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담임을 맡고 있는 반 학생과 학부모, 졸업생이 조문을 왔습니다. 우리 조카가 올바르게 살았고 올바르게 가르친 것 같습니다.”
지난 15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로 생을 달리한 초등학교 교사 김모(30)씨의 이모부 유모(54)씨가 침통한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유씨는 지난 5월 결혼해 식장에 밝은 표정으로 들어오던 조카 모습이 선하다며 차오르는 먹먹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16일 충북 청주시 서원구 하나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씨의 빈소는 이날 오후 내내 적막 속에 커졌다 잦아들곤 하는 울음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석교초 6학년1반 담임인 김씨 빈소를 친지와 친구, 학교 교장과 동료 교사 외에도 여러 학생이 찾았다. 유씨는 “20대 성인 중에도 조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애(학생)들이 조문의 경험이 없어서 말을 못 하고 눈물만 흘리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어린아이들이 많이 와서 애도를 표했단 게 그만큼 조카가 애들에게 좋은 선생님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끝을 흐렸다.
김씨는 전날 임용고시를 보는 처남을 데려다주던 길에 지하차도에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자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실종됐던 김씨는 발견된 뒤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유족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른 죽음에 이번 사고는 ‘인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씨는 “아마 다음 집중호우 때부터 통행을 통제하겠지만, 이태원 압사 참사처럼 꼭 누가 죽어야만 대책이 마련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전날 충북도 고위공무원이 와서 지하차도를 2019년 개통한 이래 그간 사고가 없어서 통제를 안 했다더라”며 “미호강 지하차도 거리가 600여m에 불과하고 물이 3∼4분 만에 다 찼는데 통행을 차단할 만큼 물이 차지 않았다고만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지하차도 앞뒤로 경찰차 한 대씩만 있어도 막을 수 있던 사고를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유씨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일 처리 좀 그만하라”며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발로 재난문자를 많이 보내는데 이마저 마치 안내했으니까 사고가 나도 책임을 안 진다는 면피 같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왜 이런 때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안전사고를 막을)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자연재해라고만 하는지 모르겠다”며 “뒤늦게 시에서 ‘장례에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는데 이 또한 ‘이런 사후행위를 했다’는 것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폭우 당시 지하차도를 지나가던 747번 버스에 탔던 승객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이어졌다. 빈소가 마련된 청주성모병원에서 만난 김모(66)씨는 “뉴스에서만 보던 일이 내 가족의 일이 됐다”며 누나 김모(69)씨 소식에 말을 잇지 못했다. 요양보호사인 김씨는 평소처럼 전날 오전 8시쯤 747번 시내버스를 타고 오송의 한 아파트로 재가방문에 나섰다가 오전 8시30분쯤 남편과의 통화를 끝으로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김씨는 이날 747번 버스 입구 쪽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김씨의 동생은 “사고가 나기 직전 누님이 매형에게 전화해 ‘버스에 물이 차오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당황해했다고 했다”며 “매형이 어떻게든 창문을 깨고 나오라고 했는데 결국 버스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고 울먹였다. 그는 “매형이 전화 통화하는 중에도 창문을 깨려는 듯 탕탕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고 했다”며 “누님의 팔꿈치나 팔다리가 온통 멍이었다고 했다”고 먹먹해했다.
그는 “누님이 청주에서 요양보호사로 10년 가까이 근무하며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이 버스를 타고 매일 출근했다”며 “버스가 평소와 다른 노선으로 이동했는데 왜 지하차도는 통제하지 않았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고 황망해했다.
747번 버스의 원래 노선이던 고가도로나 지하차도 옆 도로는 미호강 홍수 경보로 통행이 차단된 반면 궁평2지하차도는 통행이 허용된 상태였다.
전날 발생한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로 현재까지 발견된 사망자는 이날 오후 7시 기준 총 9명이다. 여성 6명, 남성 3명으로 빈소는 청주시 내 하나병원, 성모병원, 충북대병원에 나눠 마련됐다. 9번째 희생자가 신원 확인을 위해 하나병원으로 이송되자 가족 얼굴에는 초조함이 역력했다. 오후 2시20분쯤 병원으로 구급차 한 대가 사이렌을 울리지 않고 들어오자, 빨간색 응급실 간판 아래서 실종자 가족 10명가량이 이를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구급차 뒷문이 열리고 구급대원들이 파란색 천으로 싸인 들것을 들고 내리자 가족 중 한 명은 “엄마!”라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울음을 터뜨렸다. 구급대원들이 신속하게 들것을 응급실 안으로 들고 가자, 가족들은 오열하면서 그 뒤를 따랐다.
아직 수색 중인 실종자 가족은 눈물도 흘리지 못했다. 이들은 소방당국이 1·2차 검안 병원으로 지정한 여전히 하나병원에서 발견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구급차가 올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응급실 주변을 서성였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번 지하차도 침수 참사로 인한 실종자는 총 9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