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서 루시퍼로 전락한 과학자’ -넷플릭스 다큐 ‘킹 오브 클론 : 황우석 박사의 몰락’ 중-
‘대국민 과학 사기극’을 벌이고 사라졌던 황우석 박사가 넷플릭스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황 박사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바이오테크 연구센터에서 동물복제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는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부통령을 자신의 ‘보스’로 소개하며 그의 초청을 받아 이곳에 정착했다고 밝혔다. 만수르 부통령은 세계적인 부자이자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팀인 맨체스터 시티 FC 구단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황 박사는 UAE에서 그간 낙타를 얼마나 복제했냐는 질문에 “150마리가 넘는다”고 답했다. 카메라는 메마른 사막을 뚫고 출근하는 그를 비추며 ‘인류 역사상 최초의 업적을 세웠지만 완전히 추락해서 무너졌다’고 설명했다. ‘모두에게 이로운 일을 하려고 했다는 게 그토록 심각한 부정행위의 핑계가 되진 못한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기록될 만한 세기의 과학적 성과와 희대의 광기 어린 줄기세포 사태 중심에 섰던 그에게 후회는 없는 듯 보였다. 황 박사는 “사막 가운데 생활과 하루하루가 저의 지나온 삶 발자취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는 것 같다”며 “한국의 역사와 또는 저의 삶의 지나간 그 궤적들이 고통도 있겠고 영광도 있고 하지만 이것 역시 지울 수도 없고 나의 모습이었다”고 회고했다.
평범한 수의사이자 서울대 교수였던 황 박사는 1995년 핵이식 복제 송아지를 탄생시켜 화제를 모은다. 이듬해 영국에선 세계 최초로 체세포 복제양 돌리가 탄생하고 전 세계 유전공학계에선 복제 열풍이 분다. 우리나라에서는 황 박사가 1999년 복제양 돌리와 같은 기술을 사용한 복제소 ‘영롱이’를 성공시킨다. 이런 흐름 속에 그는 유전형질 개선과 동물복제 분야 선구자이자, 우리나라 위상을 세계에 드높일 국민적 영웅으로 자리 잡게 된다. 당시 김대중 정부가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복제한 백두산 호랑이 새끼를 북측에 선물하는 계획을 황 박사에게 맡길 정도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04년 황 박사는 세계 최초로 인간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논문을 내놓는다. 동물복제에서 멈추지 않고 인간 복제까지 나아간 것이다. 생명윤리학자 세라 찬 에든버러대 박사는 다큐멘터리 속 인터뷰에서 “(황 박사 행보에) 재생의학은 엄청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며 “하나의 세포로 어떤 체세포든 만들 수 있다면 간과 같은 장기를 새로 만들 수 있으니까”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황 박사팀은 1000억원 넘는 정부와 민간단체 지원금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황 박사의 위상은 2005년 정점을 찍는다. 그해 8월 황 박사는 다시 한 번 세계 최초로 스너피라는 이름의 아프간하운드 견종을 복제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개 복제는 동물복제의 정점으로 여겨졌다. 전문가들은 유전공학계에서 앞으로 거의 모든 동물의 복제가 가능할 것이라는 메시지로 이 연구 결과를 받아들였다. 여기에 더해 황 박사팀은 난자를 찔러 내부 핵을 뽑아내는 특유의 ‘젓가락 기술’에서 세계를 압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였던 그였으나, 네이처지 데이비드 시라노스키 과학전문기자가 황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 논문에 사용된 242개 난자 출처에 문제를 제기하며 대한민국 과학계 신화는 몰락하기 시작했다. 시라노스키 기자는 황 박사가 여성들에게 난소 과잉 자극 약물 사용 후 난자를 채취했으며 실험실 여자 연구원을 교수실로 불러 난자 기증 서류에 사인하게 했다고 보도했다. 눈부신 성과에 가려졌던 윤리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본격적 파국은 그해 11월 ‘PD 수첩’ 방영이 기폭제가 됐다. 이 프로그램은 황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 논문 조작을 고발한다. 내부 고발자로 나선 류영준 교수(당시 서울대 전 연구원)은 한학수 PD수첩 PD와 만남을 회상하며 “진실이 먼저냐 국익이 먼저냐고 물었더니 한 PD가 ‘진실이 국익이다’라고 답하는 것을 보고 믿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PD 수첩은 황 박사팀이 다수의 불법 거래를 통해 600여개 난자를 기증받은 게 아니라 매매했다고 보도했다.
대한민국은 충격과 공황에 빠졌다. 황 박사 보도를 막겠다는 시위가 벌어지고, 방송국을 둘러싼 시위대가 보도를 막으려 했다. 황 박사 지지자들은 자발적인 난자 기증 이벤트를 벌일 정도였다. 진중권 평론가는 당시 분위기를 “1930년대 독일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한 PD는 “황 박사는 이런 여론을 이용했다”며 “성과를 위해 다른 것을 외면하고, 국익을 위해서는 진실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도그마와 파시즘적 열풍이었다”고 했다.
폭로는 이어졌다. PD 수첩은 ‘어나니머스’라는 익명의 과학자 증언을 통해 황 박사 논문 세포 사진이 조작됐다고 했고, 류 전 연구원은 황 박사가 미가공 데이터(로우 데이터)를 고쳤다고 했다. 결국 진상 조사에 나선 정부는 해당 논문의 11개 줄기세포 중 9개가 가짜로 밝혀졌다고 확인했다.
과학적 사기는 범죄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렇게 황 박사는 우리 앞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다른 곳에서 과학자로 계속 활동할 수 있었다. 황 박사는 다큐멘터리 말미에 자신의 과거가 세계적인 과학 소사이어티에 교훈을 줬다면서도 “만약 다시 태어나서 제 인생의 길을 다시 선택할 기회가 있다면 똑같은 길을 걷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