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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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평균 강수량 ‘훌쩍’… ‘아水라장’된 전국 [전국 '물폭탄']

피해 왜 컸나

충남 청양 나흘 동안 600㎜ 등
곳곳서 단기간에 많은 비 내려
전문가 “배수용량 한계로 위험”
지반 약화 불러 산사태도 속출

당분간 집중호우 지속

19일까지 대부분 지역 비 오다
20∼21일엔 제주 外 소강 국면
주말부터 다시 전국에 비 예보

7월 중순 폭우는 충북 오송 지하차도 사고와 경북 예천 산사태를 포함해 전국에 수많은 인명 피해를 불렀다. 16일 현재 전국적으로 집계된 사망·실종자가 50명에 육박하고 있다. 최근 나흘간 충남 청양에 600㎜의 호우가 쏟아지는 등 예측하기 힘든 폭우가 한반도를 오르내리며 강타해 인명 피해를 키웠다. 밤중에 호우가 집중된 것도 대비를 힘들게 했다. 여기에 미흡한 수해 대처가 겹치면서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졌다.

 

1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경북에서는 이날 오후 6시 기준 19명이 산사태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8명은 실종 상태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에서는 물에 휩쓸렸다가 구조돼 치료받던 주민 1명이 이날 숨졌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에서는 전날 오전 7시27분 산사태가 발생해 60대 아버지와 20대 딸이 사망했다. 경북 문경시 동로면에서는 같은 날 태국인 30대 여성이 주택이 침수돼 숨졌다.

한 도로에 장대비가 내리고 있다. 뉴스1

대전·세종·충남에서는 5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전날 오전 4시 53분 세종시 연동면 한 야산 비탈면에서 쏟아진 토사가 인근 주택 앞을 덮쳐 70대 주민 1명이 숨졌다. 같은 날 오전 7시쯤 충남 청양군 정산면에서도 폭우에 유실된 토사가 주택으로 쏟아져 60대 여성이 사망했다. 충남 공주시 옥룡동에서는 15일 오후 3시16분 남성 1명이 물에 휩쓸린 뒤 1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14일 충남 아산시 둔포면 봉재저수지에서 실종됐던 70대 주민은 16일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주민은 14일 오후 5시34분 봉재저수지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아들을 찾아가던 중 물넘이 근처에서 미끄러지면서 실종됐다.

 

충북 지역도 오송 지하차도 사고를 포함해 인명 피해가 컸다. 충북 충주시 봉방동 충주천변에서는 15일 오전 7시10분쯤 70대 여성이 급류에 떠내려가는 모습이 목격됐으나 같은 날 오후 1시40분쯤 숨진 채 발견됐다. 충북 괴산군 문광면에서는 이날 오후 5시56분 폭우에 휩쓸린 60대 아버지와 부친을 구하려던 30대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자택 인근에서 염소를 키우는 60대 아버지는 출산이 임박한 가축을 확인하러 나섰다가 수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 원주시 신림면에서는 15일 오전 8시22분 마을 길을 건너던 60대 주민이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이 주민은 소먹이를 주려고 마을 길 양쪽을 로프로 연결한 뒤 안전고리를 걸어 건너다 거센 물살에 넘어지면서 급류에 휩쓸린 것으로 추정됐다.

이틀 사이 전국적으로 인명 피해가 속출한 데는 올해 막대한 장맛비가 단기간에 쏟아진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중대본에 따르면 13일부터 16일 오후 5시까지 나흘간 누적 강수량은 충남 청양 570.5㎜, 충남 공주 511㎜, 전북 익산 499.5㎜, 세종 486㎜, 경북 문경 485.5㎜, 전북 군산 480.3㎜에 달한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배수 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 시간에 50∼100㎜의 비가 집중해서 내리면 하루 종일 많은 비가 올 때보다 더 위험하다”며 “이번 장마는 오죽하면 도깨비라고 할만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전국을 때려 피해가 컸다”고 설명했다.

 

누적된 비로 지반이 약해지다 보니 산사태도 속출했다. 한반도는 암석 위로 흙이 1m 이상 덮인 지형이 많아 토양이 많은 습기를 머금을 경우 암석과 지표의 경계면에 수막현상이 발생해 미끄러워질 수 있다. 산사태 피해 지역에서 입을 모아 ‘수십년 살면서 이런 산사태는 처음’이라고 할 만큼 유례없이 많은 장맛비가 지반을 약화시켜 피해가 발생했다. 이 교수는 “일주일 가까이 계속 비가 와서 지반이 아주 취약해진 상태에서 폭우가 내리면 산사태나 붕괴가 일어나기 아주 좋은 조건”이라며 “이런 요인들이 1차적으로 인명 피해를 많이 가져온 동시에, 관계기관이 좀 더 선제적으로 대응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고 말했다.

 

산사태 취약지역은 전국 17개 시·도 중에서 경북에 가장 많아 올여름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7개 특·광역시 중에는 울산이 1위였다. 정희용 국회의원(국민의힘)이 산림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서다.

 

산림청의 ‘산사태 취약지역 내 거주민 현황 및 산사태 피해 현황’을 살펴보면, 올해 6월 기준 경북의 산사태 취약지역은 4935곳으로 월등히 많았다. 다음으로 강원(2892곳), 전북(2311곳), 경남(2293곳) 등 순이다. 광역시 중에는 울산이 945곳으로 가장 많았다. 대전(515곳), 부산(369곳), 서울(270곳) 등 순으로 뒤를 이었다.

16일 경북 예천군 백석리 산사태 현장에서 구조 대원과 수색견이 발이 푹푹 빠지는 진창에서 수색을 계속하고 있다.연합뉴스

◆장마 평균 강수량 ‘훌쩍’… 비 더 퍼붓는다

 

한 달 동안 내릴 장맛비가 사흘간 570㎜ 퍼부으면서 올여름 장마 기간 강수량은 이미 평균치를 훌쩍 넘어섰다. 주말 동안 폭우 피해가 집중된 충청권 등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집중호우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16일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장마철에 돌입한 뒤 전국에 400㎜ 넘는 비가 쏟아졌다. 지난 20일간 중부지방에는 평균 424.1㎜, 남부지방에 평균 422.9㎜, 제주에 평균 306.9㎜ 비가 왔다.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은 평년 장마철 강수량보다 10~20% 많은 수준을 기록했다. 평년 장마 기간은 중부지방 31.5일, 남부지방 31.4일, 제주 32.4일인데 올해의 경우 단 20일 만에 평년 장마철 강수량을 넘어섰다.

 

호우가 집중됐던 지난 13일부터 이날 오후 2시까지 문경 동로면에는 485.5㎜, 청주 상당구에는 474.0㎜의 비가 내렸다. 각각 평년 장마철 강수량보다 32.8%, 37.5%씩 많은 비가 불과 사흘여 만에 내렸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장마철 강수량은 중부지방을 기준으로 이미 최근 10년 사이 네 번째로 많다. 문제는 비가 더 내릴 것이라는 점이다. 기상청은 “최근 10년간 짧은 강수량치고 10년치 평균을 상회한다”며 “정체전선 강수가 늘 것으로 보여 강수량도 더 증가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호우로 인한 인명 피해가 늘어가고 있는 16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행정안전부 서울상황센터에 방제기상시스템 기상 레이더 등 화면이 나타나 있다. 뉴스1

기상청 중기예보에 따르면 19일까지 전국 대부분 지역에 비가 내리고, 20∼21일은 제주를 제외하고는 소강상태에 들어갔다가 22∼24일 다시 전국에 비가 오겠다. 25∼26일에는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빗방울이 예상된다.

 

국내에서 폭염과 호우특보를 오가는 급격한 날씨 변화에 경각심이 높아진 가운데, 엘니뇨 현상 등 영향으로 세계 곳곳은 이상기후에 신음하고 있다.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이탈리아 당국은 15일(현지시간) 로마를 포함한 16개 도시에 가장 높은 단계 폭염주의보를 발령하고 다른 9개 도시에 2급 폭염주의보를 발령했다. 유럽우주국(ESA)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사르데냐섬의 기온이 48도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은 기록적인 폭우와 폭염이 동시에 발생했다. 16일 아키타현 아키타시에서는 하루 만에 300㎜가 넘는 비가 쏟아졌고, 도쿄도 등에서는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이어졌다. 과학자들은 올해 엘니뇨가 아직 초기 단계이며 겨울에 정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송은아·박유빈·윤솔 기자, 울산=이보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