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들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절차 간소화에 뜻을 모았으나 명확한 시간표는 제시하지 않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터무니없다”고 격하게 반발한 가운데 나토는 장·단기 안보 지원 확약 등으로 달래기에 나섰다.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모인 나토 31개 회원국 정상은 11일(현지시간)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나토에 있다”면서도 “가입 조건이 충족되고, 동맹국들이 동의하면 우크라이나에 나토 가입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언제 가입 절차가 시작되는지를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시점을 특정해 가입을 약속할 경우 러시아를 자극해 전쟁이 더욱 격화·장기화할 것을 우려하는 미국·독일 등의 입장과 종전 직후로 가입 시점을 못박아야 한다는 체코·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의 주장 사이에서 절충을 이룬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등을 위해 빌뉴스에 도착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 전쟁 중인 현시점의 나토 가입은 3차 세계대전을 촉발할 수도 있는 무리한 요구라는 데 수긍하면서도, 가입 시간표가 나오지 않은 것은 향후 휴전 또는 종전 단계에서 러시아에 협상 카드를 쥐여주는 꼴이라고 반발했다. 지난해 2월 개전 후 서방 각국의 지원을 얻기 위해 절제된 언어를 사용해온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터무니없다”, “나토는 우리를 동맹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다”며 강경한 어조로 비판했는데, 이는 나토 정상회의 폐막(12일) 전 자국 입장이 좀더 반영된 최종 정상선언이 나올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하는 공공외교의 일환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평가했다.
나토는 우크라이나 반발을 의식해 가입 신청국이 거쳐야 하는 회원국 자격행동계획(MAP) 절차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또 회원국과 우크라이나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나토·우크라이나 위원회를 신설키로 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나토 회의를 소집할 권리를 갖게 된다고 영국 BBC방송은 전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은 별도 합의를 통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항하고, 공격을 막을 수 있도록 장기적인 안전보장을 위한 프레임워크(틀)를 만들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서 G7 국가들은 전쟁의 반복을 막기 위해 종전 이후에도 우크라이나에 ‘지속적인 군사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G7의 선언 이후 각국은 우크라이나와 양자협의를 거쳐 구체적인 안전보장 의무를 도입할 예정이다. 다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옌스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G7의 안보 보장 제공 약속과 관련해 “나토 가입을 대체할 수는 없다”면서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지난달 대반격을 개시한 우크라이나군을 돕기 위한 단기 군사지원책도 쏟아졌다. 독일은 레오파르트 전차 25대를 포함한 7억유로(약 1조원) 규모 무기·장비 지원을 약속했고, 영국은 챌린저2 전차 탄약 수천 발과 전투·군수 차량 70여대를 제공하는 한편 이미 공급한 장비의 보수유지 등을 위해 5000만파운드(835억원)를 쓰기로 했다. 프랑스는 영국과 공동 개발한 최신예 장거리 미사일 스칼프(SCALP·영국명 스톰 섀도)를 제공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