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하반기 부동산 시장의 최대 뇌관으로 꼽히는 역전세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전세금 반환을 위한 대출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세수 펑크 우려에도 종합부동산세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현행 60%로 유지해 세 부담을 줄여줄 방침이다. 정부는 4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역전세와 전세사기 등 서민의 주거안정을 저해하는 요인을 방지하는 등 임대차 시장을 관리하는 한편, 무주택·청년·신혼부부 등 주택 실수요자를 위한 주거 지원을 확대해 주거비 부담을 낮추는 것이 골자다.
◆전세 반환대출 풀고 피해 지원 확대
정부는 임대차 시장 리스크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1년간 전·월세 보증금 반환목적 대출에 한해 규제를 완화한다. 신규 전세보증금이 기존 보증금보다 낮거나 후속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제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게 된 집주인 대상으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 대신 총부채상환비율(DTI) 60%를 적용하기로 했다. DTI 60%는 현재 특례보금자리론에 적용되는 기준과 같다.
대출 금액은 보증금 차액 내에서 지원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후속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경우 후속 세입자 전세보증금으로 대출금을 우선 상환한다는 특약을 전제로 대출한도 내 전세보증금을 대출해준다.
집주인이 임대사업자인 경우에는 임대업 이자상환비율(RTI)을 현행 1.25∼1.5배에서 1.0배로 하향한다. 금융위원회 분석 결과 연 소득 5000만원인 차주가 대출금리가 4%인 만기 30년 대출을 받았다고 가정했을 때 규제 완화로 대출 한도가 늘어나는 규모는 1억7500만원가량으로 추산된다. 다른 대출이 있는 경우 대출한도는 이보다 다소 늘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해선 앞서 국회를 통과한 특별법 등을 바탕으로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피해자가 기존 주택금융공사, SGI서울보증이 보증한 전세대출을 저금리 기금 대출로 대환할 수 있도록 이달 중 5대 은행 시스템을 가동하고, 연체정보 등록을 유예한다.
경·공매 시점 최우선변제금을 받지 못하는 전세 사기 피해자에 대해서는 최우선변제금 한도(서울 기준 5500만원) 안에서 무이자 대출을 지원한다.
정부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등의 리스크 관리도 강화하기로 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PF 펀드, PF 대주단 협약을 통해 부실 사업장을 지속 관리하고, 필요시에는 현재 1조원 규모인 캠코의 PF 펀드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종부세 부담 안 늘리고 주거 지원 확대
정부는 종부세에 적용하는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60%로 묶어둘 방침이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은 과세표준을 적용할 때 적용하는 공시가격의 비율이다. 공정시장가액 비율이 60%면, 공시가격이 10억원인 주택의 경우 6억원으로 계산해서 종부세를 매기게 된다.
지난해 정부는 재산세와 종부세 등 보유세 부담을 낮추기 위한 세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공정시장가액비율을 60%로 낮춰 세 부담을 낮췄다. 올해는 공시가격 자체가 큰 폭으로 내려갔고, 종부세율 인하 조치도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공정시장가액비율이 80%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현행 60%를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공시가격이 내려간 가운데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주택 보유자들의 보유세 부담은 지난해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병탁 신한은행 WM사업부 부동산팀장의 시뮬레이션 결과, 서울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84㎡) 1채를 보유한 집주인은 지난해 재산세와 종부세를 합쳐 412만원을 냈다. 올해는 종부세 부담이 없어지고 재산세만 납부하게 되면서 전년 대비 38.7% 줄어든 252만원만 내면 된다. 마포래미안푸르지오(84㎡)와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84㎡)를 소유한 2택자의 경우 보유세 부담이 지난해 5358만원에서 올해 1526만원으로 71.5% 감소하게 된다.
정부는 주거비 부담 완화 차원에서 무주택자·청년 등에 대한 주거 지원도 확대한다. 주택담보대출 이자 부담을 낮추는 차원에서 장기 주택대출 이자 상환액 소득공제 한도를 연 18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청년층 대상으로는 전세금 반환보증료를 30만원까지 전액 지원하고, 신혼부부의 경우 전세대출과 구입대출의 소득 기준을 각각 7500만원, 8500만원으로 상향할 방침이다.
주택공급 확대 차원에서는 올해 하반기 중 약 3만8000가구의 공공임대주택 입주자 모집을 실시한다. 관련법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분양가 상한제 주택에 대한 실거주 의무 폐지와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등도 조속히 추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