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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두 번의 ‘겨울’ 끝 탄생한 챗GPT… AI 대부 “세 번째 겨울 없다” [뉴스 인사이드-AI의 미래]

딥러닝 기술 고안 힌턴 교수 단독 인터뷰

성과 못 냈던 과거와 달리 기술 발전
“사회에 전례 없는 영향 미칠 것” 강조
2023년 전 세계 지출액 200조원 육박 전망

AI 투자 열풍으로 과장광고 우려 커
일각선 ‘또 한 번의 겨울 올 것’ 분석도
“불황기 온다면 규제 마련 시기 삼아야
기대치 재조정 ‘일종의 가을’일 수도”

“‘인공지능(AI)의 겨울’은 오지 않을 것이다.”

‘AI 대부’ 제프리 힌턴(75·사진) 토론토대 교수는 14일 세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AI 겨울이 찾아올 가능성이 있는가’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AI의 겨울은 AI 연구에 대한 자금·관심 등이 감소하는 일종의 ‘불황기’를 말한다. AI 기술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지나치게 커진 상태에서 기대치를 충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찾아왔다. 1974∼1980년과 1987∼1993년, 두 번의 ‘겨울’이 있었다.

힌턴 교수는 “세 번째 겨울은 없다”고 단호히 답했다. 그 이유는 ‘딥러닝의 발전’이라고 덧붙였다.

 

딥러닝은 AI가 인공신경망을 이용해 스스로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학습하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AI는 글·그림을 비롯한 ‘창작물’들을 생성해낸다.

GPT-3.5가 바로 1750억개의 파라미터(매개변수)를 통한 딥러닝 기술의 대표 성공 사례다. 파라미터는 인간 뇌의 뉴런 사이를 연결해 정보를 학습하고 기억하는 시냅스 역할을 한다. 파라미터가 늘어날수록 생성형 AI도 고도화한다. 이미 세상을 놀라게 한 챗GPT가 앞으로 더 똑똑해질 일만 남았다는 얘기다.

힌턴 교수는 “AI의 발전은 눈앞에 닥친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AI는 현재 컴퓨터 비전, 초거대 언어모델(LLM) 외에도 AI가 적용된 많은 애플리케이션에서 더할 나위 없이 잘 작동하고 있다”며 “이는 사회에 전례 없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관심이 시들해질 수밖에 없던 지난 두 번의 겨울 당시 AI 발전 수준과 지금 AI가 도달한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다.

힌턴 교수는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를 탄생시킨 딥러닝 기술을 고안해낸 AI 연구의 선구자다. 그는 지난 4월 “AI의 위험성에 대해 자유롭게 알리고 싶다”며 10년간 몸담은 구글을 퇴사했다. 퇴사 후 국내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I 폭염’ 속 겨울의 징조

힌턴 교수의 말대로 현재 AI는 ‘여름’을 넘어 ‘폭염’ 수준의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정보기술(IT) 시장조사업체 IDC는 올해 전 세계에서 AI 관련 지출액이 1540억달러(약 197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미국 내 생성형 AI 기업에 대한 투자액도 1분기(1∼3월)에만 최소 120억달러(약 15조3720억원)를 기록해 전체 투자액은 지난해 45억달러(약 5조8000억원)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오픈AI가 챗GPT 초기 모델을 내놓았던 2018년(약 4억800만달러)과 비교하면 30배 넘게 늘어난 액수다.

그러나 곳곳에서 AI 겨울의 전조증상도 포착된다. 지난겨울을 초래했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과장광고다. 당시 AI 기업은 보유하고 있는 기술이나 아이디어의 사업성을 과도하게 부풀려 투자자를 끌어모았고, 결국 원하는 투자수익률(ROI)을 달성하지 못한 투자자들은 AI를 향한 관심을 급속히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AI 투자 열풍으로 기업 운영 등의 경험이 전혀 없는 AI 연구원들의 창업 러시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들을 향한 거액의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고 지난 5월 보도했다.

애플 전직 임원들이 창업한 ‘휴메인’은 오픈AI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 등으로부터 1억달러(약 1300억원)를 투자받았고, 전직 구글 AI 연구원들이 창업한 ‘이센셜AI’는 지난 1월 창업하자마자 기업가치를 5000만달러(약 636억원)로 인정받으며 투자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벤처캐피털 퍼스트마크의 AI 전문 투자자 매트 터크는 WSJ에 “(창업한) 상당수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며 “골드러시(미국 개척시대 발견된 금광에 몰려든 현상)와 마찬가지로 시장은 설익은 아이디어를 가진 수백만개의 기업들을 지탱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AI 붐을 일으킨 챗GPT의 인기도 한풀 꺾인 모양새다. 트래픽 분석업체 시밀러웹에 따르면 챗GPT의 지난달 글로벌 트래픽(PC·모바일)은 5월 대비 9.7%, 웹사이트의 순방문자 수는 5.7% 감소하며 출시 이후 첫 하락세를 보였다.

글로벌 투자은행(IB) RBC 캐피털마켓의 리시 잘루리아 애널리스트는 “실시간 정보를 제공하는 생성형 AI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챗GPT 무료 버전은 2021년 9월까지의 데이터만 학습해 최신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

◆“세 번째 겨울 온다면 기회로”

다만 전조증상이 그대로 겨울로 이어질 거란 전망은 현재로서는 드물다. 미 온라인 매체 빅씽크는 “딥러닝과 빅데이터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이 분야의 자금이 고갈될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며 “어쩌면 우리는 AI에 대한 기대치를 재조정하는 일종의 ‘가을’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두 번의 겨울은 인류에게 분명한 교훈을 남겼다. AI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존 매카시(1927∼2011) 전 스탠퍼드대 명예교수는 2006년 ‘AI의 미래’라는 제목의 선언문에서 “AI의 겨울은 회사에서 돈을 잃은 사람들이 지배했다”며 “AI 연구는 단기적인 프로그램에 의해 지배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AI 연구와 투자 부문에서 장기적인 전략 및 관점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겨울이 또다시 온다면 이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루치아노 플로리디 옥스퍼드대 철학과 교수는 2019년 학술지 기고문에서 “AI의 겨울은 기술·기업·언론이 모두 거품에서 벗어나 냉정함을 되찾고 공상과학적 추측과 과장을 자제하며, AI의 실제 기술 수준을 과장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AI 스타트업 빅플라즈마의 매니 버나베 AI 전략가 역시 지난 4월 미 테크 스타트업 커뮤니티 빌트인과의 인터뷰에서 “겨울을 반드시 나쁜 것만으로 볼 수는 없다”며 “규제 당국과 대중이 매우 빠르게 변화하는 AI 산업의 속도를 따라잡을 기회를 제공하고, 적절한 규제를 마련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주는 시기”라고 말했다.


이지안 기자 ea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