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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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4000억 들인 재난안전통신망, 오송 참사 때도 무용지물

본 목적 기관 간 통신, 전체의 1%도 안돼

각종 재난 발생 시 대응 기관 간 공조를 위해 1조원 넘는 예산을 들여 구축한 재난안전통신망이 사실상 무용지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도입의 주된 목적인 기관 간 통신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 당시 재난안전통신망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 했다는 지적에 따라 올해 5월 정부가 합동훈련까지 실시했으나, 지난달 ‘오송 지하차도 참사’ 때도 공통 그룹통화가 이뤄지기까지 거의 1시간이 걸리는 등 문제를 드러냈다.

 

2일 국회예산정책처의 ‘2022회계연도 결산 위원회별 분석(행정안전위원회)’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해 재난안전통신망을 거친 음성·영상 통화는 약 579만분 이뤄졌다. 기관 간 통신의 경우 연간 약 5만2300분이 시행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기관 내 통신량인 약 574만분의 1% 미만에 불과하다. 지방자치단체와 소방, 경찰 등 각 기관이 재난안전통신망을 따로 이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나마도 기관 간 통신량의 66%가량인 3만4600분은 각 지자체 내부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매일 전국의 지자체 재난담당자가 참여해 실시하는 정기교신이 대부분인 셈이다.

 

지난 7월 20일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2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청주=뉴시스

재난안전통신망은 대규모 재난 발생 시 각 지자체와 소방, 경찰, 해양경찰 등 유관 기관들이 하나의 통신망으로 소통하면서 신속한 현장대응을 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2021년 5월 전국 단일 통신망으로 도입됐다. 구축 사업에는 1조4000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그러나 실상은 각 기관이 내부 무전기 같은 용도로만 쓰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정부는 이태원 참사 때 재난안전통신망이 거의 활용되지 못 해 기관 간 공조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점을 인정하고 지난 5월25일 지자체, 소방, 경찰 등과 함께 재난안전통신망 활용 합동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오송 참사에서도 같은 상황이 되풀이됐다. “미호강 제방이 터져 물이 넘친다”는 내용의 첫 119 신고는 사고 당일인 지난 7월15일 오전 7시51분 접수됐는데, 이와 관련한 공통 통화가 이뤄진 건 55분 뒤인 오전 8시46분이었다.

 

국회 부의장이자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인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은 이 같이 전하며 최초 통화기관인 충북 흥덕경찰서와 충북도, 충북소방본부, 청주시 등이 공통 통화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어 2분 뒤인 8시48분 충북도 상황실이 건 공통 통화에는 세종시, 충주시, 제천시, 충북경찰청, 충북대의료원, 대통령실, 행정안전부 등도 참여했다.

 

정 의원은 당시 공통 통화그룹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녹취록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행안부는 해당 기관들에 대한 감찰·수사가 진행 중이라 제출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정 의원은 “재난안전통신망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참에 이런 유명무실한 재난 대응 시스템을 재검토해 내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