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박자박 비 오던 날 방문한 한옥 마을의 오래된 맛집 ‘미가’. 리조트가 인근에 있어서 퇴실하는 가족들이 들르는 필수 코스 같은 곳으로 정갈한 반찬과 고소한 황태구이, 깊은 맛을 내는 황태국이 인상 깊은 장소이다.
#강원 황태구이집 ‘미가’
황태요리집 ‘미가’는 근처에 높은 건물이 없어 비 내리는 하늘을 오롯이 볼 수 있는 곳이다. 전날 술기운이 남아 해장을 하기 위해 들른 미가는 입구부터 기분 좋은 마른 장작 냄새가 느껴져 마치 시골집을 찾아온 느낌이 났다. 가게 바로 앞에는 3대 정도 주차할 수 있고 바로 근처에도 전용 주차장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이용하기에 편해 보였다.
음식점 건너편 큰길 너머 리조트에서 여가를 보내다 온 가족 단위 손님이 많아서인지 노포에는 흔치 않은 어린이용 메뉴가 있다. 회전이 빨라 테이블엔 일회용 비닐 테이블 보가 깔려 있다. 어떨 때는 행주로 닦은 테이블보단 이렇게 아예 새로 비닐을 갈아 주는 것이 더 깨끗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어째서인지 정이 가지 않아 아쉬운 느낌이 있다.
1인 1메뉴, 2인분부터 주문할 수 있는 정식은 다행히 황태구이 1개, 더덕구이 1개처럼 교차 주문이 가능했다. 더덕과 황태구이를 같이 맛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꽤 많은 가짓수의 반찬이 상에 올려진다. 반찬 가짓수를 세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쯤에 빨간 양념에 통깨가 가득 뿌려진 황태구이와 더덕구이 정식이 나왔다. 어떤 음식의 색깔만 봐도 배가 부르는 색이 존재한다면 아마 이런 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깔나는 뻘건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진 그릇과 고추장 양념이 철판에 지져 올라오는 향까지 식욕을 한껏 더 돋군다.
아직 자글거리는 철판 위에 놓인 황태구이를 한입 먹어 본다. 색에 비해 슴슴한 그 간과 부슬부슬한 듯 양념의 촉촉함에 젖어 있는 그 맛이 흰 쌀밥과 궁합이 너무 좋았다. 다소 절제된 듯 담아 준 반찬은 주방 쪽으로 가면 리필을 해 주는데 주방 아주머니의 손길이 푸짐하다. 자리에서 식사를 하는 내내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많이 찾아왔다. 문득 아이들에게 황태국은 어떨까 생각이 들었지만 내 쓸데없는 걱정에도 “호로록 호로록” 황태국물을 떠먹는 아이들이 참 대견해 보였다. 비 오는 초여름 강원도, 파도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이곳에서도 바다 내음 물씬 머금고 있는 이 황태구이와 황태국을 먹으며 설악산 먼발치를 둘러보니 이젠 곧 다가올 이곳의 여름이 기대된다. 유명 관광지에서 장사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양한 손님이 찾아오는 와중에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아 ‘맛집’이라는 타이틀이 따라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곳은 살아남은 곳이다. 이곳 ‘미가’의 황태국은 숙취에 힘든 아침이면 불현듯 생각날 그런 맛이다.
#황태구이와 더덕구이
정식을 시키면 밥과 함께 나오는 황태국은 별미다. 뽀얀 국물 맛은 겨우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해 산바람과 지나간 해풍을 담은 옅은 바다 맛이 났다. 파 말고는 딱히 고명 하나 없이 잘게 찢은 황태로 국그릇을 내는 것에서 이곳의 자신감과 가치관을 볼 수 있었다. 취향에 맞게 후추를 뿌려 먹으면 좋을 듯하다. 황태를 고아 만든 국에는 깊은 맛과 개운함이 공존한다. 기름이 적어 한 말을 먹어도 더부룩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뼈로 만든 뽀얀 곰탕에도 지지 않을 힘이 느껴진다.
황태구이는 밥도둑이다. 맵지 않고 진득한 고추장 양념에 부슬부슬한 황태구이를 밥에 얹어 한입 먹으면 눈앞에 놓인 다른 반찬을 먹을 겨를이 없다. 색에 비해 짜지 않은 이 양념 맛은 황태의 고소함을 응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더덕구이는 어떠한가. 황태와는 다르게 아작거리는 그 식감은 오히려 고추장 양념에 지지 않으려는 푸른 깊은 산골의 풀 내음이 돌아 입안을 행복하게 해 준다.
#황태
황태는 추운 겨울날 명태를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한 후 건조한 생선으로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맛을 자랑한다. 양념을 발라 구이, 찜, 전 등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집에서도 황태해장국은 주당들의 아침 밥상에 나오는 단골 메뉴다.
대관령 황태가 유명하다. 1950년 6·25전쟁이 터졌을 때에 피난 온 함경도 주민들이 동해안을 따라 강원에 정착했을 때에 그리운 고향 음식을 떠올리며 대관령 인제 용대리에 덕장을 세우며 황태를 만든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황태를 만들기 위한 강원 대관령의 덕장은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는 과정이 원활하게 돌아가기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황금빛을 띈 것이 잘 만들어진 황태다. 황태를 만들다 조직 질감에 실패한 건 ‘파태’라고 하고 색이 어두운 검정이 된 걸 ‘흑태’라고 한다. 또 날씨가 짓궂어 얼지 않고 말라 버리는 황태를 ‘깡태’ 라고 한다. 어떨 땐 너무 추워 녹지 않고 아예 허옇게 말라 버리는데 이건 ‘백태’라고 한다. 황태는 사람이 덕장에 걸고 바람이 구름을 타며 요리하는 하늘이 정하는 자연의 산물이다.
■황태오일파스타 만들기
<재료>
황태포 80g, 마늘 5톨, 면수 100㎖, 7분 삶은 스파게티면 140g, 청양고추 1/2개, 가루 파르메산 치즈 1작은술, 식용유 약간,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 30㎖, 소금 약간, 후추 약간
<만들기>
①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편 썬 마늘과 황태포를 볶는다. ② 마늘에서 색이 나고 향이 올라오면 면수를 넣고 끓인다. ③ 스파게티면과 슬라이스한 청양고추를 넣은 후 버무린다. ④ 가루 파르메산 치즈를 넣고 버무려 농도를 잡은 후 소금 간을 하고 마지막으로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을 뿌려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