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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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이상민 탄핵 기각… “이태원 참사, 총체적 부실의 결과”

헌재 쟁점별 판단 들여다보니

“축제 주최자 없고 안전관리 규정 無
정부 재난대응 역량 강화해야” 지적
“중대본 적시 설치 판단도 법 위반 아냐”

재판관 3명 “사후대응 성실의무 위반
국가에 대한 신뢰 훼손” 별개 의견도

헌법재판소는 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기각 결정하면서 “이태원 참사의 원인이 특정인이 아닌 총체적인 부실의 결과”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후 재난대응 과정과 이 장관의 참사 관련 발언에 문제가 있었지만 ‘파면을 할 정도’로 중대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태원 참사 당시 부실 대응 논란을 빚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기각된 25일 오후 이 장관이 서울 압구정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이날 헌재는 9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이 장관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뉴스1

◆“참사 원인은 총체적 부실 결과”

이날 헌재는 이 장관이 이태원 참사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서도 법적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고 봤다. 이번 참사가 특정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 발생한 게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구체적으로 주최자 없는 축제의 안전관리에 대한 명확한 근거 규정이 없던 점과 각 정부기관이 대규모 재난에 대한 통합 대응역량을 기르지 못한 점, 재난 상황에서의 행동요령 등을 충분히 홍보·교육하지 않은 점 등이 총체적으로 작용해 이번 참사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탄핵심판 절차는 공직자의 직무수행에 대한 법적 책임을 추궁함으로써 헌법의 규범력을 확보하는 데 본래의 목적과 기능이 있다”면서 “재난대응의 미흡함을 이유로 그 책임을 묻는 것은 탄핵심판 절차의 본질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장관은) 국민이 안전을 보장받아야 할 일상적이고 개방된 공간에서 발생한 사회재난과 그에 따른 인명 피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정부의 재난대응 역량을 보다 강화하고 전반적인 재난대응체제의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탄핵심판 사건의 쟁점이었던 사전 및 사후 재난대응 조치의무 위반 여부, 이 장관의 발언으로 인한 국가공무원법상 성실·품위유지 의무 위반에 대해선 재판관 전원이 탄핵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사전·사후대응도 탄핵 사유 불인정

우선 다중밀집사고 자체에 대한 예방이나 대비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고 봤다. 그 근거로 이 장관이 안전관리계획 수립 대상 축제 중 대규모·고위험 축제에 대해 미비점 개선·보완 요청 등을 한 점이 거론됐다. 참사 발생 전 이태원에 인파가 밀집할 것을 예상한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다중밀집사고 자체를 경고한 것은 아니었고, 용산구청·용산경찰서 등이 사고 위험성을 이 장관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됐다.

이 장관이 참사 발생 직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를 적시에 설치하지 않았다는 탄핵 청구 사유도 인정되지 않았다.

헌재는 이 장관이 중대본 운영보다는 실질적 초동대응이 우선돼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인정했다. 또 “(이 장관이) 참사를 인지한 직후인 10월29일 23시22분경 군중의 눌림·끼임 상태가 해소돼 구조와 환자·시신의 이송이 이뤄졌다”며 “중대본과 중수본을 설치하지 않아 긴급구조 활동이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중대본과 중수본의 설치·운영의 필요성과 시기에 대한 판단이 ‘현저히 불합리’한 때 이뤄졌다고 볼 수 없어 재난안전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관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뉴스1

◆“성실의무·품위유지의무 위반” 지적도

다만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이 장관의 사후 재난대응이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별개의견을 냈다. 이들 재판관은 “피청구인은 참사 발생을 인지한 때로부터 현장지휘소 도착까지 85∼105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최소한의 원론적 지휘에 허비했다”며 “행안부는 물론 국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 재판관 4명은 이 장관의 사후 발언 일부가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 의무 위반 행위라고 봤다. 다만 이들 모두 이런 잘못이 이 장관을 파면할 정도는 아니라고 결론내렸다.


이종민·안경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