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네이비 씨 고스트’(Navy Sea GHOST) 출항하겠습니다!”
지난 8일 부산 해군작전기지. 무인기가 하늘을 날며 해안과 바다를 정찰하고, 무인수상정(USV)이 편대를 이뤄 수면 위를 빠르게 이동했다. 해군이 추진하는 해양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네이비 씨 고스트’를 적용한 상륙작전 시연이 처음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이날의 주역은 무인수상정이었다. LIG넥스원이 만든 해검-3을 비롯한 무인수상정이 작전지역으로 설정된 곳의 기뢰를 제거한 뒤 신속히 해안의 상륙지점으로 돌격해 적군을 무너뜨렸다. 뒤따라 해병대 병력이 해안에 안전하게 상륙할 수 있도록 도왔다. 미래 해상작전에서 무인수상정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순간이었다.
◆각국서 무인수상정 운용 확대
사람이 탑승해 임무를 수행하는 군함은 단일 플랫폼에서 정찰·대잠수함전·수상전투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반면 무인수상정은 함정의 임무를 세분화하고 자율제어를 통해 해상에서 작전을 펼친다. 크기가 작아 레이더 등에 포착될 위험이 낮고, 인명피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타지 않아 유령선을 연상케 한다는 뜻에서 ‘유령함’으로도 불린다. 유지비가 적게 들고 얕은 물에서도 움직일 수 있어 항만 경비부터 해상 교량 폭파에 이르는 다양한 작전에 활용이 가능한 ‘게임체인저’로 평가받는다. 세계 각국에서 무인수상정 활용이 늘어나는 이유다.
실제로 러시아군과 싸우는 우크라이나군은 자폭 기능을 갖춘 무인수상정을 투입, 크름(크림)반도와 흑해에 있는 러시아 해군을 공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해역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군함도 무인수상정 공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무인수상정 개발과 도입에 적극적인 국가는 미국이다. 미 해군은 2045년까지 함정 숫자를 520여척으로 늘릴 예정인데, 이 가운데 150척이 무인선박이다.
미군은 다양한 종류의 무인수상정을 개발하고 있다. 2016년 진수해 2018년 미 해군에 인도된 ‘씨 헌터’는 미 고등국방연구계획국(DARPA) 잠수함 추적 무인 선박 연구 프로그램에 의해 탄생했다. 70일간 항해할 수 있어 장기간에 걸친 해양 초계나 잠수함 추적 등 임무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미군은 2021년 최첨단 자율 선박 기능을 탑재한 ‘매리너’ 무인수상정도 제작했다.
미군은 지역 특성에 맞는 무인수상정 활용에도 적극적이다. 인도태평양에서는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저지하는 ‘유령함대’ 개념을 토대로 무인수상정 운용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다. 유령함대는 적 레이더에 잘 보이지 않는 무인수상정 등이 제1선에서 적 함정을 상대한다. 교전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은 적 함정은 제2선에 있던 유인함정이 공격해 격파한다. 이와 관련해 미 해군은 2022년 8월 하와이 일대에서 실시된 림팩 훈련에서 비공개로 유인 구축함과 무인수상정 간의 복합 해상작전 훈련을 진행했다.
중동에서는 해적과 이란 혁명수비대의 위협으로부터 호르무즈해협을 비롯한 에너지 공급 루트를 지키는 역할을 맡는다. 걸프만에서 활동하는 미 해군 제5함대는 2022년 무인수상정과 잠수정 100여대로 구성된 부대를 창설했다. 이와 관련해 올해 4월 19일 5함대는 MAST-13 무인수상정이 호르무즈해협을 항해했다고 밝혔다. MAST-13은 13 길이로 다양한 탐지 장비를 탑재한 채 정찰임무를 수행한다. 5함대는 해당 무인수상정이 미 해안경비대 쾌속정 존 슈어만함 등의 호위를 받았다고 전했다. 지난해 8~9월 호르무즈해협에서 이란군이 미군 세일드론 익스플로어 무인수상정을 나포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중국도 무인수상정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은 2022년 6월 자체 개발한 200t급 무인수상정의 자율운행 시험을 저장성 앞바다에서 실시했다. 일본도 무인수상정 연구를 하고 있으며, 호주는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의 해상 조기경보와 더불어 대잠수함 작전 등에도 무인수상정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도 무인수상정 개발 본격화
국내에서도 한국군 내 무인 무기체계 확대 기조에 맞춰 무인수상정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2002년 벌어졌던 제2연평해전처럼 남북 해군 함정들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근접한 채 대치하다가 교전이 벌어지면 다수 사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정찰 및 전투 기능을 갖춘 무인수상정을 도입하면 이런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북한 공기부양정 침투 등에도 대응할 수 있다. 해안을 통한 밀입국이나 북한 특수부대 침투를 저지할 경계작전에 활용할 경우 촘촘한 해안 경계망 구축이 가능하다. 병력 부족 문제에 직면한 군 당국이 무인수상정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국내 방위산업계도 무인수상정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중에서도 LIG넥스원은 무인수상정 분야에서 지속적인 기술 확보를 추진하며 성과를 거뒀다. 2015~2017년 방위사업청·해군·민군기술협력센터와 공동으로 착수한 연안 감시·정찰 무인수상정은 자율운항 제어, 통신 모듈 및 임무 장비 등의 전자·인공지능(AI) 첨단기술이 융합됐다. 이렇게 탄생한 무인수상정은 ‘바다를 가르며 우리 해양을 수호하는 병기’라는 의미를 담아 ‘해검’(海劍)으로 명명됐다. 국내 기술로 무인수상정을 개발함으로써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경쟁력을 확보해 국내 해양 무인·로봇산업 기술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LIG넥스원은 2018~2020년 3가지 국책 과제를 수주하며 해검-2·3·5로 각각 명명된 시리즈를 잇따라 제작하는 등 관련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자율주행을 비롯해 감시·정찰 능력과 무장 기능이 추가됐고, 유·무인 복합 능력도 강화됐다. 임무 장비를 어떻게 갖추느냐에 따라 다양한 작전 수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해검-2는 탐색 장비를 자동으로 해상에 전개하거나 회수하는 것이 가능한 수중 플랫폼(ROV) 모듈을 함미에 탑재해 수중 감시·정찰능력을 갖췄다. 이를 통해 기뢰나 잠수함을 포착할 수 있다. 수상과 수중 감시·정찰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통합 제어기술을 갖췄다. 장애물 탐지장비와 운항용 카메라 등을 갖추고 있어 항해 도중 돌발할 수 있는 위험을 회피하는 능력도 갖췄다. 소해함을 비롯한 해군의 기존 전력과 기뢰 제거 합동작전 등을 펼치면 시너지가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국방 분야 외에도 해저 지형 탐사나 해양사고 구난 등 민간·공공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해검-3은 전방에 12.7㎜ 중기관총과 2.75인치(약 7㎝) 유도 로켓 발사대를 탑재한 전투용 연안 경비 무인수상정이다. 이외에도 캐니스터 발사용 자폭 드론 등 다양한 공격 옵션을 제공한다. 열악한 해상 환경에서도 운용할 수 있다. 국내 무인수상정 중 처음으로 해상상태4(최대 파고 2.5m)에서 실해역 내항 성능 시험을 완료해 기술력을 입증했다. 20㎞ 떨어진 육상기지에서 24시간 원격 운용 및 통제가 가능하며, 수중 감시·정찰 및 경로점을 따라 자율적으로 항해하는 능력도 확보했다.
해검-5는 해군과 해양경찰청 함정에 탑재하는 무인수상정이다. 의심스러운 표적이 포착되면 모함에서 출동해 표적을 식별하고 즉각 대응한다. 해상 화재나 시위 진압을 위한 물대포를 장착하고, 군사작전에서는 중기관총 등을 탑재할 수 있다.
이밖에도 LIG넥스원은 국방과학연구소 해양기술연구원과 협업해 한국·호주 국제 공동 연구과제로 기뢰 대항작전 운용에 활용하기 위한 ‘엠-헌터’(M-Hunter) 무인수상정을 개발 중이다. 이를 통해 기뢰 대항작전 무인수상정의 핵심기술 확보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이른바 ‘K-방산’ 수출의 증가라는 추세와 맞물려 새로운 수출 품목으로 부각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해외 수출은 국내에서 충분한 수준의 운용 경험이 축적돼야만 실현이 가능한 만큼 먼저 우리 해군의 적극적 활용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LIG넥스원 관계자는 “해검 시리즈는 해군의 네이비 씨 고스트를 조기에 구현하고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는 초석을 다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해군의 미래 유·무인 복합체계 핵심 단위의 무인 전력인 정찰용, 기뢰 대항작전, 함탑재, 전투용 무인수상정 개발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