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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연작 『종의 기원담』 김보영 “로봇을 만드는 건 인간… 결국 로봇 문제 아닌 인간의 문제”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인간에게 아름다운 환경은 기계인간에게는 최악의 환경일 거야.”

 

어릴 적 봤던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에서 메텔이 소년 철이에게 한 이야기로, 돌이나 흙이나 바위나 산을 모두 생명으로 보던 동양적 사고방식을 좋아하던 그의 가슴에도 오래 박혀 있었다. 인간에게 필요한 자연이 거꾸로 자신에겐 오염이기에 환경을 파괴하는 기계인간이 나오는 에피소드였다.

 

생물 시간에는 ‘생명의 정의를 내리기는 지극히 어렵고, 정의를 내려보았자 계속 반례가 나온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았다. 생물학 교과서 맨 첫 장을 배우면서, 만약 세상에 유기생명이 모두 사라지고 기계생명만이 존재하게 된다면 과연 그들이 우리를 생물로 생각할까, 하는 의문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다른 기원은 물론, 제가 어릴 때부터 로봇을 생명으로 가정하는 작품을 보면서 ‘기계는 생물이 아니다’는 당연한 전제를 들을 때마다 저항감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건 우리 자신을 생물로 놓고 우리 같지 않은 것을 비생물로 치니까 그런 것이지, 생명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아, 하는 기분이 늘 있었어요.”

 

데뷔 전이던 2000년대 초반, 김보영은 로봇이 지배하는 시대에 생물의 기원 문제를 다룬 작품을 구상했지만, 쉽게 쓰여 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생명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장악해야 했다.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처음엔 로봇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로봇공학을 공부했지만, 곧 유기생물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생물학을, 다시 화학을 공부했다.

 

대학 교과서를 집어 들었지만, 시간이 너무 걸렸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보았고, 그것도 근원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어린이용 학습 만화와 도서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공부했다. 중고등 및 대학 교과서가 다시 이해됐다. 분야도 화학에서 시작해 생물학, 진화학, 지구과학으로 점점 넓어갔다.

 

“당연히 소설을 위한 지엽적인 공부였지만, 이 소설 하나를 쓰기 위해 적어도 아이부터 어른까지 정규 과학교육과정 전반을 이해하는 몇 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공부한 게 지금도 내내 도움이 돼요. 지금은 소설 하나를 위해 그 정도 준비하는 건 불가능하겠지요. 오히려 데뷔 전이어서 가능했었어요.”

 

오랜 준비와 습작 끝에 소설가 김보영은 중편SF 「종의 기원담」을 2005년 환상문학웹진 『거울』에 발표할 수 있었다. 작품은 이후 앤솔러지나 단편집에 계속 수록됐다가 2021년 영문 단편집에 수록된 뒤 한국 SF 사상 처음으로 전미도서상 후보에 올라서 화제가 됐다.

 

소설은 생명이 모두 사라지고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로봇 케이와 세실, 칼스트롭 등이 생물을 발견하는 과정을 그린다. 5년 전 유기 생물의 가능성을 거론한 논문을 쓴 케이 앞에 세실이 나타난다. 케이는 세실과 함께 칼스트롭 교수를 만나서 로봇에 치명적인 산소를 이용한 생물 배양을 시도하는데. 로봇들이 인간을 비롯해 생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재밌다. 특히 로봇 노만의 다음 지적은 인간 중심주의에 빠져 있는 인간들에게 또다른 생각거리를 줄지도.

 

“우리는 산소를 뿜어내는 생물을 되살려 내었어... 신화 속의 괴물을 되살린 기분일세... 신은 우리를 위해 저 생물을 지상에서 없애버리셨어. 왜 그들을 되살려야 하지? 물을 먹고 산소를 뿜어내는 생물이라니. 이건 악몽일세. 이곳은 완전히 오염되어 버렸네. 독성물질로 가득 차 있어...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생명의 영역에 광폭한 호기심을 드러내는 일이 과연 잘하는 짓일까? 시작해서는 안되는 일을 시작해버린 것이 아닐까?”(98쪽)

 

김보영 작가가 세 편의 「종의 기원담」을 담은 연작소설집 『종의 기원담』(아작)을 최근 펴냈다. 제1편과 2편은 2005년에 쓰였고, 올해 18년 만에 3편이 완성됐다. 2000년에 시작해 무려 23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쓰인 연작소설이라는 점에서, 김 작가의 시각 변화를 엿볼 수 있다.

 

김보영은 왜 23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서 로봇이 지배하는 먼 미래에 생물의 기원 문제를 다룬 작품을 써야 했을까.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향해 나아갈까. 김 작가를 26일 이메일과 전화로 만났다.

 

―먼 미래 로봇들의 생활이나 모습이 현재의 우리 인간들과 매우 유사합니다. 왜 이렇지요?

 

“당연히, 이야기를 지은 제가 인간이니까요(웃음). 독자도 인간이고요. 상상의 결과지요.”

 

작가는 소설 속 주인공 로봇 케이와 세실, 칼스트롭의 이름과 관련, “케이는 칼륨, 세실은 세슘, 칼스트롭은 스트론튬에서 떠올린 이름”이라고 「작가의 말」에서 설명했다.

 

―로봇이 정말 인간처럼 의지나 꿈이나 야망 같은 것을 갖게 될까요? 의지마저 학습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알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아마도 영원히 알 수 없을 거예요. 근원적으로 이야기하면, 지금도 생물 의지나 주관을 관측하는 것도 불가능해요.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의지와 자아는 ‘나’ 한 명의 것뿐이지요. 나는 나의 자아를 볼 수 있으니 자신을 생명이라고 스스로 믿을 수 있지만, ‘나’ 이외의 다른 생물이나 인간의 의지나 자아를 관측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고, 아마도 앞으로도 거의 계속 그럴 거예요. 우리는 서로가 생명이라는 합의 하에 사회를 꾸려가는 것이지요. 로봇이 인간과 아주 비슷해졌을 때도 마찬가지겠지요.”

 

제2편 「종의 기원담: 그 후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에선 생물 발견 30년 후 교수가 된 로봇 케이가 칼스트롭 교수 연구실에 갔다가 식물을 넘어서 인간을 발견, 성장시키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시작한다. 케이는 결국 인간들을 학살하는 ‘칼스트롭 연구소 사건’을 일으킨다. 인간을 모르는 로봇은 케이의 행동을 칭송하지만, 인간을 만난 적이 있는 로봇은 케이에게 묻는다. 대체 왜 그랬느냐고.

 

―대체 왜 케이는 자신이 만들었던 인간을 죽여야 했을까요.

 

“인간에 이입하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로봇에 이입하면 왜 그랬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어요. 로봇을 인류로 생각하고 상대를 인류를 정신 조종하고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외계생물로 생각해보세요.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에서, 누구는 당연하게 여기고 누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썼어요. 어떤 면에서 신앙의 문제지요. 어떤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복종의 존재지만, 어떤 사람에겐 완전히 무의미한 비논리이고 둘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지요. 이 소설은 몇 가지를 가정해요. 일단 로봇은 생명이고, 인간은 로봇에게 절대적인 명령을 내리고 로봇은 복종하게 되는데, 인간은 절대적 선의의 존재가 아니지요. 자아를 가진 로봇이 타인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려면, 로봇의 관점에서 그건 극한의 사랑에 가까울 거예요. 하지만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건 절대적인 공포지요. 그런데 로봇은 결국 우리가 만든다는 문제를 잊으면 안 돼요. 소설에서도 케이는 ‘거역되도록 허락되었으니 거역한다’고 하지요. 주인공 케이는 사람을 닮은 모습에 사람을 죽일 수 있도록 제작됐으니, 아마 인간 암살용 로봇이었을 거예요. 말하자면, 로봇이 인간을 죽이는 건 반드시 인간이 인간을 죽이기를 원하기 때문이에요. 로봇의 문제가 아니지요.”

 

김 작가는 제2편을 쓰고 난 뒤 “행복하게 잘 살았을 주인공들에게 슬픈 결말을 안긴 것이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고 「작가의 말」에서 고백했다.

 

제3편 「종의 기원담: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는 로봇 환경청의 수장 케이와 인간 시아를 대표로 해서 로봇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존은 동등한 자리에서 모색된다.

 

“그 종(인간)이 내게 어떤 강제도 할 수 없고 이 마음에 한 점의 지배권을 행사하지 않고, 내가 그들로부터 이 자아의 독립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한 뒤에야, 비로소 이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304쪽)

 

―3편은 올해야 썼는데, 왜 이렇게 늦어졌는지요.

 

“출판사에서 3부작으로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6년 전이었어요. 괜찮은 제안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미 제1편에서 끝난 이야기를 또 한 편 더 썼는데, 거기서 한 편 더 쓰면서 군더더기가 아닐 방법이 잘 안 떠오르더군요. 군더더기가 되지 않으려면 「작가의 말」에도 썼듯이, 숭배와 파괴 사이에서 공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더군요. 로봇을 인류로 가정했을 때, 인류를 정신 조종하는 (아마도 악의도 선의도 없는) 외계생물과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는데 오래 걸렸어요.”

 

―현재 로봇이나 인공지능, 그리고 이들을 대하는 인간의 모습이나 자세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제는 없지요. 누가 봐도 아직은 생명이 아닌 것 같으니까요. 단지 여러 SF에서 가정하듯이 로봇에 정말로 생명이 깃든다면, 흔히 등장하는 ‘로봇이 인간과 사랑할 수 있을까 어쩌고’ 따위의 문제가 아닐 거라고 늘 생각했어요. 그건 여전히 인간로봇을 타자로 두고 생각하는 거죠. 생명이 된다는 건 그런 문제가 아니지요. 생명이 된다는 것은 그 자신이 주관이자 주체이자, 세계를 인지하는 단 하나뿐인 중심이 된다는 뜻이에요. 말하자면, ‘내’가 되는 것이지요. 내 생존과 자아의 독립이 모든 것에 우선하게 됩니다. 어떤 존재가 생명이 된다는 건 인간과 사랑을 하네 마네,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건 사고실험이에요. ‘만약 그렇다면’ 하고 진행하는 이야기지, 로봇이 생명이 될 수 있는가 아닌가를 따지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솔직히 그게 가능할지 잘 모르겠어요. 계속 말하지만, 결국 로봇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고, 로봇이 생명이 된다면 바로 인간이 생명으로 만드는 것인데, 인간은 아직 생명의 비밀을 전혀 몰라요. 알게 될 것 같지도 않아요. 그리고 그걸 알게 된다면 우선 당장 우리 생명의 문제부터 해결하겠지요. 로봇을 ‘나’로 두고 읽어야 해요. 나를 지배하는 존재는 현실에 많고, 그들을 사랑할 수 있을 때는 내가 그들로부터 독립할 때지요.”

 

―이번 연작 소설집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실제로 23년간 쓴 것은 아니지만, 쓴 시간만 따졌을 때도 제 소설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들였습니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한 공부가 지금 SF작가로 활동하는 자원이 되었고요. 제 작품 중에서 가장 소중한 소설 중 하나지요.”

 

결국, 소설은 로봇 이야기다. 제1편이 인간을 숭배하는 로봇을 그렸고, 2편에선 인간을 파괴하는 로봇을, 마지막 편에는 인간과 로봇간의 상생을 모색하는. 그는 「작가의 말」에서 말했다.

 

“이것은 결국 로봇의 이야기다. 무기생명에 대한 내 개인적인 헌사며, 곧이곧대로 기계생명을 향한 찬가다. 사물에 깃든 생명에 바치는 경애다.”(312쪽)

 

―소설집이 2021년 전미도서상 후보에 오른 전후 느낌이 어땠는지 조금 궁금하군요.

 

“전미도서상 후보가 된 것은 별로 화제가 안 됐습니다. 미국에서는 가장 큰 상 중 하나라는데, 한국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상인가 봐요. 하퍼콜린스에 책이 판매되었을 때가 더 관심을 받았죠. 후보에 올라서 이력에 쓸 수 있으니 좋지요.”

 

“나는 커서 소설가나 화가나 만화가 중 하나가 될 거야.” 네 살 무렵, 그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꿈을 마치 주문처럼 말했다. 그림도 많이 그렸지만, 결국 소설의 숲에 정착했다. 게다가 소설을 좋아했으면서도 사실주의 작품에는 관심이 없었다. 십대 시절, 그는 모험 판타지를 많이 썼다. 소설쓰기 외에는 달리 취미가 없을 정도로 소설 쓰기에 몰두했다. 소설가 김보영의 원점이었다.

 

“제가 SF를 쓴 건 SF의 존재를 알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어릴 땐 SF나 판타지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사실주의를 뺀 나머지를 좋아했고, 그래서 제 작품이 SF가 된 것이지요.”

 

소설가가 되고 싶은데, 어째서 나는 소설이 될 수 없는 것만을 좋아하는가. 그는 한동안 소설을 출간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절망하기도 했다. 그래서 스무 살 이후 단 한 줄의 소설도 쓰지 못했다.

 

대학 졸업 뒤 게임 회사에 그래픽 디자이너로 들어갔다가 시나리오 작가가 없어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발표한 첫 시나리오가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자신감을 회복, 다시 작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틈틈이 SF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보영은 2004년 중편SF 「촉각의 경험」으로 제1회 과학기술창작문예 중편 부문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이후 소설집 『멀리 가는 이야기』와 『진화신화』, 『저 이승의 선지자』, 『얼마나 닮았는가』, 『다섯 번째 감각』 등을, 장편SF 『7일의 집행관』과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등을 펴냈다. SF어워드 등을 수상했다. 특히 2021년 전미도서상 번역서 부문 후보, 로제타상 후보에 오르며 화제가 됐다.

 

―작품 세계를 조금 설명해주신다면.

 

“비사실주의지요. 그런데 제 소설도 일본에 출간되고 나니, 특이하리만큼 현실에 밀접하게 붙어 있다는 감상이 많이 나오네요. 아마 한국 문학이 지극히 현실주의적이라서 나타나는 특성이겠지요.”

 

―소설쓰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이 있습니까.

 

“짧은 지면에서 말하기에는 너무 많지요. 앞의 답에서 이어서 말한다면, 아무리 낯선 세계와 인물을 가정하든 그 세계를 제가 사는 세계로 두고 등장하는 인물을 ‘나’로 생각해요. 주인공만 ‘내’가 아니라 모두 ‘나’여야 하지요. 1인 다역 연기를 하는 기분이지요. 그러면 쓰는 내내 제가 일생 체험할 수도 없는 신비한 세계를 탐험하게 되지요. 그 체험이 때로는 기적 같고 황홀해요.”

 

―작품이나 작가로서의 비전, 꿈, 계획은 무엇인가요.

 

“지금 쓰는 작품이 전부라는 생각으로 쓴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미래는 깊이 생각하지 않네요.”

 

목표는 하루 두 시간. 가족과 함께 강원도에서 살고 있는 그는 몇 년 전부터 매일 오전 두 시간 정도 글을 쓰려고 한다. 물론 마감이 닥치면 대중없이 종일 써야 하고, 잘 써지면 오후에도 두 시간을 더 쓰지만. 그럼에도 일단 목표는 하루 두 시간.

 

“아무리 바쁜 날도, 반대로 여행 가서 친구들과 노는 날에도, 꼭 두 시간을 쓰기로 한 뒤로는, 몰아서 일하다가 한동안 아무것도 못하곤 했던 예전보다 더 많이 씁니다. 아마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이 그렇겠지요. 실제로 인간이 하루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그 정도라더군요.”

 

그런데 이게 또 쉽지 않다. 매일 두 시간 글을 쓰기 위해선 일상이 별일이 없어야 하는데, 현실이 녹록치 않은 탓이다. 인생이란 인연의 연쇄여서 늘 별일이 일어나니까. 더구나 그 별일에서 깜짝깜짝 놀라는 생각마저 들어오니까. 어쨌든, 오늘도 김보영은 바쁘고 분주하다. 모두 온전히 살아 있는 두 시간을 위해서.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김보영 작가 제공 (c)Hye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