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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버스 타세요” [편집인의 원픽]

바닥에 깔린 많은 종이들 가운데 하나를 탁 집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 일. 흔히 언론의 역할로 불리는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의제 설정)이 그와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그 중에 뉴스 소비자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뭘까. 고민과 취재를 거쳐 우리가 내놓는 기사(어젠다)는 독자에 말을 거는 일이다. 뉴스 수명이 갈수록 빨라지는 요즘,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세계일보만의 기사를 소개한다.

 

청송군 주민들이 무료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청송군 제공

지난해 여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은 유럽에서는 전기료 인상은 물론 냉난방기 사용 제한, 조명 소등 등 다양한 정책들이 쏟아졌다. 그중에서 인기를 끈 정책이 독일의 ‘9유로(약1만2000원) 티켓’이었다. 그 해 6월1일부터 8월31일까지 9유로짜리 티켓을 사면 독일 전국 대부분의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체(ICE) 같은 고속열차는 이용할 수 없지만 지역 열차를 환승하면 전국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약 3개월 간 5000만장이 넘는 티켓이 팔릴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독일인 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 사람들에게도 인기를 끌자 올해에도 한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저가 대중교통이용권이 판매됐다. 가격은 49유로(약6만8000원)로 조금 비싸졌다. 9유로 티켓의 효과는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였을 뿐 아니라 이산화탄소 배출율을 떨어뜨리는 역할도 톡톡히 했다. 독일교통기업연합(VDV)은 9유로 티켓 3개월 시행 기간 동안 180만t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거뒀다고 추산했다. 

 

우리나라 광역단체 가운데 세종시가 처음으로 무료 시내버스를 운영할 예정이다. 2025년 1월부터다. 내년 9월부터 우선 출퇴근 무료 시범사업을 시작한다. 독일의 9유로 티켓처럼 전국 단위의 이용은 어렵지만, 목표는 비슷하다.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의 이용률을 높이고 탄소배출 저감 효과를 노린 것이다.  ‘세종시, 모든 시민 ‘무료 시내버스’ 실험’(6월17일자 강은선 기자) 기사는 행정도시 세종시가 대중교통 중심도시를 꿈꾸는 배경과 전망을 담았다. 지난 10년간 30만명 육박하는 인구가 늘어날 정도로 몸집을 키워온 세종시가 대중교통 중심의 ‘친환경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까. 이산화탄소 줄이기가 소명이 된 시대에 제2, 제3의 세종시 등장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자가용으로 넘치는 도로 

 

세종시 인구는 지난 2월 현재 39만명. 올해와 내년 공동주택 입주 추이를 감안하면 내년 봄 인구 40만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정부부처 입주로 인구도 늘고, 차도 늘었다. 2019년 기준 세종시의 승용차 수송 분담률은 46.9%로 7개 특별·광역시 가운데 가장 높다. 대전, 청주 등 인근 지자체에서 출퇴근하는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인구 증가 추세를 감안하면 자동차 이용률이 더 늘었을 공산이 크다. 시내버스 수송분담률은 7%로 꼴찌다. 서울 23%, 부산 20%대에 비하면 한참 떨어진다. 그러니 출퇴근 시간에 만성적인 교통 체증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 

 

퇴근 시간 대전에서 세종으로 들어가는 국책연구단지 사거리가 차량들도 정체돼있다.  세종=강은선 기자

세종시가 교통 대란을 줄이는 해법으로 도로 인프라 확대가 아니라 대중교통 이용률 증대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환경 개선을 위해서다. 교통사고를 줄이고 공기 질이 높아지는 것 뿐 아니라 지역민들의 건강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버스요금을 지역화폐로 환급할 경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인근 지자체에서 출퇴근하는 인구가 적지않은데 시외·고속버스는 제외하고 시내버스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배차 간격이나 노선 확대, 접근성 문제 등도 풀어야할 과제다. 

 

◆“우리 지자체도 공짭니다”

 

연령에 일부 제한은 있지만 시민들에 대중교통 무료 이용 기회를 주는 지자체는 여럿 있다. 대개 노인 이용객들에 무료 이용 기회가 많지만 청년층(만13∼23세)에 이용료를 지역 화폐로 환급해주는 지자체도 있다. 경북 청송군은 올해 1월부터 기초단체 중 처음으로 모든 이용객들을 대상으로 시내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세계일보 기자가 인터뷰한 청송군의 한 80대 이용객은 “버스요금 걱정이 없으니 하루에 두세번 버스를 타고 이것저것 할 일을 찾게 된다”고 했다. 만 65세 이상 인구가 약 40%를 차지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청송군에 ‘무료 시내버스’는 지역 어르신들의 발이 돼 지역 공동체 소통·순환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줬다. 

 

부산시는 올 하반기부터 시내버스, 지하철, 경전철, 마을버스 이용금액이 월 4만5000원 이상이면 최대 4만5000원까지 지역화폐로 돌려주는 정책을 편다. 만12살 이하 어린이는 무료다. 부산시는 대중교통 통합할인제를 통해 디중교통 수송 분담률을 지난해 42.2%에서 2030년 60%까지 올린다는 계획이다. 지역 시민단체들은 그러나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효과까지 거두려면 이 정도로는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무료 이용객수를 늘리고 환급 규모도 더 키워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관건은 재정이다. 무료 시내버스 운용 계획을 세우는 세종시나 일부 환급 정책을 펴는 부산시, 대중교통 무료 정책을 저울질하는 모든 지자체들의 고민은 재정 부담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지난 3월29일 부산시청 브리핑룸에서 부산형 대중교통 혁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부산시 제공

지자체 살림이 넉넉치 않은 우리나라에서 ‘공짜 버스’ ‘공짜 지하철’을 마냥 늘리기는 쉽지 않다. 9유로 티켓 정책을 편 독일에서도 3개월 한시 운용에도 불구하고 “무책임하게 공짜 정서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산화탄소 감축, 공기 질 개선은 지역민들 삶의 질과 무관치 않은 시대가 됐다. 미세먼지 때문에 이민을 고려한다는 젊은 부모들 얘기도 들린다. 세종시의 실험이 교통 환경 뿐 아니라 지역경제, 지역민의 건강 개선, 탄소 저감 효과까지 가져올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지역민들이 정책에 호응하느냐에 달려있다. 지자체의 대중교통 인프라 개선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하는 이유다. 

 

P.S. 취재한 강은선 기자에 물었습니다.      

 

-세종시 교통 상황이 그렇게 안좋나.

 

“현재는 출퇴근 시간대 지·정체 현상이 심한 편이다. 아직은 세종시 인구가 39만명이지만 앞으로 40만, 50만명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큰 도시인만큼 지금부터라도 원래 설계된 대로 대중교통 중심도시로 가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광역시 차원에서 전연령 시내버스 무료 이용은 파격적인 편인데.

 

“세종시는 출범때부터 대중교통 중심도시로 설계돼 주요 도로가 넓어야 왕복 6차선, 대개는 왕복 4차선이다. 정부 부처가 오면서 차량이 많아져 지역 정치인들이 교통 환경 개선 정책을 내놓았다. 특히 최민호 세종시장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을 지냈기 때문에 도시 특성을 잘 안다. 전면 무료 이용 정도로 과감하게 결단해야지 대중교통 중심도시로 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초단체로는 처음으로 모든 이용객들이 무료로 버스를 탈 수 있는 청송군은 결과가 긍정적이다.

 

“청송군은 교통 복지 차원에서 시행된 정책이기 때문에 세종시와는 다르지만 어르신들한테 인기가 좋다. 이용객도 늘었고 어르신들의 활동량도 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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