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반란이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요식업 사업가 시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연을 맺어 ‘푸틴의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후에는 각종 지저분한 일을 푸틴 대신 수행하면서 최측근 반열에 올랐다. 한 손엔 총, 한 손엔 키보드를 들고서였다.
그는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을 돕기 위해 만든 용병기업 와그너그룹의 수장으로 잘 알려졌다. 실은 가짜 뉴스 사업이 먼저였다. 2004년 우크라이나에서 친러시아 정권을 무너뜨린 오렌지 혁명이 일어났을 때 그는 재력을 이용해 미디어를 움직였다. 반정부 시위가 사실은 미국과 서방의 돈을 받고 하는 행위라는 음모론을 퍼뜨리기 위해서였다.
2016년 미국 대선에도 개입했다. 인터넷연구기관(IRA)이라는 조직을 꾸린 그는 수백 명을 고용해 소셜미디어에 가짜 뉴스를 퍼 날랐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등 17개 정보기관이 2017년 낸 평가서에 따르면 IRA의 주된 목적은 미국의 민주주의 과정에 대한 신뢰를 허물고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도록 돕는 것이었다.
“투표 보이콧이 흑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시위”라고 선동하거나, 유권자 등록 절차가 까다로운 것처럼 잘못 안내해 흑인 유권자의 투표 의지를 꺾었다. 힐러리 클린턴이 백인 우월주의 단체로부터 선거자금을 받았다는 가짜 뉴스를 뿌렸고 민주당 지지층 내 이간질도 시도했다.
프리고진은 막대한 재산을 바탕으로 이렇게 정교한 가짜 뉴스 기획을 실행할 수 있었다. 그는 지난해 말 “우리는 미국 선거에 개입했고, 지금도 그러고 있으며 계속 그럴 것”이라며 “우리만의 방식으로 신중하고 정확한 외과수술을 하듯이 하겠다”고 했다. 이제 그는 망명한 반역자 처지가 됐지만, 이제 누군가가 그 대신 작업을 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더욱이 지금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진짜 같은 가짜를 더 쉽게 만들 수 있는 시대다. 뉴욕타임스가 AI 사진 100여장을 놓고 여러 탐지 프로그램을 가동해 봤더니, 상당수가 가짜를 구별해내지 못했을 정도로 AI가 고도화된 세상이다.
힐러리가 공화당 소속인 론 디샌티스 지지를 선언했다는 딥페이크 영상이 나오는 등 미국에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AI 가짜 뉴스가 이미 꿈틀대고 있다.
출처 불명 정보를 이용한 가짜 뉴스는 한국서도 범람한다. ‘CIA 분석가가 알려 주는 가짜 뉴스의 모든 것’의 저자 신디 L 오티스는 가짜 뉴스 공급자의 그릇된 의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은 결국 뉴스 소비자의 분별력이라고 강조한다.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하지만 일리 있는 주장이다. 인류 역사와 함께한 가짜 뉴스를 정부 대응과 AI·소셜미디어 규제, 대중의 신뢰를 얻기 위한 언론의 노력 등으로 뿌리 뽑지는 못할 것이다. 오티스에 따르면 약 3300년 전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에 패한 팩트를 승리담으로 꾸며 이집트 전역 신전에 새겼다. 사실 그의 패배도 세작(細作)이 뿌린 가짜 뉴스 때문이었다.
가짜 뉴스는 더 많이, 더 감쪽같이 만들어지고 있다. 다행인 것은 러시아 대선 개입 평가서 등을 통해 이제 우리도 가짜 뉴스의 생성·유통 패턴과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됐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