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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타는 깡통전세 '드림팀'…"서울서 280채 털어먹었다" [사건수첩]

1년10개월간 서울 등 수도권에서 이른바 ‘깡통전세’를 돌려 310억원을 챙긴 미국 유학파 20대 등 사기 일당 91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 사기 일당은 화려한 면면을 자랑했다. 부유한 미국 유학파부터 부동산중개인, 감정평가사, 조직폭력배, 대출브로커 등이 범죄를 위해 뭉친 ‘전세사기 드림팀’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일보가 경찰 수사결과 등으로 이들의 깡통전세 사기 행각을 재구성했다.

 

2020년 9월쯤, 미국 유학파 20대 A씨는 다년간 부동산업체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부동산 투자에 눈을 떴다. A씨 주변엔 건설업체 관계자도 많았다. 부동산 시장의 허점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깡통전세사기 일당 총책 A씨 등 2명이 사용한 포르쉐. 울산경찰청 제공

처음엔 ‘갭 투자’로 돈을 벌기로 했다.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 만큼 돈을 가지고 집을 산 뒤,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다 집값이 오르면 팔아넘겨 차익을 얻는 방식이다. 그 때쯤 친구 소개로 같은 나이인 B씨를 알게 됐다. 둘은 금세 의기투합했다.

 

◆깡통전세, 바지사장 준비…수도권 빌라·오피스텔만 물색 

 

돈 버는 법을 바꾸기로 했다. 아무런 자본없이 벌 수 있는 방법이었다. ‘깡통전세’였다. 번듯한 명함이 필요했다. 믿음을 주기 위해서다. 2021년 1월 경기 김포에 사무실을 차리고, ‘부동산컨설팅’이라는 명함을 팠다. 일이 잘못될 경우를 위해 모든 일을 책임질 또래 ‘바지사장’도 구했다. 군대 후임, 동네서 노는 동생 등 모두 8명이 모였다.

 

A씨 등은 서울 강서·영등포구, 인천 미추홀구, 부천 등 수도권만 공략했다. 매매물량 중 빌라·오피스텔을 찾았다. 잘 팔리지 않고, 시세를 일반인이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곳만 골라냈다. 재개발 예정이라는 말이 나도는 곳이나, 신축 빌라가 들어서는 동네를 대상으로 삼았다. 범행 대상 부동산과 세입자 물색엔 부동산중개인 4명이 투입됐다.

 

건물 매도인에겐 “빨리 팔아주겠다. 대신 실거래가보다 30% 이상 높게 매매계약(업계약)서를 작성해달라”고 접근했다. 범행이 이뤄질 당시 부동산은 취·등록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문제로 매매보다는 전세를 선호하는 분위기였다. 팔려는 사람은 있지만 사려는 사람은 없고, 전세물량은 부족해 세입자는 구하기 쉬웠다는 의미다.

 

이들은 바지사장의 명의를 내세워 빌라 등의 매수계약을 했다. 서울 강서구의 2억원짜리 빌라는 세입자에게 2억5000만원의 보증금을 받았다. 세입자를 떠안는 조건으로 빌라를 매입하고, 자신들은 5000만원을 중간에서 챙겼다.

 

전세사기단이 허위매수자를 모집할 때 사용한 홍보문구. 울산경찰청 제공

◆본격 범행 나서며 조폭·감정매수인도 합류

 

더 많은 돈을 벌려면 더 많은 명의가 필요했다. 서울에서 울산으로 내려가 조직폭력배가 된 지인이 합류했다. 울산 조폭은 명의를 빌려주는 ‘가짜매수인’을 모집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카카오톡 배포, 주변 소개 등으로 모집했다. 100만원의 사례금을 지급하는 조건을 내걸고, ‘실투자금 0원. 추후 시세차익 기대’, ‘불장’, ‘무조건 오른다’ 같은 홍보 문구를 이용했다. 가짜 매수인들은 “2년 뒤면 집을 다시 사가겠다. 손해볼 일이 없다”는 말에 명의를 내줬다.

 

감정평가사도 이들 사기단에 등장했다. 임차인들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반환보증보험금을 참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다. 감정평가사는 보증보험금의 기준이 되는 감정평가액을 이들 사기단이 말하는 전세보증금액에 맞춰 HUG에 제출했다. 이런 방식으로 이들은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수도권의 빌라·오피스텔 280여채를 이용해 310억원을 가로챘다. 이들 중 일부는 가짜 집주인 명의로 건물을 담보로 제공하고 1억~1억5000만원까지 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기도 했다.

 

전세사기단은 범죄로 벌어 들인 돈으로 한강과 경기도 가평에서 제트스키를 타는 호화 취미생활을 즐겼다. 울산경찰청 제공

◆포르쉐·BMW X7 굴리고 선상파티 호화생활

 

1년10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거액의 돈을 번 A씨와 B씨는 호화생활을 즐겼다. 2억원대 하는 포르쉐를 타고, 주말이면 BMW X7에 자신의 제트스키를 실어 가평으로 떠났다. 한강에서 광란의 선상파티를 여는 것도 취미생활 중 하나였다.

 

모든 범행의 중심에 있던 A씨는 철저히 자신을 숨겼다. 사기단에 가담한 대다수가 A씨가 총책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였다. 모든 금전거래는 바지사장의 이름으로 했다. 공범들에게 사례금을 줄 때는 바지사장 명의 계좌에서 이체를 했지만, 자신은 현금으로 인출해서 가져갔다. 바지사장 명의의 휴대전화로 바지사장인 척 통화하며 범행을 지시하기도 했다. 경찰 조사가 시작된 뒤에는 공범들에게 바지사장이 총책이라고 진술하도록 했다. 대형 로펌을 대동해 공범들의 수사상황을 챙기며 자신이 드러나는지 살피기도 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보통 머리가 아니다. 사기 폼 자체가 잡범 수준을 넘어섰다”고 혀를 내둘렀다. 

 

깡통전세 피해는 세입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이름 뿐인 가짜 건물주만 남게되면서다. 가짜 건물주는 대부분 무직이거나 식당 종업원, 주점 직원 등으로 보증금을 내어줄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로 파악됐다. 세입자 중 27명은 고령 등을 이유로 주택도시보증공사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깡통전세’ 피해에 대한 구제를 전혀 받지 못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A씨 등 20명을 사기,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 범죄단체조직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에 가담한 공인중개사와 감정평가사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