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명이 공동의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연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민법 제760조). 여러 명으로부터 두들겨 맞아서 뼈가 부러졌다면 누구한테 맞았을 때 부러졌는지 모르더라도 공범 중 1명으로부터 치료비 전액을 받을 수 있는 셈입니다. 참고로 법조문에는 ‘연대하여’라고 되어 있지만, 판례는 이것을 연대채무가 아닌 부진정연대채무(여러 명의 채무자가 동일 내용의 채무에 대해 각자 독립해 전부를 변제해야 하는 의무를 부담하는 채무)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이 “회사가 위법한 쟁의행위를 한 조합원들을 상대로 받을 수 있는 손해 배상액을 조합원마다 개별적으로 제한해서 정해야 하고, 일률적으로 노동조합의 손해 배상액과 동일하게 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은 시기적으로 이른바 ‘노란봉투법’이라고 불리는 노조법 개정안과 맞물려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급박한 쟁의행위 상황에서 조합원에게 쟁의행위 정당성을 일일이 판단할 것을 요구하기는 어렵고, 조합원에 따라 노조의 의사 결정이나 실행 행위에 관여한 정도에 차이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노조와 개별 조합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똑같이 정해서는 안 되고, 이때 개별 조합원에 대한 책임제한의 정도는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현실적인 임금 수준과 손해배상 청구금액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해야 한다는 판결입니다(2023. 6. 15. 선고 2017다46274 판결).
대법원은 보도자료에서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공동 불법행위자 사이에 예외적으로 책임제한 비율을 달리할 수 있다’고 본 선례가 있고, 이 판결도 기존 선례의 연장선에 있다”고 했습니다.
대법원이 선례로 언급한 사건은 회사의 매출을 누락시킨 불법행위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 대표이사 및 상임감사로 재직한 이의 책임을 40%, 상무이사의 책임을 20%, 이사의 책임을 10%로 각각 제한한 사건입니다(2012다82220 판결).
이번 대법원 판결의 새로운 점은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공동 불법행위자 사이에 예외적으로 책임제한 비율을 달리할 수 있는 경우’로서 노동쟁의 사건을 유형화한 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형의 사건에서 개별 조합원에 대한 책임제한의 정도는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현실적인 임금 수준과 손해배상 청구금액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정해야 한다는 기준을 설정했다는 점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공동 불법행위 책임의 성립 단계에서 판단 방법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사용자가 개별 조합원의 가담 정도를 일일이 입증하지 않더라도 위법한 쟁의행위를 한 조합원들이 공동 불법행위 책임을 진다는 점은 여전히 동일합니다. 단지 법원이 개별 조합원의 가담 정도 등을 감안해 손해 배상액을 좀 더 감액할 수 있다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이번 대법원 판결로 사용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더 어려워졌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도 결론은 실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원심은 손해 발생액 약 271억원을 인정한 뒤 일률적으로 50%의 책임제한을 적용했는데, 그러면 책임제한 후에도 손해 배상액이 135억원을 넘게 되지만 원고가 20억원만 청구했기 때문에 20억원을 인용하였던 사안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어떤 조합원에게는 책임비율을 50%가 아니라 예를 들어 90% 감경하여 10%로 제한해준다고 가정하더라도 약 27억원으로 여전히 원고가 청구한 20억원보다는 많기 때문에 20억원 전부가 인용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책임제한 후 결과가 달라지게 하려면 적어도 7% 정도까지 제한해야 할 것이고, 극단적으로 99%를 감경해 책임을 1%로 제한하더라도 2억7000만원을 배상해야 합니다. 법원이 그렇게까지 큰 비율로 감경한 예를 찾기도 쉽지 않지만, 그렇게까지 감경해도 여전히 조합원 개인이 부담하기에는 큰 액수입니다. 앞으로 법원이 개별 조합원의 책임제한을 얼마나 인정할지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김추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대한변협 등록 노동법 전문 변호사) chu.kim@barun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