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지하철을 못 타고, 다음에는 집 앞 편의점을 못 가고, 마지막엔 집 밖을 못 나서게 됐죠.”
30대 초반 남성 영수(가명)씨는 10년 전, 20대 초반에 은둔형 외톨이가 됐다. 시작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언제나처럼 술을 마신 아버지가 아프다며 구급차를 불러 달라고 했다. 영수씨는 평소와 같은 술주정으로 생각해 바로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다. 뒤늦게 병원에 실려 간 아버지는 의료 사고까지 겹쳐 안타깝게 식물인간이 된 뒤 스무살 때 돌아가셨다. ‘내가 좀 더 일찍 구급차를 불렀더라면….’ 죄책감이 깊어져서인지 정신 질환이 생겼다. 20대 초반에 공황장애를 겪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정신 병원에 입·퇴원한 뒤엔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생각이 더욱 심해졌다. 인생 궤도를 벗어나 사회에서 탈락한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더 두려워졌다. 그렇게 더는 문지방을 넘어 밖으로 나서지 못하게 됐다.
방 안에 자신을 가둔 영수씨는 대부분 시간을 누워 있었다. 끼니도 거의 배달 음식으로 때웠다. 가끔 가족이 만들어 방 앞에 두고 간 음식을 방 안으로 가져가 먹는 게 전부다. 은둔형 외톨이 중에는 바깥에 대한 갈망으로 뉴스,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사람들도 많다지만 스스로 도태되었다는 자괴감에 그마저도 볼 수 없었다. 최대한 자신이 겪었던 현실과 거리가 먼 콘텐츠를 볼 뿐이었다.
고독(蠱毒)이라는 말이 있다. 뱀, 지네, 두꺼비 등을 항아리에 넣고 서로 싸우게 해 만든 독약을 다른 사람에게 몰래 먹여 해치는 행위를 뜻한다. 영수씨에게 고독(孤獨)은 곧 본인에 대한 고독(蠱毒)이었고, 영수씨의 ‘고독(孤獨)의 방’은 ‘고독(蠱毒)의 항아리’였던 셈이다. 이 방에서 영수씨는 외로움, 회피, 무력함이라는 치명적 독을 만들었다.
20대의 끝자락 영수씨는 남은 인생을 이렇게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죽을 각오로 고독의 항아리를 나와 보기로 했다. 결심은 했으나 방법이 문제였다. 어떻게 방 밖을 나서야 할지 고민하다 인터넷으로 은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찾아낸 은둔형 외톨이 도움 기관은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은둔형외톨이센터가 유일했지만 거주지인 서울에서는 너무 멀었다.
긴 고민 끝에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진로를 고민하는 일반 청년을 대상으로 한 서울시 ‘청년인생설계학교’에 참여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멘토 청년을 화상 채팅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코로나19 탓에 활동이 비대면으로 진행되었기에, 은둔형 외톨이도 고민 끝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청년인생설계학교에서 만난 멘토 덕분에 방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좁은 방을 나온 이젠 과거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도우려 노력하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들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 ‘두더지땅굴’의 초대 게시판 관리자로 활동했다. 도움을 받았던 만큼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그렇기에 최근 살인 사건의 피의자, 정유정이 은둔형 외톨이였다는 초기 보도를 봤을 때는 숨이 턱 막혔다. 부정적 보도로 대중이 은둔형 외톨이를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무서움이 컸다.
은둔형 외톨이가 남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고립·은둔 청년 현황과 지원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19∼34세 청년 가운데 고립·은둔 청년(은둔형 외톨이)의 비율은 2021년 기준 5.0%, 약 53만8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은둔형 외톨이를 터부시하기보단 따뜻한 눈빛과 손길로 집 밖으로 나오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방 안에 있는 분들에게 특화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나올 마음은 있지만 어떻게 나와야 할지, 어떻게 사회에 진입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합니다.”
바깥세상으로 나온 영수씨는 앞으로도 은둔 청년들을 위한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다. 바람은 단순하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여행을 가 보는 것. 그동안 은둔한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보고, 삶을 즐겨 보는 것이 소박한 꿈이다. 지금 방 안에서 이 기사를 읽고 있는 청년들도, 영수씨처럼 소박한 꿈을 꾸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