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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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투표권 제한은 ‘반중 정서’ 자극과 ‘민주주의 후퇴’인가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연설에 ‘반중 정서’ 겨냥 비판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 CBS 라디오서 ‘민주주의 후퇴’ 등 언급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최근 교섭단체 연설에서 ‘중국인 투표권 제한’ 등 언급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지난해 6월1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체육관에서 개표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 화두가 된 ‘중국인 투표권 제한’을 두고 ‘반중(反中) 정서’ 자극과 ‘민주주의 후퇴’라는 지적이 야권에서 나온다.

 

전자는 ‘상호주의’를 들어 여권이 내세운 중국인 투표권 제한이 국내 반중 정서 자극 의도라는 주장이고, 후자는 이미 부여한 이주민 투표권을 제한하는 것이 우리나라 민주주의 후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앞서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21일 당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전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국내 거주 중국인 투표권 제한 언급을 ‘반중 정서’ 겨냥이라고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총선 투표권이 아닌 지방선거 투표권이어서 2024년 총선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며 “반중 정서 자극을 위한 의도성 있는 발언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20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상호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한중 관계 정립을 내세우며, 국내 거주 중국인의 투표권 제한 등을 꺼내 들었었다.

 

김 대표는 연설에서 “작년 6월 지방선거 당시 국내 거주 중국인 약 10만명에게 투표권이 있었다”며 “중국에 있는 우리 국민에게는 참정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왜 우리만 빗장을 열어줘야 하는 건가”라고 의문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우리 국민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는 것이 공정하다”고 강조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인 투표권 제한이 민주주의 후퇴라는 야권 생각은 26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온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과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엇갈린 주장에서 엿볼 수 있다.

 

방송에서 현 부원장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중국을 별로 안 좋아한다”며, “전체적으로 반중 정서가 굉장히 강한 건 알겠는데 단순히 중국인들만 안 돼 할 수 있는 문제인지 의문이 좀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민주주의 후퇴다’라거나 ‘반중 정서 갈라치기 아니냐’ 등 의문이 일각에서 제기된다면서다.

 

현 부원장 말에 김 최고위원은 처음부터 국내 거주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줄 때 상호주의를 적용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최고위원은 “십수 년을 해보니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지금이라도 상호주의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 국민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국가에서 온 외국인을 투표권 부여 대상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치 우리나라가 ‘정치 선진국’인 것처럼 거주 기간 충족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준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거다.

 

현 부원장은 “약간 민주주의 후퇴라고 본다”는 말로 김 최고위원과 생각이 다름을 내비쳤다.

 

거주 기간 충족 외국인에게 투표권 준 건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방증이며, 극히 미미한 비율의 외국인 유권자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거라 보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이를 물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자 김 최고위원은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제공한 게 민주주의 발전이다, 민주주의가 진보했다는 논리 자체는 저는 별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국내 거주 외국인 투표권 이야기는 김대중 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4월 발간한 ‘외국인 지방참정권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장기 국내 거주 외국인에 대한 참정권 부여 관련 논의는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 주요 의제로 부상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장기 체류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선거권을 부여하기로 합의하면서, ‘체류자격 취득일 후 3년이 경과한 외국인으로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외국인 등록대장에 올라 있는 사람’에 한해 이듬해 있었던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부터 선거 참여가 허용됐다.

 

더불어민주당 민생경제위기대책위원회 위원장인 김태년 의원(가운데)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국 방문 외교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용진 위원, 홍성국 간사, 김 위원장, 홍익표 위원, 홍기원 위원. 연합뉴스

 

영주권이 있는 외국인들의 선거 참여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세금을 납부하는 만큼 의사 결정 과정에 이들을 참여시키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은 외국인 유권자들이 지방자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언급한다. 외국인 유권자 비율이 국내 정치에 영향을 줄 정도로 높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에 외국인 유권자 수가 비약적으로 많아지는 만큼 아직은 국내 선거 참여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반론 등도 만만치 않다. 영주 자격 취득 후 3년이 경과한 국내 외국인 선거권자는 2006년 지방선거 당시 6726명이었으나,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10만6205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임형백 성결대 지역사회과학부 교수가 2014년 발표한 ‘지방자치선거와 이주민의 참정권’ 논문에도 이주민의 참정권을 둘러싼 찬성론과 반대론이 고스란히 담겼다.

 

찬성하는 쪽은 ‘이주민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속한 지역공동체의 다양한 결정에 영향을 받는 주민과 다를 바 없고, 이들의 참정권 행사가 사회 전체 통합에 기여한다’며 주장한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귀화하지 않은 이주민에게는 투표권을 부여할 필요가 없고, 많은 이주민이 존재하는 지역공동체는 선거연합을 통해 거주국 시민이 아닌 이주민의 이익과 요구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고 맞선다.

 

법무부는 지난해 조정훈 시대전환 대표의 ‘상호주의에 따라 외국인 참정권을 폐지하는 방안 검토’ 관련 질문에 ‘거주 기간이 3년 이상 된 영주권자에게 지방선거권을 부여하는 우리와 달리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선거권이 없다’고 답한 바 있다.

 

이어 “이러한 불합리한 문제 해결을 위해 해외 선진국들의 영주권 제도를 참조해 상호주의를 원칙으로 영주제도 개편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선진화된 이민정책의 체계적 추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지낸 권성동 의원은 지난해 12월 상호주의 원칙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례가 해외 체류 우리 국민에게 발생한다면서, 지방선거에서의 민의 왜곡 방지 등을 위해 3년에서 5년 이상으로 대한민국 지속 거주 기간을 늘려 여기에 해당하는 상대국 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상호주의 공정선거법(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현행 공직선거법과 주민투표법 등은 영주권자의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 투표권을 허용하지 않지만, 지방선거에서는 표를 던질 수 있게 한다.

 

‘마을의 일꾼’을 뽑는 게 지방선거 취지인 만큼 국적을 불문한 지역 주민이면 누구나 선거권을 가진다는 의미다. 하지만 대선과 총선은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을 뽑는 거여서 한국 국적을 갖는 국민에게만 선거권이 부여된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