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육이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고등학교에서 대입, 대학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어느 정도 끊을 필요가 있습니다.”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창시자’로 알려진 박도순(81) 고려대 명예교수는 11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공교육 정상화 방안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박 교수는 “지금 마치 고등학교가 대입을 위해 거쳐야 하는 중간 과정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 공교육 약화의 원인”이라며 “고등학교에서는 고교 교육목표와 교육과정에 맞게 가르치고, 대학은 대학대로 학생들을 선발한 뒤 (전공에) 필요한 수업을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1980년대 후반 노태우정부의 대통령 교육정책자문회의에서 새로운 입시 제도를 연구했고, 초대 한국교육평가원장을 지내며 1994학년도 수능 도입을 주도한 교육계 원로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
―수능이 도입된 지 벌써 30년이 됐다. 도입 당시 취지는.
“처음 수능은 당시 학력고사의 폐해, 다시 말해 지나치게 암기 위주의 교육이 되고 있는 것을 막기 위해 계획됐다. 대학에서 복잡한 학업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 논리적인 사고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걸 염두에 뒀다. 하지만 처음부터 꼬인 게 사실이다. 애초 수능은 대입을 위한 최소한의 자격시험으로 쓰는 것을 전제했다. 대학들이 수능을 활용해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하자는 취지였는데 대학들이 아예 이(수능 점수)를 선발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 버리면서 변질됐다. 말은 수능이지만 사실상 학력고사와 다를 게 없지 않나.”
―꾸준히 논란이 되는 사교육 문제는 어떻게 보나.
“지금 수능은 여전히 암기 위주의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사교육을 받으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사교육을 하면) 더 좋은 점수를 받고,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데 어느 부모가 이를 마다하겠는가. 초고난도(킬러) 문항 배제처럼 수능 문제를 조금 바꾸는 걸로는 사교육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교육 문제의 근본적 해법은 ‘학교 교육 강화’라는 목소리가 높다.
“공교육이 정상화되기 위해선 고등학교가 대입에 영향을 덜 받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대입에서 필요한 것만 공부를 하게 된다. 애초 교육목적에는 학생의 적성과 소질에 맞게 진로를 개척하고, 전인교육과 같은 것도 포함이 돼 있는데 이런 게 입시 때문에 전혀 되고 있지 않다. 고교가 대학의 하급 학교처럼 돼 버렸다는 얘기다. 이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대입이 고교 교육에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주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회봉사 활동을 반영한다든지, 예체능 같은 교과도 내신성적 또는 교사평가를 반영한다든지 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수능은 어떤 방향으로 개선돼야 하나.
“어려운 얘기다. 이미 학력고사화했기 때문에 이걸 애초 취지대로 자격시험으로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우선 입시 체제가 바뀌고 거기서 수능이 어떤 역할을 할지가 규정돼야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다. 다만 대입에서 수능을 최소한의 기준으로 쓰고, 내신이나 교사평가, 면접 등 고교에서 하고 있는 모든 게 대입에 포함된다면 좋을 것 같다. 다만 공정성에 대한 부분이 담보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