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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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말 건네는 ‘마법’ [S스토리]

마음을 움직이는 강렬한 소통수단, 色

정열 대명사 빨강·희망 나타내는 파랑…
色色마다 전하는 메시지·상징성 다양

간단하고 손쉽게 소비자 인식에 영향
식음료 등 광고 마케팅 활용 두드러져

색은 ‘나’의 감정·생각 나타내는 도구
색채 심리·치료 등 다양한 분야 적용
‘정열’의 대명사 빨간색은 에너지 발산을 촉진한다. 리더십을 발휘할 때나 커다란 결단을 내리는 순간 파워를 주는 색이다. 활발한 색이므로 의욕을 불어넣을 때, 강인한 힘을 강조하고 싶을 때 사용하면 효과적이다. 단, 강렬한 만큼 너무 많이 사용하면 피로감 탓에 주의가 산만해질 수 있다. 파란색은 아이러니한 색이다. 우울과 외로움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희망을 상징하기도 하고, 차가운 느낌을 안기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심신이 편안해지는 따뜻함을 지녔다. 상실감을 느낄 때 찾게 되는데, 정작 마주하면 마음 한쪽에서부터 무언가 채워지는 치유의 기능도 한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줄리엣 주 교수는 600명을 대상으로 빨간색과 파란색을 접했을 때 인지능력 변화를 측정하는 심리 테스트를 진행했다.

빨간색은 주의력을 자극해 단어를 기억하거나 철자를 교정하는 등 세부적인 작업에 효과를 나타냈다. 파란색은 창의력을 요구하는 작업에 적합했는데, 상상력이나 영감이 필요한 부분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 이 실험은 ‘각종 일(업무)에 적합한 효율적인 컬러가 있음’을 알려준다.

빨간색은 강인함과 열정적인 의욕 등을 나타낼 때 효과적이다. 파란색은 차가운 느낌이지만 바라보면 편안해지는 따뜻함을 지녔다.

2008년 EBS의 ‘빨간 방과 파란 방’ 실험은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빨간 방과 파란 방에 들여보낸 뒤 20분이 지난 것 같으면 밖으로 나오라는 미션을 주었다. 빨간 방에 들어간 사람들은 14∼17분 만에 방에서 나왔고, 파란 방 사람들은 21∼27분이 지나서 나왔다. 빨간 색이 사람을 긴장시켰기 때문이다. 파란색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일본의 색채학자 노무라 준이치는 책 ‘색의 비밀’에 ‘따뜻한 색은 시간을 길게 느끼게 하고 차가운 색은 짧게 느끼게 하는데, 착각 정도가 두 배나 차이날 수 있다’고 적었다.

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은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기도 하지만 시간을 더 길게 느껴지도록 해 행사의 무게감을 더하는 효과도 거둔다.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기업의 회의실은 파란색 벽이 좋다.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산타클로스 이미지는 1920년 코카콜라가 만들어냈다. 광고 속 사람, 제품, 캐릭터 모두 빨간색을 적용했다.

#빨간색과 파란색의 활용은 광고에서 두드러진다.

덥수룩한 수염과 두꺼운 벨트를 멘 빨간 외투 빨간 모자의 배불뚝이 산타클로스 이미지는 1920년 코카콜라에 의해 만들어졌다. 우리가 익히 떠올리는 산타클로스 모습이 그 이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여름에 매출이 몰려있던 코카콜라는 ‘겨울에도 코카콜라를 마시게 하는 법’을 찾아냈다. 선물을 전해준 뒤 코카콜라를 마시며 쉬는 산타를 등장시켰다. 목이 말랐던 산타가 냉장고에서 코카콜라를 꺼내다 어린이에게 들키자 무안해하는 광고(1959)도 뒤따랐다. 이로써 코카콜라는 1년 내내 마시는 음료가 되었다. 광고 속 사람과 사물, 캐릭터 모두에겐 빨간색이 적용됐다.

파리바게뜨는 국민브랜드라는 신뢰를 강화하기 위해 로고 색을 점점 짙은 파란색으로 바꾸어왔다.

미국의 밀키트 기업 ‘블루 에이프런’은 짙은 파란색 ‘딥 블루’를 쓴다. 옅은 파란색보다 짙은 파란색이 더 전문성을 띤 느낌이 들고 고급스레 여겨지기 때문이다. 국내 파리바게뜨도 로고 색을 점점 짙은 파란색으로 바꾸어왔다. 밥 대신 간단하고 싸게 먹을 수 있는 빵에서 이제는 비싸더라도 고급 재료로 만든 빵을 집어간다. 파리바게뜨는 국민브랜드라는 신뢰를 강화하기 위해 이 같은 변화를 택했다.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을 알리고 싶을 땐 주로 파란색 배경을 사용한다.

 

#색이 발휘하는 힘은 실로 강력하다.

인간의 기억에만 작용하는 게 아니라 실제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글자나 소리, 온도, 향기가 없어도 자극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색이다. 잔의 색깔에 따라 사람들이 느끼는 커피 맛이 달라진다. 빨강잔의 커피가 단맛이 가장 강하고 검정잔은 가장 약한 것으로 평가됐다. 신맛은 노랑잔이 강하고 초록잔이 가장 약했다. 쓴맛의 경우는 검정잔과 흰잔이 강하게, 주황잔이 가장 덜 쓰게 느껴졌다. 향미는 초록잔이 가장 풍부하고 검정잔은 덜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2014년 호주 연합대학과 옥스퍼드대학 공동실험 결과도 비슷했다. 파란잔, 투명잔, 흰잔에 제공된 커피는 라테. 파란잔에 담긴 라테를 가장 달콤하게, 흰잔에선 쓴맛을 느꼈다고 했다. 블루보틀의 파란색 라테가 더욱 고소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색은 무게에도 영향을 미친다. 검은색 포장지의 물건이 흰색보다 무려 두 배 가까이 무겁게 느껴진다. 한 실험에서 검은색 100g 물건과 흰색 187g 물건을 들어보게 했는데, 똑같이 느꼈다. 그래서 명품 브랜드의 쇼핑백은 대부분 검정색이다. 포장해 오는 손이 무겁게 느껴져야 비싼 값을 지불한 마음이 더 뿌듯한 것이다.

#색은 색채심리나 색채치료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된다.

색채심리는 색을 활용한 심리 상담과 치료에 기여한다. 1947년 미국 심리학자 알슬러와 하트위크가 아동이 그린 그림의 색채를 심리학과 행동학으로 분석해내면서 관심을 모았다. 낮은 연령이나 장애로 인해 언어사용이 어려운 경우 비언어적 수단인 색칠활동을 통해 높은 치료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간편한 컬러링북이 유행하는 이유다. 색을 칠하는 것만으로도 무의식적인 심리 영향을 받게 된다.

색채심리가 색이 지닌 의미와 연결 지어 상담자의 내면을 알아보는 것이라면, 색채치료(컬러테라피)는 각각 다른 파장의 색 광선을 이용해 신체반응을 일으켜 치료하는 것을 말한다. 러시아 생리학자 크라코브가 1951년 색채의 생리적 기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면서 확산했다. 자율신경계는 호흡, 소화, 심장박동처럼 무의식적인 신체반응을 일으키는데, 색이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이뤄진 자율신경계를 자극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빨간색은 교감신경을, 파란색은 부교감신경을 촉진한다. 실제 아토피피부염 환아들에게 색채를 이용한 치료를 12회 실시했을 때 스트레스 불안수치와 가려움증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컬러테라피는 고대 인도 전통의학에도 존재했다. 인도인은 몸 속 에너지원인 ‘차크라’가 지닌 색들이 정신과 몸을 주관한다고 믿었다.

전남 신안군은 안좌면에 ‘퍼플 아일랜드’를 조성했다. 연보라색이 파란 바다, 초록 산과 어울려 신비한 섬 분위기를 자아낸다.

색은 지역을 널리 알리는 데도 유리하다. 전라남도 신안군은 안좌면 반월도와 박지도에 ‘퍼플 아일랜드’를 조성했다. 주요 명소인 ‘퍼플교’에는 지난해 33만명이 찾아왔다. 이는 도내 주요 관광지 평균 입장객수 11만명의 3배 수치다. 4년 연속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찾아가고 싶은 봄 섬’으로 선정됐다. 마을마다 지붕, 다리, 도로 등에 사용한 연보라색이 파란 바다, 초록 산과 어울려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섬 여행에 대한 환상이 비주얼로 펼쳐져, 방문자들의 만족도를 배가시킨다.

#마네킹이 입고 있는 멋진 옷이 내가 입으면 왜 어색하게 보일까?

마네킹엔 표정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사람은 얼굴 생김새와 피부색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옷을 입어도 누구에겐 잘 어울리고 누구에겐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생긴다. 머리카락, 눈동자, 코 모양, 입 크기 등이 다른 만큼, 누구나 자신에게 어울리는 퍼스널 컬러(Personal Color)가 있다.

퍼스널 컬러는 더 이상 연예인만의 것이 아니다. 외모가 이목구비뿐 아니라 인상과 분위기까지 포함하는 만큼 색을 통해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과거에는 유행하는 색을 따라 화장을 하고 옷을 입었지만 지금은 개개인에 맞는 고유의 색을 찾아 가장 돋보이는 화장품과 의상을 고른다. 자신에게 적합한 컬러를 찾으면 보다 빛나고 생기 있는 외모를 갖게 된다. 다소 과장되고 화려한 패션이 대세인 이유는 영상과 이미지가 보편화된 시대이기 때문이다. 생활 수준이 높아져서 ‘나’를 좀 더 바라보게 된 것과 치열한 취업경쟁 또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나만의 색을 찾아보자. 빨강과 초록, 파랑과 주황, 노랑과 보라 등 보색대비를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선명하고 환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색은 곧 ‘말’이다.

‘나’의 감정과 생각을 나타내는 도구다. 유행을 따라가는 색은 남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소통하겠다는 행동밖에 안 된다. 다양성의 시대다. 또렷한 나만의 컬러가 없으면 존재감을 내세우기 어렵다.

사람들은 대개 강렬한 색 하나만을 기억한다. 한 가지 색을 잘 쓰는 것이 유리하다. 코카콜라(빨간색)나 포카리스웨트(파란색)가 그 예다.

‘나만의 색’을 찾아보자.

인간의 뇌가 한번에 기억하는 색의 수는 3개다. 눈 앞에 보이는 색이 여러 개면 사람들은 대개 강렬한 색 하나만을 기억한다. 가장 명확하게 기억될 하나의 색을 고르는 게 컬러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이다. 잡다한 색을 사용하는 것보다 한두 가지 색을 잘 쓰는 것이 효과적이다. 코카콜라(빨간색)나 포카리스웨트(파란색)를 떠올리면 된다. 내가 쓰고 싶은 색상을 상대방이 선점하고 있거나 이미 지루한 느낌이 들 때는 두 가지 색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이떄는 비슷한 느낌의 색끼리 함께 쓰는 게 무난하다. 오렌지와 빨강을 사용하는 마스터카드가 대표적 사례다. 대담하면서도 활기찬 브랜드 이미지를 보여준다. 보색대비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빨강과 초록, 파랑과 주황, 노랑과 보라 등이다. 대비가 강해 눈에 띄기 쉽다. 선명하고 환한 느낌을 준다.

사람들은 끝없이 새로운 것을 찾고 더 멋진 것을 추구한다. 색과 디자인이 마케팅이자 기획이며 경영전략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양으로 차별화하기보다 색을 사용해 차별화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쉽다. 색은 말보다 빠르게 정체성을 형성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색은 ‘말하지 않아도’ 말하는 소통의 도구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