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은 예금기관이 예금을 되돌려줄 수 있다는 신뢰를 잃었을 때 발생한다. 부실이 드러난 뒤 고객들이 지점 앞에 대규모 장사진을 쳤던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대표적이다. 1920년대 대공황,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나타난 뱅크런은 예금 대량인출이 더욱 심각한 경제위기로 옮아붙은 사례를 보여준다.
국내에서는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가장 유명한 뱅크런으로 알려져 있다. 저축은행 부실화로 고객 불안감이 확산하며 비롯된 사태다. 2000년대 후반부터 저축은행의 주요 수익원이었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여신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부동산 시장 위축 등으로 부실화한 영향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금융당국이 일부 부실 저축은행에 대해 영업정지 결정을 내리자 저축은행 예금주들이 일제히 인출에 나섰고, 2011년 2월21일 하루에만 전국 저축은행에서 예금 약 4900억원이 인출되는 등 대혼란을 빚었다. 예금자보호 한도액인 5000만원 이상을 보유했던 예금자와 높은 금리를 준다며 저축은행이 판매했던 후순위채권을 매입한 고객의 피해가 불가피했다. 추산 피해자만 10만명으로, 특히 저축은행의 주고객인 서민층이 큰 피해를 입어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기도 했다.
12년이 지났지만 저축은행 사태의 손실은 여전하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2011년 이후 31개 부실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위해 총 27조2000억원 상당의 자금이 지원됐다. 이 중 지난해까지 상환된 금액은 약 18조7000억원으로, 여전히 8조5000억원이 회수되지 못했다.
1929년 대공황으로 인한 뱅크런은 초기 금융시장의 제도 정비로 이어졌다. 뉴욕 증시 대폭락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면서 뱅크런이 발생했고, 이에 미국에서만 수천개의 중소형 은행이 무너지고 대형 은행까지 휘청였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 예금 인출을 막기 위해 강제로 은행의 휴무를 결정하기도 했다.
역사상 최악으로 꼽히는 뱅크런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다. 리먼브러더스는 파산 직전 1주일 만에 500억달러(약 65조원)가 인출되는 등 빠른 속도로 예금이 빠져나갔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2015년 그리스에서도 구제금융 협상 난항으로 채무불이행과 유로존 탈퇴 우려가 높아지자 6월19일 하루에만 예금 15억유로(약 2조원)가 빠져나갔다.
전쟁 등 정세 불안을 일으키는 특수 상황에서도 뱅크런이 일어난다. 2021년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의 공세로 정권이 붕괴하자 수도 카불의 은행 대부분이 문을 닫으며 일부 지점에 예금을 인출하려는 긴 줄이 형성됐다. 지난해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책임에 따른 경제 제재 영향으로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자 모스크바 내 은행에서 달러 등 외화를 인출하려는 뱅크런이 발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