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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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기대의 변주… 일왕 부부의 인도네시아 방문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2019년 즉위 이후 첫 해외 친선방문 일정
국립묘지·역사유적지·산업단지 두루 찾아
식민지배·독립지지로 일본 과거 역할 혼재
“젊은층, K팝 소비·중국 기업 영향력 노출”

“숨진 이들을 잊지 않고,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하며, 평화 애호의 마음을 다지는 게 중요합니다.”

“(일왕의) 즉위 이후 우호목적의 첫 국빈 방문국이 인도네시아라는 점에 매우 영광입니다. 양국의 우정이 더욱 강화되기를 소망합니다.”

 

나루히토 일왕과 마사코 왕비 부부가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24일 인도네시아 언론에 따르면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 부부는 지난 19일 보고르의 대통령궁에서 일왕 부부를 영접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대통령궁 만남에서 양국 우호를 강조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나루히토 부부를 골프 카트에 태우고 운전하기도 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19일 대통령궁에서 나루히토 일왕 부부를 골프 카트에 태우고 운전하고 있다. 보고르=AP연합뉴스

◆ 나루히토 “역사·문화적 다양성 이해”

 

나루히토 일왕은 조코위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번 방문에서 인도네시아 사회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키우고 있다”고 밝혔다. 나루히토 일왕은 인도네시아 방문을 앞둔 지난 15일 일본의 인도네시아 점령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나루히토 일왕의 인도네시아 방문은 지난해 7월 조코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요청으로 이뤄졌다. 일왕 부부는 17일부터 23일까지 인도네시아에 머물렀다.이번 방문은 2019년 즉위한 나루히토 일왕 부부의 2번째 외국 방문이다. 친선활동 목적으로는 첫 외국 방문이다. 나루히토 일왕은 지난해 9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국장에 참석했다.

 

일왕 부부의 동반 외국행은 2002년 이후 처음이다. 일왕의 인도네시아 방문은 1962년, 1991년에 이어 이번이 3번째다. 나루히토 일왕의 조부와 부친이 각기 인도네시아를 한 차례씩 방문했다. 인도네시아와 일본은 1958년 외교관계를 맺어 올해 국교 수립 65년을 맞이했다. 인도네시아는 올해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의장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루히토 일왕(왼쪽)이 21일 인도네시아 특별자치주인 족자카르타의 술탄 하멩꾸 부워노 10세 부부와 만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족자카르타=AP연합뉴스

◆자카르타에서 일본 투자 현장 찾고, 족자에서 술탄 면담

 

일왕은 이번 방문에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대통령궁 인근의 보고르 식물원 탐방 이후엔 기념 식수를 했다. 방문 일정엔 자카르타의 고속전철(MRT)과 펌프장, 자카르타 소재 칼리바타 영웅 묘지, 서부 자바 산업단지, 역사도시 욕야카르타(족자), 족자 인근 마글랑에 자리한 보로부두르 사원이 포함됐다.

 

자카르타 고속철과 펌프장은 일본의 투자·기술 지원으로 세워졌다. 족자는 인도네시아의 특별자치주 가운데 하나로 술탄이 거주하고 있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일본 언론들은 일왕이 보로부두르 사원을 방문할 때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샌들을 신었다고 전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족자에서 술탄 하멩꾸 부워노 10세와 만찬을 했다. 마사코 왕비는 일왕의 족자 방문엔 동행하지 않았다.

 

나루히토 일왕(왼쪽 2번째)이 22일 인도네시아 마글랑에 소재한 보로부두르 사원을 방문해 간자르 프라노워 중부 자바 주지사(왼쪽) 등 현지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마글랑=AP연합뉴스 

양국 관계엔 독특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당시 대동아공영권을 내걸며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침략을 가속화했다. 당시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인도네시아에서는 일부 젊은 군인들을 중심으로 일본 군부와 협조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일본은 1942년 인도네시아를 점령해 3년 동안 통치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일본군이 패한 뒤 인도네시아에 복귀한 네덜란드가 독립을 허용하지 않자, 인도네시아 독립세력들은 일본 군국주의의 힘까지 활용하며 네덜란드와 싸웠다. 4년 전쟁 끝에 인도네시아는 독립했다.

 

일왕의 일정에 자카르타 남부에 자리한 칼리바타 묘지 방문이 포함됐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칼리바타 묘지는 한국의 국립현충원과 유사한 곳이다. 이곳에는 일본군 출신 전사자 28명이 묻혀 있다. 이들은 2차세계대전 이후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참전했다가 숨진 군인들이다. 일본군 일부는 2차세계대전 이후 종전을 거부하며 인도네시아에 잔류해 독립운동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비공식적으로 1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인도네시아를 방문중인 나루히토·마사코 일왕 부부가 20일 자카르타 소재 칼리바타 영웅 묘지에서 참배하고 있다. 자카르타=AP연합뉴스

◆ “투자 활성화 계기” vs “상징적인 존재의 방문일 뿐”

 

인도네시아 일각에서는 일왕 부부의 방문이 일본의 투자를 유인할 기회로 작용할 있다는 기대감도 불거졌다. ‘인도네시아 고용주 협회’의 신타 캄다니 회장은 “일본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며 “일본에 인도네시아의 잠재력에 애한 우호적인 인상을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도네시아 투자조정청(BKPM) 고위 관계자도 일본 기업들의 현지 투자가 보다 활성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카르타글로브는 일각의 기대감과 달리, 나루히토 일왕은 일본에서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해 그의 방문이 일본과 공고한 파트너십 창출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일본 매체 닛케이는 일왕의 방문이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K팝 인기가 강하고, 중국 기업의 영향력이 커서 일본으로서는 인도네시아가 쉽지 않은 시장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일본 정부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활용했던 인도네시아 관계자는 “과거엔 일본의 영향력이 강했지만, 이제는 K팝 등으로 한국 문화 선호가 강하다”고 전했다.

 

일본은 인도네시아에 4번째로 큰 투자국이다. 올해 1사분기 일본의 인도네시아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10억 달러에 달했다. 일본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수출 규모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들 중에서도 태국을 비롯해 베트남, 말레이시아에 밀리고 있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