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이로 퍼붓듯이 주야장천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해가 난 지난 20일 서울 은평구 봉산. 북한산 자락을 따라 은평구와 경기 고양시 경계에 걸친 봉산은 인근 도로변에서 산책로로 조성된 계단을 잠시 오르면 나타나는 해발고도가 200m를 살짝 넘는 산이다. 이 낮은 산에서 2021년에는 대벌레가, 지난해와 올해는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가 대발생했다. 올해 서울 서북권을 중심으로 강남까지 거의 전역에서 러브버그가 관찰되긴 했지만 여전히 봉산 일대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러브버그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박선재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과 신승관 서울대 교수(진화계통유전체학)는 이날 러브버그 유충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채집에 나섰다. 기자도 체감상 모기 30마리에는 둘러싸인 듯한 소리와 가려움을 견디며 함께 산에 올랐다. 여느 산처럼 산책로로 조성된 길을 제외하면 주변 땅은 낙엽에 덮여 있었다. 이날도 봉산에 오르는 산책로 길목에 들어서자마자 길 옆 벽으로 대벌레가 보였다.
◆사랑받지 않는 러브버그, 내년에도 나타날 전망
러브버그 암컷 성충 한 마리는 알을 500개 정도 낳는다고 알려졌다. 알이 부화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지만 가까운 종과 비교했을 때 2∼3일에서 길게는 두 달까지로 추정된다. 성충으로 우화하는 시기가 6월 말에서 7월 초임을 고려하면 유충이 부화해 3주에서 한 달가량 자랐더라도 3㎜ 안팎일 것으로 예상된다. 러브버그는 낙엽층 아래 흙에 산란하고 유충도 같은 환경에서 자라기 때문에 연구진은 산책로 주변 낙엽을 걷어내고 땅을 들춰 보기 시작했다. 연구진은 “러브버그 유충은 움직임이 많은 편이 아니다”라며 “이렇게 작은 유충일 때는 작고 가느다랗게 부서진 나무 조각과 구별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흙 속에서 유충이라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해 10배 확대되는 휴대용 돋보기로 움직임을 확인하려 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연구실에서 현미경으로 미세하기 분석해야 한다며 흙째 잔뜩 퍼서 채집통에 담아야 했다.
러브버그 유충이 다 성장하면 비슷한 종의 다 자란 유충 등을 참고했을 때 10∼13㎜까지 성장하고, 가을쯤이 되면 러브버그 유충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자랄 것으로 예상된다. 생물학적으로 가까운 다른 종도 유충이 마지막 성장 단계에 접어든 상태로 월동하기 때문이다. 이날 성충으로 우화하며 빠져나온 번데기 껍데기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신 교수는 “번데기가 될 만한 애벌레가 없고 탈피한 번데기 흔적만 봤을 때 러브버그 생애는 1년 단위”라며 “러브버그 수명이 딱 1년이고 가을에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확인한 것이 이날의 중요한 수확”이라고 말했다.
내년 6월 말, 7월 초에도 러브버그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높게 점쳐진다. 박 연구관은 “큰 변수가 없는 이상 내년에도 러브버그는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브버그가 지난해 갑자기 대발생한 배경 중 하나로는 전년도에 이뤄진 대벌레 방역 작업이 꼽힌다. 대벌레 대발생 시 이를 없애려 살충제를 대량으로 살포했고 이때 다른 지네, 사마귀 같은 포식자 곤충까지 폐사해 러브버그 유충이 대거 살아남았다는 추측이다.
러브버그는 알을 낙엽 아래 낳고 유충도 낙엽층 아래에 산다. 살충제를 뿌려도 낙엽층 표면에만 닿는 데다 특히 길 주변으로 방역 작업을 벌이면 산지에서 낙엽층 아래 사는 개체는 영향을 잘 받지 않는다. 게다가 낙엽 아래는 겨울에도 지열이 있고 눈에 직접 닿지 않아 온도 유지가 상대적으로 일정하게 돼 대벌레 같은 종보다 부화율, 생존율도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대발생 시 방역 작업을 펼쳤음에도 올해 러브버그가 또 나타난 이유이며 내년에도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는 근거기도 하다. 러브버그의 성충으로서 생애는 암컷 약 일주일, 수컷 3일 정도로 짧지만 짝짓기와 번식을 위한 ‘충생’은 이미 진행 중인 셈이다.
◆곤충들 “그냥 여기 살았을 뿐인데…”
대벌레는 2021년 서울에서 많이 발생하면서 크게 주목받았지만 곤충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예전부터 대발생 양상을 보이는 종이었다. 강원이나 충북, 경북 등 산림 지역에서 엄청난 양이 발생한 전례가 있었다. 그런데 인구가 많은 서울 도심 가까이에서도 대발생하자 많은 사람이 목격하고 관심을 끌었다. 신 교수는 “이전에도 그런 양상을 보였기 때문에 자연적으로는 굉장히 일반적인 현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벌레 입장에서는 살기 좋은 환경에서 대량으로 번식한 한 ‘사례’일 뿐이나 등산로가 개발되고 주거지가 많은 도시 가까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자 특이한 ‘사건’이 됐다는 것이다. 러브버그도 비슷하게 낙엽이 많은 산지와 가깝고 대단지가 발달한 지역에서 많이 나타났다. 사람의 활동 범위가 산속 깊은 곳까지 확장될수록 대벌레, 러브버그 같은 곤충의 서식지와 인간의 생활 반경이 겹칠 확률은 커질 수밖에 없다.
도시 조명도 여러 곤충을 불러들이는 역할을 한다. 올해 봄철에 밝은 빛 주변으로 떼로 나타났던 동양하루살이가 대표적이다. 곤충 연구자들에게 동양하루살이는 전부터 경기 남양주, 북한강 주변에서 많이 보인 종인데 2006년쯤부터 서울 잠실까지 서식 반경이 확대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맑은 물 주변에서 사는 동양하루살이가 서울까지 영역을 넓혔단 것은 그만큼 한강이 깨끗해졌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서울시민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기후변화가 곤충 대발생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도 많지만 과학적인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 기후변화로 인해 서식지가 넓어졌다면 제주도, 남부 지방 등에서도 발견돼야 하지만 국내에서는 서울과 고양시를 벗어나면 잘 발견되지 않는다. 단순히 온도 상승 등으로 갑작스러운 출현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다만 일본 오키나와, 대만, 중국 남부 등에서 주로 관찰되는 러브버그의 북방한계선이 서울인 것은 분명하다. 신 교수는 “서울이 러브버그가 살고 있는 가장 높은 위도이고 나머지 서식지는 다 제주도보다 훨씬 저위도에 있는 지역”이라며 “기후변화 외에도 도시열 등이 온도를 높였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산란하고 유충이 자랄 산만 있으면 주변에 주거지도 있고 난방, 조명 등으로 열섬 현상이 발생해 일반 산보다 기온이 높은 서울에서 살아남았을 수 있다”며 “어쨌든 서울이 러브버그가 살아남을 만큼의 환경은 구축돼 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외부 활동에 방해가 될 정도인 곤충 대발생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방재는 크게 농약을 사용하는 화학적 방법과, 천적 등을 도입하는 생물학적 방법, 직접 잡는 물리적 방법 세 가지로 나뉜다. 화학적·생물학적 방법은 어떤 후속 영향이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 물리적 방재가 가장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꼽힌다. 나무로 오르는 대벌레 특성을 고려해 나무에 끈끈이를 둘러 두는 식이다. 러브버그나 동양하루살이처럼 날아다니는 곤충은 포충망을 사용하거나 불빛에 끌리는 종을 유인할 조명을 사용해 가두는 장치를 활용한다. 박 연구관은 “새롭게 대발생할 종을 미리 예측하기는 어려워도 러브버그나 동양하루살이처럼 내년에도 대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종은 미리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준비해 놓으면 개체 수 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