에서 붙잡힌 사람은 마약 일당의 총책인 태국인 남성. ‘야바’를 국내에서 유통하다 덜미를 잡힌 것이다.
이 가운데 여성이 7명 포함됐으며 불법체류로 드러난 55명 대부분은 농촌이나 공장 노동자였다. 이들 사례는 마약류 범죄가 급속도로 퍼지는 상황에서 외국인의 비중도 갈수록 커지고 있는 실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발표된 대검찰청의 ‘마약류 범죄백서’를 보면 연도별 외국인 사범은 2017년 932명, 2018년 948명, 2019년 1529명, 2020년 1958명, 2021년 2339명 등으로 해마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2573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1년도 295명에 비해 9배에 육박한다. 올해도 1∼3월 454명이 적발돼 전년(448명), 2021년(315명) 같은 기간과 비교해 늘었다.
국적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간엔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이 다수였지만, 이제는 태국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어 베트남, 미국, 러시아 등으로 국적이 늘고 있다. 마약류는 향정신성의약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주로 태국인·베트남인의 경우 야바와 엑스터시를 즐긴다. 러시아인과 우즈베키스탄인은 합성 대마로 일명 ‘스파이스’를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빈번한 국제교류에 거친 확산세
외국인 마약사범이 증가한 주요 원인으로는 빈번해진 국제 교류가 꼽힌다. 합법적인 외국인 근로자 및 비자 면제 협정을 이용해 관광객 등으로 위장 입국한 뒤 불법 취업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국내 체류 외국인들이 본국으로부터 몰래 들여와 동료나 지인 등에게 팔거나 같이 투약하기 일쑤다. 따라서 범죄 유형은 밀수와 투약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유통 경로와 마약 종류도 휠씬 늘어났다.
검거된 이들 중에는 제조·유통까지 손대는 등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 인터넷 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외국 현지의 마약조직과 연계해 밀반입한 뒤 지역 건설·공사 현장, 산업단지, 대규모 농장에 공급하는 행위들이 자주 일어난다. 그 특성상 개인이 아닌 조직적으로 발생한다. 반면 단속에는 어려움을 겪는 게 현실이다. 불법 체류자들이 연루된 사례들이 많은 탓이다. 여전히 누가, 누구에게 보냈는지조차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19일 수사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서울 구로경찰서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9명을 구속하는 등 외국인 12명을 붙잡았다. 구속된 9명 중 30대 유통책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필로폰 52g과 각종 환각 성분이 혼합된 야바 64정을 압수했다. 각각 1730회, 256회 투약할 양이다. 그는 마약류를 외국에 있는 총책에게서 받아 구로·영등포·관악·금천구 등 서남부 지역에 퍼뜨렸다.
그 전달에는 경기 용인동부경찰서가 SNS 등을 통한 비대면으로 필로폰 유통에 더해 투약도 한 태국인 등 22명을 구속하고, 6명은 불구속해 모두 검찰에 넘겼다. 같은 달 26일에는 시흥시의 한 노래방에서 베트남인 25명이 필로폰을 투약하며 파티를 벌이다 경찰에 붙잡혔다.
잇따르는 외국인들의 마약류 사건은 비단 도심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아니다. 수도권 외곽의 김포에서는 3개월 전 태국인 67명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지난해 강원도에서는 3년 체류 자격으로 양구에서 노동일을 하던 30대 태국인이 철창 신세를 졌다. 당시 돈벌이가 적고 정상적인 취업이 되지 않자 같은 국적의 동료들을 대상으로 마약을 판 것이다. 그로부터 건네진 빨간색 알약은 농촌의 비닐하우스나 숙소 등지에서 술을 마시고 유흥을 즐길 때 쓰인 것으로 확인됐다.
남해안 양식장과 어선·조선소에 투입된 외국인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광범위하게 유통 중인 사실이 얼마 전 드러났다. 지난달 2일 통영해양경찰서는 베트남 국적의 15명을 체포했다. 구속된 유통·판매책 7명 중 5명은 불법체류자, 2명의 결혼이주여성은 국적 취득 후 개입된 것으로 조사됐다. 투약자 8명은 연근해 어선 선원 3명, 양식장 인부 1명, 접대부 3명, 유학생 1명 등이다. 해경 관계자는 “해양 마약범죄 검거 집계를 살펴보면 2018년 90건에서 2022년 962건으로 10배 넘게 급증했다”며 “양식장·선박 같은 은밀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조업하는 여건에 기인해 마약류 전파력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말했다.
◆수직적 지휘 체계 갖추고 움직여
외국인 마약사범은 세력화·집단화하며 진화하고 있다. 이달 인천경찰은 국가정보원 등 관계기관 공조와 잠복 수사를 통해 밀수·판매책부터 투약자까지 태국인 82명을 모두 검거했다. 이번에 붙잡힌 이들은 시가 1억원 상당의 야바를 국제우편으로 태국 현지에서 몰래 들여온 혐의 등을 받는다. 그간 과정을 따라가면 40대 밀반입책은 태국에 거점을 둔 밀수출 총책에게서 SNS 메시지로 연락해 야바를 배송받았다. 이때 배송은 국제우편으로 이뤄졌는데 보낸 사람이나 장소는 모두 가짜였다. 국내에서는 충남 서산, 경기 화성, 전북 정읍, 대구 등지의 전국 판매책 30여명이 이를 감췄다. 이후 특정 장소에 마약을 숨겨두고 구매자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던지기’ 수법이나 소개를 통한 대면 거래 방식으로 유통시켰다. 다시 말해 역할이 철저히 구분되는 상하선으로 가동됐던 셈이다.
나름의 통솔 체계하에서 마약류를 만들고 공급한 사례는 2020년 11월 벌어진 ‘화성 묻지마 집단폭행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적의 남성 2명이 모 고려인에게서 20만원 상당 스파이스 2g을 훔쳐 달아났다. 그러자 고려인 조직원들은 이를 보복하기 위해 2명의 남성이 타고 가던 차를 멈춰 세우고 도끼와 삼단봉 등으로 마구 폭행했다. 이를 계기로 향정신성의약품인 ‘JWH-018’을 원료로 합성 대마를 다량 유통해 온 고려인 23명이 기소됐다. 수원지검은 외국인 마약사범에 대해 최초로 범죄단체조직 혐의(형법 114조)를 적용했다. 해당 재판부도 “다수가 활동한 구성원은 주도자와 관리자, 판매자의 업무 분담이 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관세청이 파악한 올해 1∼4월 주요 밀수 경로는 △국제우편 114㎏(54%)·96건(47%) △여행자 48㎏(23%)·52건(25%) △특송화물 42㎏(19%)·55건(27%) △일반화물 9㎏(4%)·2건(1%) 순으로 나타났다. 중량은 전년 동기 대비 국제우편이 42% 늘었고, 세계적으로 감염병 엔데믹(풍토병화)에 따라 여행자를 이용한 경우가 1320%(3㎏→48㎏)의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관련 업계에서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으로부터 급증하는 마약 밀반입에 대한 국제공조가 시급한 시점이라고 제언한다. 한 전문가는 “마약 밀수는 대량으로 중범죄화되고 그들만의 공동체에서 드러나지 않게 이뤄지는 특징을 지닌다”며 “단순하게 사범을 붙잡는 게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 밀반입을 최대한 줄이고, 출발지에서도 단속이 더욱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국인 마약 범죄 급증 속에 국내 청소년 보호도 화두로 등장한 상태다. 이날 서울시·시교육청·서울경찰청·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4개 기관은 청소년 마약범죄 예방을 위한 지원체계를 본격 운영하기로 했다. 주체별로 검사를 비롯해 중독자 치료·재활 같은 사회복귀도 돕는다. 시교육청은 10대들의 예방 프로그램을 총괄하고 학생뿐 아니라 교직원·학부모에 대한 교육도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