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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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아들이야? XX야” 분노 못 참고 ‘폭언·폭행’… 일상용어가 돼버린 ‘분조장’

분노조절장애의 줄임말

순간적인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타인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과거 정신과 병원에서만 썼을 법한 분노조절장애가 주변에 만연하면서 최근 ‘분조장’이라는 줄임말도 생겨났다. 

 

기사와 직접 연관 없음.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이런 ‘분조장’은 아파트 입주민과 경비원, 백화점 손님과 직원, 식당 손님과 사장, 학부모와 교사 등 우월한 지위가 확인되는 순간에 더 잘 표출된다. 

 

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 성북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6년차 교사 A(29)씨는 “학교폭력 가해 학생을 지도했다는 이유로 화가 난 학부모로부터 폭언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학교까지 찾아온 아이 아버지는 객관적 사실을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남자애들이 서로 싸울 수도 있지, 교사가 야비하게 지도한다”, “맞은 아이가 졸렬해서 조금 울었던 거 가지고 편파적으로 지도하지 말라”며 해당 교사에게 고성을 질렀다고 한다.

 

고용형태가 취약하고 고령층이 많은 경비원, 미화원, 관리소 직원 등 아파트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입주민이 화풀이를 하는 사건도 주변에서 흔히 일어난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3월 발표한 ‘2023 경비노동자 갑질 보고서‘에 따르면 68세의 한 아파트 청소 노동자는 한 입주민이 청소 상태를 지적하다가 자신의 멱살을 잡고 관리사무소로 끌고 가는 일을 겪었다. 

 

해당 노동자는 이 일로 불안증과 불면증이 생겨 약을 처방받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사례는 입주민의 아침잠을 깨웠다는 이유로 욕설을 들은 사례다. 69세인 경비원은 입주민에 ‘분리수거 때문에 차를 옮겨달라‘는 연락을 했다는 이유로 욕설과 삿대질을 당했다고 한다.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입주민에 ‘쓰레기통에 버려달라‘고 말했다가 “경비원이 청소하는 건데 왜 뭐라 하느냐”는 말을 들은 경우도 있다. 

 

식당에서도 ‘분조장’ 사건은 흔하게 발생했다. 

 

지난달 20일 경기 수원시의 한 커피숍에서는 한 40대 남성 고객이 점주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다며 컵에 담긴 스무디 음료를 점주의 얼굴에 부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10일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식당의 룸 공간에 노크하지 않고 들어갔다는 이유로 남녀 손님 2명이 욕을 퍼부었다는 사연이 올라오기도 했다. 

 

작은 일에 대한 분노가 형사 사건으로 번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8월 서울 노원구의 한 식당에서 지인과 술을 마시며 정치 이야기를 하던 A씨는 상대가 유튜브에 댓글을 쓰는 것과 관련해 다투게 되자 철제 의자로 그의 머리를 내려쳤다.

 

특수상해로 기소된 A씨는 결국 지난 4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A씨는 법원에 분노조절장애 등과 관련해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5월 전남의 한 아파트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B씨는 지나가던 50대 여성 C씨가 ‘흡연 장소에서 담배 피워달라"고 말한 것에 화가 나 ‘씨XX아‘라고 큰소리로 욕하며 C씨의 등을 걷어차고 주먹으로 얼굴을 두 번 때렸다. 

 

옆에 있던 C씨의 15세 아들에게는 “네가 아들이야? 개XX야”라고 욕하며 얼굴을 15차례 때리고 발로 차 골절 등 전치 4주의 상해를 입혔다.

 

결국 B씨는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받았다. B씨는 자신이 범행 당시 분노조절장애 등으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윤희 기자 py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