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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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도깨비 폭우’ 덮친데 미흡한 수해 대처 겹쳐 ‘아水라장’ [전국 ‘물폭탄’]

피해 왜 컸나

충남 청양 나흘 동안 600㎜ 등
곳곳서 단기간에 많은 비 내려
전문가 “배수용량 한계로 위험”
지반 약화 불러 산사태도 속출

7월 중순 폭우는 충북 오송 지하차도 사고와 경북 예천 산사태를 포함해 전국에 수많은 인명 피해를 불렀다. 16일 현재 전국적으로 집계된 사망·실종자가 50명에 육박하고 있다. 최근 나흘간 충남 청양에 600㎜의 호우가 쏟아지는 등 예측하기 힘든 폭우가 한반도를 오르내리며 강타해 인명 피해를 키웠다. 밤중에 호우가 집중된 것도 대비를 힘들게 했다. 여기에 미흡한 수해 대처가 겹치면서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졌다.

16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에서 한 주민이 산사태로 부서진 터전에서 주저 앉아 있다. 연합뉴스

1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까지 집중호우로 인한 사망자는 33명(경북 17명·충북 11명·충남 4명·세종 1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실종자는 10명(경북 9명·부산 1명)이다. 경북에서는 이날 낮 12시 기준 18명이 산사태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9명은 실종 상태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에서는 물에 휩쓸렸다가 구조돼 치료받던 주민 1명이 이날 숨졌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에서는 전날 오전 7시27분 산사태가 발생해 부녀지간인 2명이 사망했다. 경북 문경시 산북면에서도 전날 오전 2시35분 산 비탈면이 무너지면서 주택 2채가 토사에 매몰돼 한 명이 실종됐다.

 

대전·세종·충남에서는 5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전날 오전 4시 53분 세종시 연동면 한 야산 비탈면에서 쏟아진 토사가 인근 주택 앞을 덮쳐 70대 주민 1명이 숨졌다. 같은 날 오전 7시쯤 충남 청양군 정산면에서도 폭우에 유실된 토사가 주택으로 쏟아져 60대 여성이 사망했다. 충남 공주시 옥룡동에서는 15일 오후 3시16분 남성 1명이 물에 휩쓸린 뒤 1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14일 충남 아산시 둔포면 봉재저수지에서 실종됐던 70대 주민은 16일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주민은 14일 오후 5시34분 봉재저수지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아들을 찾아가던 중 물넘이 근처에서 미끄러지면서 실종됐다.

충북 지역도 오송 지하차도 사고를 포함해 인명 피해가 컸다. 충북 충주시 봉방동 충주천변에서는 15일 오전 7시10분쯤 70대 여성이 급류에 떠내려가는 모습이 목격됐으나 같은 날 오후 1시40분쯤 숨진 채 발견됐다. 충북 괴산군 문광면에서는 이날 오후 5시56분 폭우에 휩쓸린 60대 아버지와 부친을 구하려던 30대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자택 인근에서 염소를 키우는 60대 아버지는 출산이 임박한 가축을 확인하러 나섰다가 수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군과 소방당국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강원 원주시 신림면에서는 15일 오전 8시22분 마을 길을 건너던 60대 주민이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이 주민은 소먹이를 주려고 마을 길 양쪽을 로프로 연결한 뒤 안전고리를 걸어 건너다 거센 물살에 넘어지면서 급류에 휩쓸린 것으로 추정됐다.

 

이틀 사이 전국적으로 인명 피해가 속출한 데는 올해 막대한 장맛비가 단기간에 쏟아진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중대본에 따르면 13∼16일 나흘간 누적 강수량은 충남 청양 569.5㎜, 충남 공주 510.5㎜, 전북 익산 498.5㎜, 세종 485.3㎜, 경북 문경 483㎜, 충북 청주 472㎜에 달한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배수 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 시간에 50∼100㎜의 비가 집중해서 내리면 하루 종일 많은 비가 올 때보다 더 위험하다”며 “이번 장마는 오죽하면 도깨비라고 할만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전국을 때려 피해가 컸다”고 설명했다.

15일 충청권에 쏟아진 폭우로 세종시 조치원읍 조천연꽃공원 인근 주택에 토사가 흘러내렸다. 연합뉴스

누적된 비로 지반이 약해지다 보니 산사태도 속출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14일까지 20일간 중부지방에 평균 424.1㎜, 남부지방에 평균 422.9㎜의 비가 왔다. 중부 지방은 평년(1991~2020년 평균)에 31.5일에 걸쳐 378.3㎜의 장맛비가 내린다. 남부 지방도 평년에는 31.4일 동안 341.1㎜가 온다. 올해는 단 20일 만에 이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한반도는 암석 위로 흙이 1m 이상 덮인 지형이 많아 토양이 많은 습기를 머금을 경우 암석과 지표의 경계면에 수막현상이 발생해 미끄러워질 수 있다. 산사태 피해 지역에서 입을 모아 ‘수십년 살면서 이런 산사태는 처음’이라고 할 만큼 유례없이 많은 장맛비가 지반을 약화시켰다. 이 교수는 “일주일 가까이 계속 비가 와서 지반이 아주 취약해진 상태에서 폭우가 내리면 산사태나 붕괴가 일어나기 아주 좋은 조건”이라며 “이런 요인들이 1차적으로 인명 피해를 많이 가져왔다면, 관계기관이 좀 더 선제적으로 대응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고 말했다.

16일 충남 공주시 금강철교(국가등록문화재) 밑에 여전히 많은 물이 흐르고 있다. 연합뉴스

산사태 취약지역은 전국 17개 시·도 중에서 경북에 가장 많아 올여름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7개 특·광역시 중에는 울산이 1위였다. 정희용 국회의원(국민의힘)이 산림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서다. 산림청의 ‘산사태 취약지역 내 거주민 현황 및 산사태 피해 현황’을 살펴보면, 올해 6월 기준 경북의 산사태 취약지역은 4935곳. 다음으로 강원(2892곳), 전북(2311곳), 경남(2293곳) 등 순이었다. 광역시 중에는 울산이 945곳으로 가장 많았다. 대전(515곳), 부산(369곳), 서울(270곳) 등 순으로 뒤를 이었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발생한 산사태 피해 건수는 총 9668건이다. 경북이 2156건으로 가장 많이 피해를 봤던 것으로 집계됐다.


송은아 기자, 울산=이보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