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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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차관 업무 시작한 장미란 “리더십 없다” vs “새바람” [미드나잇 이슈]

“스포츠 현장에서 페어플레이 정신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인) 공정‧상식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6월 29일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신임 제2차관 임명 소감 중)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역도 영웅’ 장미란 문체부 제2차관이 3일 국무회의에 참석하며 첫 일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차관으로 발탁된 것을 놓고 정치권에선 여전히 논쟁이 뜨겁다. “스포츠 스타가 정치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비판과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것”이란 기대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배우 출신의 유인촌 전 장관에서부터 사격 국가대표 출신 박종길 전 차관, 수영 국가대표 출신 최윤희 전 차관 등 다수의 문화체육계 인사들이 문체부를 거쳐 갔다.  문화체육계 인사 요직 진출은 자주 논란을 빚어왔다. 고위공직자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이들의 행정 능력이나 리더십에 물음이 던져질 때도 있었지만 선임과정 자체의 정치색과 보은인사 등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예상된 갈등에도 발탁한 장미란, 이유는?

 

장 차관은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그는 자리에 앉은 뒤 국무회의 전자결재 시스템에 대해 안내받으면서도 연신 미소를 지었다. 장 차관은 이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윤 대통령은 장 차관에게 “길에서 만나면 몰라보겠네”라며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장 차관 특유의 환한 미소는 여전했지만 정치권에선 논쟁이 뜨겁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지난 2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장미란 차관이 지금까지 체육계 비리척결 등 한국체육개혁과 선진화를 위해 노력한 흔적은 아쉽게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스포츠 영웅들이 정치적으로 소비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3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반면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같은 날 자신의 SNS에 “장미란 2차관은 역도선수로 애국했고 은퇴 후에도 사회봉사도 계속했다. 역도선수가 체육 담당 차관을 왜 못하나”라고 반문했다.

 

국민의힘은 “인신공격”이라며 장 차관을 향한 공세 차단에 나섰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 회의에서 “장 차관에 야권 극렬 지지자들이 퍼부은 인신공격은 한마디로 수준 이하”라며 “‘역도선수가 뭘 아느냐’는 식의 질 낮은 폄훼 발언과 (문재인정부 시절)최윤희 전 차관 사례를 망각한 자기모순은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 대결주의의 소산”이라고 했다

 

◆정부 대여론전 사령관 문체부 2차관

 

지금까지 문체부에 연예인 및 선수 출신 인사들이 고위직에 임명될 때마다 논란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도 장 차관 임명 후 어느 정도 후폭풍을 예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번 장 차관 발탁을 통해 체육계에 힘을 싣는 한편, 문체부 활동을 늘려 대국민 홍보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이 언론인 출신이고 지난 조용만 2차관도 기재부 정통 관료 출신으로 체육계와 접점이 크지는 않았다. 또 문체부가 정부 부처 중 존재감이 없다는 대통령실 내부 비판이 있는 상황에서, 베이징 올림픽 등에서 활약하면서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장 차관을 발탁해 문체부 내부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의도도 있다는 분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임명에 국회 동의도 필요 없는 차관에 야당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문체부 제2차관은 대통령 홍보수석, 홍보기획비서관과 함께 정권의 홍보 및 대여론전을 담당하는 직책이기 때문이다.

 

문체부 직제 시행규칙에 따르면 문체부 2차관은 ‘문체부 장관과 함께 국정홍보 업무에 관여하고 국민소통실과 체육국 및 관광정책국의 소관 업무에 관하여 장관을 보조한다’고 하고 있다. 사실상 문체부 제2차관은 대통령실 홍보수석비서관과 함께 정부 전 부처 대변인들을 관리하고 내외신 언론사 비평‧보도를 수집‧분석해 정부의 대여론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다. 과거 국정홍보처가 이런 기능을 담당했지만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홍보처를 문체부 산하에 넣으면서 제2차관이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언론뿐만이 아니다. 약 2조원에 달하는 체육 산업예산과 국민체육진흥기금 운용을 담당한다. 대한체육회와 호텔‧카지노 사업, 국내관광자원 개발, 국제회의, 의료관광, 관광 인증도 소관 업무다.

 

◆문제는 행정능력이 아니라 정치적 중립성

 

문체부 고위 관료에 선수나 예술인 등 유명인사들이 임명된 것은 장 차관이 처음은 아니다. 유명인사 등용 때마다 뚜렷한 정치색과 보은인사, 개인비리의혹 등으로 문체부는 몸살을 앓았다.

 

유인촌 전 장관은 2008년 10월 24일에 있었던 국정감사 도중 기자들을 향해 “사진 찍지 마! XX, 찍지 마!”라는 반말과 삿대질, 욕설을 내뱉어 논란이 됐다. 또 그는 2009년 한예종 협동과정 서사창작과의 폐지에 반대하는 피켓을 든 학부모에게 “학부모가 세뇌됐다”는 말을 했고, 2008년 7월 광우병 사태 당시 “촛불 때문에 관광객이 줄었다”는 등 발언으로 야당의 비판을 받았다. MB 대선 캠프에서 특보를 지냈고, 거리유세를 함께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혔던 그는 이후 예술의전당 이사장 자리까지 꿰차면서 보은인사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제19대 대선에서 문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아시아의 인어’ 최 전 차관도 보은인사 논란이 일었다. 그는 문체부 제2차관 이전 2018년 한국체육산업개발 대표로 취임했는데, 수영 선수 외 대외 경력이 거의 없던 최 전 차관이 지역 스포츠센터와 경륜, 경정, 경마 등 부대사업을 하는 한국체육산업개발 대표로 취임하자 비판이 쏟아졌다.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3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장 차관도 이미 수차례 총선출마설이 돌았던 대표적인 보수 체육계 인사다. 지난 대선 당시 공식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한 적은 없지만 그는 2012년 태릉선수촌에서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는 등 보수 진영과 친분을 유지해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고, 박 전 대통령 자문위인 청년위원회 대표 위원에 선임되는 등 중앙 정치 무대에 얼굴을 알렸다.

 

과거 국회의원 출마설까지 떠올랐지만 실제 출마까지 나서진 않았고, 탁수선수 출신 정치인 이에리사의 국회의원(새누리당 비례대표 출신) 총선 활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대한체육회 한 고위 인사는 “지금까지 선수 출신이나 연예인 출신 문체부 고위 관료들이 처음엔 나름의 생각을 갖고 체육계 이모저모에 신경을 쓰는 듯했지만 정작 중요할 땐 정부의 파수꾼 노릇을 해왔다”며 “장미란 차관에게 필요한 것은 행정능력이나 리더십이 아니라 고위 공직자로서의 정치적 중립성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