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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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킬러·킬러문항 경계 불명확… ‘물수능’ 논란 해소 과제

입력 : 2023-06-22 18:19:33
수정 : 2023-06-22 18: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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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배제’ 올 수능 어떻게되나

교육부 “26일 3년간 수능·6월 모평
킬러문항 구체적인 사례 모두 공개”

이주호 “킬러문항으로 변별력 가능?
사교육 이익 대변하는 논리” 강조
전문가 “수능도 사교육영향평가를”

與, 공교육 정상화 특별위 발족 예정

정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에서부터 공교육 교과과정에 있지 않은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을 배제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2024학년도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학부모들은 물론 대학들에 초비상이 걸렸다. 상위권 학생들은 준고난도 문항의 수준이 어느 정도 될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고, 주요 대학들은 수능 중심의 정시모집에서 우수 학생을 선발할 수단이 없어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쉬는 시간을 맞아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교육계에 따르면 킬러문항은 정답률이 5%가 채 안 되는 어려운 문제를 말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예로 든 ‘과도한 배경지식을 요구하거나 대학 전공 수준의 국어 비문학 문항’이나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는 과목 융합형 문제’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9월 모평부터 킬러문항은 배제하되 적정 난도를 유지하겠다고 밝히면서 정답률이 5∼10% 안팎인 준킬러문항이 변별력 확보를 위한 대체 수단으로 자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준킬러문항과 킬러문항의 경계는 불명확한 까닭에 모평과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고심은 깊어질 전망이다.

교육계 명사들은 우선 수능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려는 대학들의 인식 변화를 촉구한다. 박근혜정부 때 평가원장을 지낸 김영수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과거에도 공교육 교육과정을 벗어난 수능 문제는 많았다”며 “문제를 너무 배배 꼬아 내는 바람에 교수가 10분 넘게 붙들고 풀어야 겨우 풀 수 있을 정도이니 아이들은 어떡하겠느냐”고 정부의 킬러문항 배제 방침을 환영했다. 김 교수는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시정조치가 안 됐던 것은 대학들의 변별력 확보라는 요구 때문”이라며 “이제는 이런 불합리한 관행을 끊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주호 한양대 교수(교육학)는 변별력 확보는 각 대학의 몫이지, 정부가 고민할 사항이 아니라고 했다. 박 교수는 “어떤 학생을 뽑을지는 대학이 개발해 그 기준에 맞게 선별해서 뽑으면 되는 것”이라며 “사실 공교육이라는 게 대학을 보내기 위한 교육이 아니기에 정부로선 바람직한 인간 형성에 맞게 학교 교육을 정착시키는 게 목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을 겨냥해 집중단속을 시작한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광고문구가 적혀 있다. 교육부는 ‘공교육 제고 방안’을 발표하며 이날부터 2주간 학원 과대·과장광고 등에 대한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수능도 사교육영향평가를 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수(교육학)는 “기본적으로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벗어난 평가·입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제했다. 정 교수는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국제고 등) 특수목적고 입시에서도 정상적인 교육과정 범위를 벗어나는지를 평가하는 사교육 영향평가라는 것을 한다”며 “대학별고사나 학교별로 하는 시험에는 다 적용이 되는데 지금 한국사회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하는 수능이 이것을 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수능에 대해서도 시험을 치르고 나서 내용적인, 질적인 평가를 통해 사교육 영향평가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평가원이 주관하는 수능이나 모평의 변별력과 난도에 대해서도 정부가 통계를 내서 발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오는 26일 지난 3년간의 수능 문제들과 지난 6월 모평에서 어떤 것이 킬러문항인지 발표할 예정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킬러 문항을 판단하기가 모호하다는 물음에 “이런 것이 킬러 문항이라는 것이 바로 감이 올 수 있게 구체적인 사례를 다 공개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킬러문항을 배제하려다 변별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 이 부총리는 “얼마든지 쉬운 수능이 아니면서 변별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며 “킬러 문항을 내야지만 변별력이 가능하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교육 이익을 대변하는 논리”라고 강조했다. 한 대형 입시업체 관계자도 “상위권 변별은 킬러문항 한두 개로 하는 게 아니다”며 “열심히 공부하면 충분히 풀 수 있는 핵심문항 수를 살짝 늘리면 상위권 변별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털어놨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이 쉬는 시간을 맞아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시점이 문제다. 9월 모평은 3개월이 채 남지 않았고, 11월 본수능은 5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대입 수험생·학부모들과 대학들 혼란을 막기 위해 평가원이 킬러문항을 대체할 준킬러문항 개발에 나서야 하는 배경이다. 평가원은 최근 출제위원과 검토위원 500여명 선임을 완료하고 다음달 중 9월 모평 출제 작업에 착수한다. 평가원으로선 전 국민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수장 공백 상태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킬러문항 없이, ‘물수능’(쉬운 수능) 논란에도 휩싸이지 않는 문제를 출제해야 하는 고난도 과제를 떠안은 셈이다.

 

평가원이 킬러문항을 줄여 준킬러문항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난이도 조절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문제를 푸는 수험생 집단의 학력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할 경우 까다로운 시험이 되거나 지나치게 쉬운 시험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능과 모평과 같은 대규모 일제고사의 난이도 조절이 ‘신의 영역’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킬러 문항 출제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수능 문제 퀄리티(질)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정도”라며 “킬러 문제없이 변별력을 주는 것은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한편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사교육 의존도 높은 수능 초고난도 문항 출제 금지’ 이 문구는 언뜻 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같아 보이지만 이는 민주당이 지난 대선을 앞두고 발간한 정책 공략집에 수록된 내용”이라며 ”사돈남말 민주당이 내로남불 작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당은 공정한 대입과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발족할 예정이다. 국민의힘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학교교육·대학입시정상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고 이달곤 의원을 위원장에 선임했다.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특위활동에 대해 “사교육 카르텔(기업연합)에 대한 전체적인 부분을 검토할 것”이라며 “공정한 대학입시, 학교교육 정상화 등 교육계 전반을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