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엿가락 휘듯 내려앉은 서울 영등포구 도림보도육교 사고는 설계부터 안전점검까지 총체적으로 부실한 ‘후진국형 인재’였던 것으로 서울시 감사 결과 드러났다. 25일 서울시 감사위원회의 ‘도림보도육교 붕괴사고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감사위는 설계·점검 업체 등에 12건의 행정처분을 하라고 영등포구청에 통보했다. 다리 공사·철거비 32억원에 대한 손해배상도 설계업체를 상대로 청구할 것을 주문했다.
감사위는 도림보도육교 설계·시공·준공·유지관리 등 관련 업무 전반을 감사했다. 그 결과 고발 5건, 영업정지 2건, 입찰참가제한 2건, 업무정지 1건, 손해배상 1건, 주의 1건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관련자 18명에게는 ‘주의요구’ 등 신분상 조치를 하도록 했다.
감사 결과 설계업체 A사는 2014년 설계용역 과정에서 특허공법으로 제작하겠다고 계약한 후 실제 설계도는 일반공법으로 작성해 납품했다. 이 업체는 무자격 업체에 설계자료 작성 업무를 위탁했으며 아치 거더(구조물을 떠받치는 보)·회전단 등 주요 구조부의 설계기준도 준수하지 않았다.
A사는 2016년 5월과 8월, 2017년 2월 등 세 차례에 걸쳐 영등포구로부터 아치 거더 처짐 현상과 관련해 안전성 검토 요청을 받았지만 설계오류 여부 등 원인을 분석하지 않은 채 ‘구조적 안전에 이상 없다’고 보고했다.
점검업체 B사 역시 처짐 현상에 대한 별도의 구조검토 없이 A사 의견을 인용해 문제가 없다는 내용의 초기 점검 보고서를 작성했다. 구는 이러한 보고서 내용만 믿고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감사위는 A사 등에 대해 입찰 참가자격 제한, 영업정지, 업무정지 조처를 하고 사기죄에 따라 고발하라고 구청에 통보했다. 사업비와 철거공사비 등으로 발생한 영등포구의 재산상 손실 32억1000만원은 손해배상 조치를 하도록 했다. 구청에는 안전점검과 유지관리 업무 소홀에 책임을 물어 ‘기관경고’ 처분을 내렸다.
시공과 안전점검에서도 다수의 문제가 드러났다. 공사감독 업무를 위탁받은 서울시설공단은 시공사가 여러 단계에 걸쳐 설계도서와 다르게 시공했는데도 이를 제대로 점검하거나 시정조치 하지 않았다.
정기 안전점검 업무를 맡은 점검업체 C사는 육교 거더의 처짐 정도를 측정하지 않은 채 시설물 상태에 ‘우수, 안전에 문제가 없는 상태’에 해당하는 10점을 줬다.
최종 안전등급도 ‘문제점이 없는 최상의 상태’인 A등급으로 지정해 보고했다. 감사위는 서울시설공단에 ‘주의요구’ 처분을 내렸으며 C사에는 입찰 참가자격 제한, 영업정지, 고발 조처를 하라고 구청에 통보했다.
영등포구는 붕괴 우려 관련 민원을 지연 처리한 것과 관련해 ‘주의요구’ 처분도 받았다. 구는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3시30분 행정안전부 안전신문고를 통해 도림보도육교 붕괴위험에 대한 민원을 접수했지만 이틀 뒤인 올해 1월 2일 오후 4시3분에야 처리부서인 도로과에 배부했다. 사전 업무인계·인수기간 없이 인사발령을 시행해 업무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후임자가 업무분장이 이뤄질 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도로과 관계자는 이날 오후 6시7분 붕괴위험을 알리는 민원을 확인하고도 현장 확인을 하지 않은 채 방치해 시민들을 안전사고 위험에 노출시켰다. 육교는 약 7시간 뒤인 3일 0시51분 붕괴됐다. 새벽 시간대여서 다친 사람은 없었으나, 자칫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사고였다.
구는 설계·시공과 공사·유지관리, 민원처리 등 감사분야에 대해 지난달 전직원 교육을 실시하고 관련자 신분상 조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