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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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생활 접고 귀국한 청년, 딸기를 만나다 [귀농귀촌애(愛)]

<13> 전남 신안 농업법인 ‘천사농부’ 한선웅 대표

2017년 여름, 그는 11년의 호주 이민생활을 마치고 처가인 전남 신안군 압해도로 돌아왔다. 그의 주머니는 텅 비어있었다. 호주에서 한 때 잘 나갔지만 무역업에 손을 댔다가 큰 손해를 봤다. 이민생활을 접은 그는 한국의 농촌에서 귀농의 둥지를 틀고 인생 2막의 길을 선택했다.

 

귀농 6년차인 농업법인 ‘천사농부’ 한선웅(44) 대표의 귀농 스토리다. 귀국 후 농사정보를 얻기위해 그는 인터넷에 귀를 기울였다. “세상에 이런 비밀이 다 있구나” 한 대표는 검색을 하다가 청년창업농 모집에 눈이 번쩍 뜨였다. 곧바로 지원해 청년창업농 1기생에 선정됐다. 전남대 창업보육센터에서 딸기재배 교육을 받았다. 그가 재배작목으로 딸기를 선택한데는 누구나 즐겨먹는 과일였기때문이다. 딸기는 판로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창업보육은 이론 3개월과 현장실습 6개월, 경영실습 1년 등 모두 1년 9개월 과정이었다.

실습을 마친 그는 전남 나주에서 2640㎡(800평)을 임대해 딸기농사를 처음으로 지어봤다. 수입이 꽤 괜찮았다. 이론과 실습을 모두 경험한 한 대표는 2020년 6월, 1억2000만원을 융자받아 3300㎡(10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4개동을 설치했다. 자금이 모자라 딸기 재배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만 들었다. 설치비용을 아끼기 위해 그는 하루종일 현장에 매달려야 했다. 비닐 하우스를 완성하는 데 1년 이상이 걸렸다.

 

2021년 8월 비닐하우스에 첫 딸기 모종을 심었다. 비닐 하우스에 식재한 2만 3000주의 딸기는 잘 자랐다. 그해 12월 첫 수확을 했다. 하지만 매출은 기대 이하였다. 하루 판매 수입은 100만∼200만원에 그쳤다. 다음해 4월까지 수확한 딸기 총매출은 9000만원으로 기대(1억5000만원)에 크게 못미쳤다. 딸기 수입은 3.3㎡당 18만원가량이다. 모종값과 인건비, 기름값을 제외하니 순이익은 3000만원에 불과했다. 10개월가량 아내와 함께 매달린 딸기농사의 성적표는 실망 수준이었다. 

 

한 대표는 딸기 농사가 왜 잘 안 됐는지 되돌아봤다. 답은 간단했다. 인건비를 아끼기위해 부부 2명이 3300㎡(1000평)의 딸기 농사를 짓는 건 무리였다는 것이다. 딸기 농사는 잎따기와 꽃솎아주기, 수확, 선별, 포장, 출하를 매일 동시에 해야한다. “둘이 어떻게 이런 일을 다 할 수 있겠어요” 그는 반문했다. 단계마다 일손 부족으로 시기를 놓치니 수확량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딸기농사에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와 1년간 근로 계약을 했다. 딸기 농장에 한 명의 노동력이 더 투입된 것이다. “제 때 제 때 일손이 들어가니 모든 게 달라졌어요” 그는 올해 딸기의 매출이 거의 2배로 늘었다고 했다.

 

한 대표는 딸기농장 한켠에 어린이들의 체험학습장으로 꾸몄다. 딸쿵(딸기사랑심쿵)이다. 반응은 의외였다. 인근 도시인 목포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딸쿵의 체험장을 찾은 것이다. 그의 딸기농장 한 가운데는 유모차와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통로가 있다. 딸기 한 베드를 포기하고 보행약자들을 위해 마련한 길이다. 

한 대표의 귀농 계기는 좀 특이하다. 그는 2004년 임용고시에 두 번째 떨어진 후 학생비자로 호주로 떠났다. 호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2006년, 그는 결혼했다. 결혼 후 아내와 함께 호주로 이민을 갔다. “외국 생활은 막막했어요” 그는 아내와 함께 건설현장과 청소, 타일 작업 등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이같은 그의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5∼6년이 지나자 이민생활의 터전을 잡았다.

 

하지만 무역업에 손을 댄 것이 화근이었다. 무역업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서 이민생활을 접어야 했다. “이 때는 처음 호주 올 때보다 더 막막했어요” 그의 머리속엔 처가인 압해도가 떠올랐다. 

 

한 대표는 올해 처음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비닐하우스 2개동에 3400주의 메론을 심었다. 지역농업경영인회에서 올해 완공되는 압해도 로컬푸드에 다양한 농작물을 진열할 목적으로 한 대표에게 메론 재배를 요청했기때문이다. “누군가는 해야 될이죠” 그는 일손 부족으로 메론 줄기가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줄을 다는 시기를 놓쳐 안타까워 했다. 이날도 나홀로 줄을 다는 작업을 했지만 좀처럼 작업량은 줄어들지 않았다.  

 

한 대표는 1년내내 수확이 가능하도록 작물의 다양화를 추진하고 있다. 작물의 다양화가 그의 귀농 목표다. 지난해부터 처가의 배농사를 다시 시작했다. “2018년인가 배농사를 해봤는데 수익이 너무 적었어요” 6600㎡(2000평)에서 배 수확이 5000만원에 그쳐 곧바로 배농사를 접었다. 배농사 실패는 상처 등 조그마한 하자가 있어 상품으로 나가지 못하는 배를 처리하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배 수확은 나쁘지 않았지만 판매보다는 처리하지 못하고 버리는 배가 더 많았다. 그는 이 문제를 푸는데 집중했다. “하품의 배를 받아주는 거래처를 찾았어요” 그는 배 농사만 잘 지으면 하품도 받아주는 판로를 확보한 것이다. 

그는 올해 배농사를 3만3000㎡(1만평)으로 늘렸다. 고령의 배농사 주인들이 더 이상 지을 수 없다며 한 대표에게 임대를 줬기때문이다. “올해는 수정이 잘 됐어요” 전남 나주 등 배주산지의 배들이 수정시기에 한파로 열매가 많이 열리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올해 배 가격이 좋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밭농사까지 작물을 넓혔다. 13만2000㎡(4만평)의 밭에 철 따라 귀리와 보리, 밀, 콩, 녹두 등을 재배하고 있다. 밭작물 농사는 의외로 쉬운 편이다. 씨앗을 뿌리면 자연에서 자라 수확을 할 수 있기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계속된 장마로 아직까지 녹두는 씨앗조차 뿌리지 못하고 있다. “날씨 등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수확량을 기대하기 어려워요” 그는 기후변화가 밭작물 농사를 좌우한다고 보고 있다.

 

그는 아직까지 빚을 다 갚지는 못했다. 하지만 농사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희망의 불씨를 이어가고 있다.  

 

한 대표는 예비귀농인에게 농사는 경험자를 이길 수 없다는 뼈있는 한 마디를 했다. 귀농인이 작물 재배법을 아무리 이론으로 많이 알아도 실전에서 잔뼈가 굵은 농부를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귀농했다면 처음에는 무조건 배워야 해요” 한 대표는 귀농후 나홀로 지내서는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다고 충고했다. 아직까지 농촌은 공동체 의식이 강해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 농사정보 등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신안=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