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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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속인 미성년자에 술 팔아 법정 서는 영세업자들 [이슈+]

업주, 미성년자에 술 팔면 식품위생법·청소년보호법 적용
식품위생법은 미성년자에 속은 업주는 처분 면책해 줘
청소년보호법, 면책 조항 없어… 檢의 정상 참작에 기대
주류 판매자 피해 떠안는 구조에 불안에 떠는 자영업자

서울 강서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지난 2월9일 서울남부지법 한 법정 피고인석에 섰다. 혐의는 청소년보호법 위반.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고 청소년 5명에게 소주와 맥주를 판매했다는 것이다. 이미 A씨는 1심에서 벌금 30만원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이날은 항소심 선고기일이었고, 재판부는 A씨에게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형이 감형된 것이다.

 

시간을 돌려 사건 당일로 가보자. 2021년 11월 26일, A씨가 운영하는 식당에 청소년 5명이 들어왔다. 이들은 2003년생으로 두 달 뒤면 자유롭게 술을 마실 수 있었다. A씨는 이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다. 이때 일행 중 1명이 성인의 유도단증을 보여줬다. 이에 A씨는 일행들이 성인이라 판단, 소주 7병과 맥주 2병, 생맥주 3잔을 팔았다.

지난 2022년 12월 한 음식점에서 계산하지 않고 도망간 테이블에 ‘저희 사실 미성년자예요, 죄송합니다.’라는 메모만 남겨져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항소심 재판부는 “일행 중 1명은 피고인에게 성인의 유도단증을 보여주는 등 적극적으로 나이를 속였다”며 “피고인은 소규모로 영업을 하는 자영업자로서 경제상황이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원심의 형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A씨는 이들에게 술을 판 뒤 1년 3개월이 지나서야 선고유예 판결을 받고 사건을 매듭지었다. 하지만 그간 형사처벌 전력이 전혀 없었던 A씨는 이 일로 전과를 남기게 됐다.

 

18일 ‘2021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적발된 5116건 가운데 주류판매가 3381건(66.1%)으로 가장 많았다.

 

업주가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매했을 때 적용받는 법은 식품위생법과 청소년보호법 2가지다. 식품위생법은 미성년자에게 주류를 판매하면 행정당국이 업장 영업 취소나 6개월 이내의 영업정지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청소년보호법은 주류를 판매한 자를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식품위생법의 경우 미성년자의 신분증 위조나 변조, 도용으로 업주가 청소년인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처분이 면책된다. 하지만 청소년보호법은 따로 면책 조항이 없다. 현재는 업주가 검사를 했지만 미성년자가 위조 신분증을 사용했을 땐 경우에 따라 검찰이 정상을 참작해 기소유예 처분을 해주는 식이다.

서울 중구 을지로 노가리 골목 주점이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위조 신분증을 검사한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재판에 넘겨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 광주지법 형사항소3부(재판장 김성흠)는 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B(43)씨에게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B씨는 2021년 5월 11일 전남 순천의 한 식당에서 16세 청소년에게 소주 2병을 판 혐의를 받았다. 당시 B씨는 신분증 검사를 했는데, 이 청소년은 자신과 외모가 비슷한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제시하며 B씨를 속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며 “청소년 주류 판매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어렵다”고 판시했다.

 

미성년자에게 주류를 판매한 업주들이 피해를 떠안는 구조이다 보니 업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자영업자 커뮤니티엔 미성년자 술 판매와 관련해 고민을 토로하는 글이 한 달에 10건 이상씩 꾸준히 올라온다.

 

술집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최근 “여자 두 분이 와서 칵테일을 마시고 갔는데 직원이 신분증 검사를 했다”며 “그런데 그날 자정쯤 경찰들이 와서 그 사람들이 미성년자였다며 저희가 경찰서와 구청에 직접 소명을 해야 한다고 한다. 너무 억울하다”고 적었다. 또 다른 자영업자도 “CCTV로 직원이 확인하는 장면이 있는데 구청에서는 전혀 닮지 않았는데 받았다는 이유로 경찰 조사 결과에 따라 영업정지가 될 수 있다고 했다”며 “억울하다”고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미성년자 주류 판매를 둘러싼 청소년보호법이 문제가 되자 개정안도 꾸준히 발의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은 2020년 7월 술집 등에 신분증 위조나 변조를 감별할 수 있는 장치의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업주들이 위조 신분증을 쉽게 가려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지난 14일엔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부모와 함께 온 미성년자가 술을 마실 경우 업주 처벌을 면해주도록 하는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의원은 “성인이 동석한 청소년에게 음주를 권유하는 경우 정작 동석자는 처벌하지 않는 반면 주류를 제공한 판매자만 처벌받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 경우 식품접객업자에 대한 면책조항을 두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