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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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실 시공 키운 이권 카르텔, 엄정한 감사·수사로 뿌리 뽑길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의 철근 누락 부실시공은 건설업계의 이권 카르텔과 총체적 부실이 빚은 합작품이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경실련에 따르면 철근을 빼먹은 LH 아파트 15개 단지 중 13곳의 설계회사가 LH 퇴직자들이 근무 중이거나 2021년까지 대표나 고위 임원을 지낸 전관업체다. 지난해 6월 공개된 감사원의 ‘공공기관 불공정 계약실태 감사보고서’에는 2018년 1월∼2021년 4월 LH 발주 건축설계 용역 149건 중 139건을 LH 전관업체가 따낸 내용이 담겨 있다. ‘엘피아’(LH+마피아) 전관예우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LH 같은 공기업이나 지자체 발주 공사 수주에는 능력보다 ‘끗발 센 전관’ 확보가 중요하다는 얘기가 건설업계에 널리 퍼져 있다고 한다. 관·건(官·建) 카르텔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한준 LH 사장마저 “어느 설계사를, 어느 감리회사를 선정하더라도 LH 전관들이 있다”고 토로했을까. 공기업 직원과 공무원, 업체 간 뿌리 깊은 카르텔 속에서 설계, 시공, 감리가 제대로 이뤄졌을 리 없다. 설계 오류가 부실 시공 원인으로 확인된 LH 아파트 10곳 중 9곳의 설계에도 전관업체가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집단 이익을 좇느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그제 “국민 안전을 도외시한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깨부수어야 한다”면서 “이권 카르텔을 혁파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혁신도, 개혁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과 정부, 대통령실은 어제 고위당정협의회를 열어 LH 아파트 부실시공 대책을 논의하는 등 긴박하게 대응했다. 문제가 된 무량판 구조에 대해 민간 아파트까지 전수조사하고 감사와 수사, 필요하다면 국회의 국정조사를 통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건설 부조리를 발본색원해야 한다.

수시로 ‘방탄 국회’를 열어 놓고서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은 정치권 책임도 가볍지 않다. 국회에는 부실시공을 막기 위한 관련 법안이 13건이나 제출돼 있으나 낮잠을 자고 있다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수해 방지 대책 관련 법안을 27건이나 발의한 뒤 손놓고 있다가 수해가 나자 부랴부랴 통과시킨 게 얼마 전이다. 국회는 자재값 급등 속에서도 분양가상한제로 공사비를 올리지 못해 꼼수로 비용 절감을 하는 현실, 도면조차 제대로 못 보는 외국인 노동자 중심의 건설인력시장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