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사설] 불체포특권, 포기 조건 붙일 바엔 아예 헌법 고쳐 폐지하라

어제 제헌절 75돌을 맞았다. 국회가 헌법을 공포해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초석을 다진 것을 기념한 날이다. 국회의 존재 의미를 일깨워주는 날을 맞아 국회의원 사명과 의무를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국회가 헌법 정신에 맞게끔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는가. 대다수 국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이다.

국회에서 정치가 사라지고 정쟁만 남은 지 오래됐다. 국가 미래를 고민하고 민생을 살피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여야로 편을 갈라 매일 죽고살기식 싸움만 벌인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 획정도 못한 상태다. 국민이 곱게 볼 리가 없다. 의원 증원과 연계한 방안이 부정적인 여론에 막혀 말을 꺼내지조차 못하는 것은 자업자득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어제 제헌절 경축사를 통해 내년 4월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대통령 4년 중임제와 국무총리 국회 복수 추천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등과 같이 여야가 모두 찬성하고 국민이 받아들일 만한 개헌안을 총선 때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것이다. 정치 제도를 바꿀 굵직한 사안은 몰라도 불체포특권 폐지는 국민의 심각한 정치 불신을 감안할 때 진지하게 논의해 봄직하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국회의 자율성 보장에 기여한 불체포특권이 지금은 범법행위를 저지른 의원의 ‘방탄’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되어서다.

더불어민주당의 선택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김기현 대표 국회연설을 통해 불체포특권 포기를 포함한 ‘정치쇄신 3대 과제’에 여야가 공동서명하자고 제안한 데 이어 의원 112명 중 101명이 포기 서약까지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대선과정에서 불체포특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상황이 바뀌어 ‘사법리스크’에 내몰리자 표변했다. 국회 다수 의석을 활용해 자신에 이어 노웅래·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처리했다.

불체포특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당이 망할 수 있다는 혁신위원회 경고에도 지난 13일 의총에서 포기 요구를 끝내 외면했던 민주당 내에 변화 흐름이 감지된다. 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한 31명 의원의 포기 선언이 나비효과를 불러온 것이다. 하지만 조만간 채택할 결의안에는 ‘정당한 영장 청구’일 때에만 특권을 포기한다는 조건이 붙을 것이라고 한다. 정당성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계속 특권을 누리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구차한 ‘꼼수’로 위기를 모면하려 할 게 아니라 아예 헌법을 고쳐 폐지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