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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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돌입하자 커지는 '물폭탄 참변' 우려…대책은 제자리걸음 [연중기획-안전이 생명이다]

2022년 8월 수도권 폭우 당시 우수관 역류
강남 일대 등 일부 지역 도시 기능 마비
대도심 배수터널 갖춘 양천구 피해 적어

서울시 추가 빗물터널 2027년 이후 완공
일부 지역은 2022년 피해 복구조차 못 끝내
근본 대책인 시설 정비 여전히 지지부진

건설기간·비용 등 이유 단기적 대책 시급
정부, 예보 확대·빗물받이 관리 등 팔걷어
“물막이판 설치 등 개인의 노력도 필요”

전국이 25일 장마철에 돌입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여름 한반도에 내리는 비는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더 많을 것으로 관측된다. 적도 부근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는 엘니뇨 현상이 수증기를 한반도로 대량 유입시키면서 기록적인 폭우가 내릴 가능성도 크다. 특히 기후변화로 한반도에 내리는 비의 양과 주기를 예측하기가 훨씬 어려워진 탓에 피해 우려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이날 제주와 남해안을 중심으로 시작된 강한 비는 전국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중국 상하이부터 제주까지 동서로 길게 발달한 정체 전선에 저기압까지 동반되면서 26일 새벽부터는 전국이 장마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간다. 전남 해안에는 시간당 40∼60㎜의 매우 강한 비가 내린다. 출근 시간과 강수 집중 시간이 겹치면서 26일 오전 수도권 지역 등에서는 교통안전에 대한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고 기상청이 이날 전했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 을지로 3가에서 폭우 시 빗물이 하수구로 빠져야하는 빗물받이가 담배꽁초와 쓰레기들로 막혀있다. 최상수 기자

지난해 내린 폭우로 전국 곳곳에서 큰 피해를 봤고, 올해도 많은 양의 비가 예보된 상태지만, 비 피해를 막기 위한 관계 당국의 대책이나 시민의식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올여름 폭우에 따른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서울 지역 대규모 빗물저장 시설은 양천구 신월동 ‘신월빗물저류배수시설’이 유일하다. 지하 40m 깊이에 조성된 지름 10m 규모의 빗물터널은 신월동 일대에 폭우가 내렸을 때 최대 32t의 빗물을 동시에 저장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시간당 95~100㎜의 비가 쏟아져도 끄떡없다. 지난 13일 이곳을 직접 찾아 10m 빗물터널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 거대한 규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시설 관계자는 “올해 시설에 대한 데이터 모니터링을 통해 메뉴얼 개정이 이뤄졌다”며 “빗물터널 수문을 더 적극적으로 개방해 폭우 피해를 예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8일 수도권 지역에 쏟아진 폭우 당시 신월동 빗물터널의 진가가 드러났다.

지난 13일 서울 양천구 신월빗물저류배수시설(빗물터널)에서 서울시 관계자가 내부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이 빗물터널은 최대 32t의 빗물을 저장해 양천구 일대의 침수 피해를 막아주고 있다. 서울시는 이 같은 빗물터널을 광화문과 강남역, 도림천에 건설해 폭우 피해를 막겠다는 계획이다. 이재문 기자

당시 서울 강남 일대는 도시 기능이 마비될 정도로 큰 혼란을 겪었지만, 양천구는 그 피해가 훨씬 적었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빗물터널은 서울에서는 신월동 단 한 곳뿐이다. 지난해 극심한 비 피해를 겪은 뒤 서울시가 빗물터널을 추가로 짓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2027년 이후에나 완공된다. 당장 올여름 폭우 대비가 부실하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폭우로 피해를 겪은 시민들은 올여름 내릴 비를 걱정하고 있다.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서 10년 넘게 건어물을 판매해 온 상인 A씨는 자신의 허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물이 여기까지 차서 손을 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역 근처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30대 홍모씨는 “지난해 폭우가 내렸을 당시 갑자기 건물 앞 도로가 다 잠기더니 건물 로비까지 물이 찼다”며 “폭우 때문에 한 달 동안 건물 전체가 정전돼 임시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고 회상했다.

 

국토연구원의 ‘기후위기시대 도시침수 예방대책’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폭우 피해는 시간당 100㎜ 이상의 강우량을 버티지 못하는 도시 배수 처리시스템에서 비롯됐다. 서울시 하수관거(대규모 하수관)는 여전히 시간당 95mm의 비를 버티는 수준밖에 되지 않고, 이를 초과한 비가 내리면 우수관이 역류해 침수피해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

1년 가까이 지나도록 피해를 막을 뚜렷한 대책이 나오지 않은 데다 지난해 피해 복구조차 마무리되지 않은 실정이다. 근본적인 대책으로 볼 수 있는 시설 정비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신월동 빗물터널과 같은 시설은 상습침수지구의 피해를 예방하는 대책으로 꼽히지만, 1년이 지나도록 삽을 뜬 곳은 한 곳도 없다. 서울시는 강남역과 도림천, 광화문의 빗물터널을 짓는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연내 착공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비교적 추진 속도가 빠른 강남역 빗물터널도 일러야 2027년 하반기에나 완공될 예정이다.

 

지난해 폭우로 서울 동작구와 관악구에선 반지하 침수로 4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수도권 지역에서만 14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되는 등 인명피해가 상당했다. 그러나 방지 대책으로 내놓은 주거 이전이나 물막이판 등의 침수방지시설 설치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5일 기준 서울시가 침수 취약 반지하주택으로 분류한 주택(약 2만8000호) 가운데 불과 8%만이 주거 이전을 마쳤다. 침수방지시설이 설치된 반지하는 이날까지 2곳 중 1곳꼴에 그쳤다.

태풍의 길목에 위치한 부산시도 폭우로 인한 침수위험지구가 41곳에 달하지만, 이 중 11곳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집계됐다. 상당수 침수방지시설은 지난해 폭우 이후 착공조차 못했는데, 해일위험지역으로 지정된 해운대구와 수영구 일대의 방지사업은 2026년 말에나 완료될 예정이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교수(소방방재학)는 “빗물터널은 침수피해를 방지하는 효과가 분명하지만, 건설 기간과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며 “장기적으로 침수지구에 빗물터널 등의 시설 정비 계획을 갖는 동시에 단기적인 대책들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행정력 동원, 시민의식 개선해야”

 

현재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행정력을 동원해 비 피해를 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사전 예보와 대응을 강화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기상청이 호우 정보에 관한 재난문자를 직접 발송할 수 있도록 하고, 인공지능(AI) 홍수예보 시스템을 도입해 예보 시간을 기존의 3시간 전에서 6시간 전으로 앞당기기로 했다. 서울시는 지난 15일부터 풍수해 재난안전대책본부를 24시간 가동 중이다.

특히 빗물받이의 역할이 강조된다. 도심 곳곳에 설치된 빗물받이는 도로에 물이 고이지 않도록 물을 하수구로 흘려보내는 역할을 한다. 지난해 8월 폭우가 내렸을 당시에는 빗물받이가 담배꽁초 등의 쓰레기로 막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시는 빗물받이 청소 횟수를 연 2회에서 연 3회 이상으로 늘리고, 자치구별 특별순찰반과 24시간 시민 신고제를 운용하기로 했다.

 

시민의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교수는 “기후변화로 짧은 시간 특정 지역에 폭우가 내리는 것은 아무리 대비를 해도 피해를 막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공적인 측면에서 빗물터널과 같은 시설을 확충해야겠지만, 개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개별 건물이나 각 가구에서 침수를 대비해 모래주머니나 차수 설비, 물막이판 등을 설치하는 것이 1차적이면서 효과적인 대응책”이라며 “기상청이 폭우 예보를 강화한 만큼 관련 정보에 따른 행동요령을 숙지할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민경·권구성·김주영 기자, 부산=오성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