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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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판’ 민간 293곳 전수조사 … “국민 불안 조속히 해소”

국토부, 주거동·커뮤니티시설 등 포함
9월까지 점검 마무리 목표로 착수
2017년 이전 준공된 단지는 조사 배제
10월 중 ‘건설 카르텔 혁파 방안’ 발표

LH, 시공·감리업체 대표들과 긴급회의
부실시공 묵인 금지·안전 확보 등 강조

설계·시공·감리 23개 업체 ‘벌점 이력’
‘건설용 자재 등 확인 소홀’ 가장 많아
“LH 안전불감증 심각성 보여줘” 지적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에 이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단지의 무더기 ‘철근 누락’ 사태와 관련해 정부가 무량판 구조 민간 아파트 전수조사에 즉각 착수하기로 했다. 전수조사는 안전점검 인력 등을 확충해 다음달까지 끝낸다는 방침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 경기주택도시공사(GH)도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지역 내 공공 아파트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수조사 대상은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아파트 중 시공 중인 현장 105개 단지와 2017년 이후 준공된 아파트 188개 단지를 합쳐 모두 293개 단지다. 앞선 LH 발주 공공주택의 경우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단지만 조사했지만, 이번 점검에서는 지하주차장 외 주거동과 커뮤니티시설 등을 모두 포함하기로 했다. 정부가 전수조사 대상을 확대하고, 일정을 앞당긴 것은 이번 사태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며 국민 불안이 가중되는 상황을 감안한 조치다.

기둥 보강 공사 지하 주차장 무량판 구조 기둥 일부에 철근이 빠진 것으로 확인된 경기 오산시의 한 LH 아파트에서 3일 보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293개 단지 전수조사를 다음 달까지 끝내겠다고 밝혔다. 작은 사진은 보강 공사가 완료된 한 단지의 기둥 모습. 오산=연합뉴스·한국토지주택공사 제공

김오진 국토부 1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아파트의 안전 문제로 국민께 불안을 드린 점,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어떠한 제도와 관행, 이권 카르텔도 더 이상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 중 주거동에 무량판 구조를 사용한 단지가 74개, 주거동과 지하주차장에 함께 무량판 구조를 쓴 단지는 31개다. 이밖에 주민공동시설 등 기타 건물에 무량판 구조를 쓴 단지 4곳도 점검에 들어간다. 주거동에서 철근 누락 등 부실시공이 발견될 경우 앞선 LH 발주 아파트 때보다 훨씬 더 막대한 파장이 예상된다. 무량판 구조 주거동에 이미 15만가구가 거주하고 있고, 현재 공사 중인 주거동도 10만가구 규모에 달한다.

국토부는 전문 인력과 장비를 갖춘 민간 안전진단 전문 기관을 선정해 다음주부터 바로 점검할 계획이다. 공정성 확보를 위해 점검 결과는 국토안전관리원이 확인한다.

정부는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다음달까지 전수조사를 마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LH 조사에서는 3개월에 걸쳐 91개 단지 안전점검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인력 등 역량을 총동원해 두 달 안에 조사를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미 입주한 세대의 내부 점검은 점검 때 페인트와 벽지 등을 제거해야 하므로 입주민 동의가 필요하다. 이 과정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안전점검 기간이 예상보다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사 결과 철근 누락 등 부실이 발견된 단지에 대해서는 시공사를 통해 연내 보수·보강 공사를 실시한다. 적발된 설계·시공·감리 업체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에 따라 등록 취소나 영업정지, 벌금 등으로 처벌할 방침이다.

앞서 철근 누락이 확인된 LH 발주 15개 단지에 대해서도 조만간 보강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LH는 4개 단지는 보강공사가 완료됐고, 나머지 11곳은 다음달 말까지 공사를 완료할 방침이다.

LH 발주 단지 중 철근 누락이 확인된 15개 단지에 대한 사후조치와 이번 민간 아파트 조사 과정에서 얼마나 공정성과 투명성이 담보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문제가 된 LH 단지 중 상당수에서 시공·감리사에 LH 퇴직자가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관 특혜 의혹이 불거진 상황이다. 김 차관은 “입주민이 원하는 경우 추가 정밀안전점검을 실시해 안전에 대한 한 치의 우려도 남기지 않겠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잇따른 부실시공 등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오는 10월 중 ‘건설업계 이권 카르텔 혁파방안’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충남도청이전신도시 RH11에 보강 공사가 된 모습. LH 제공

이번에 문제가 된 무량판 구조는 특수구조물에 포함해 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다.

LH를 비롯한 전관 특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설계 및 감리의 독립성 확보와 전문성 강화 방안이 거론된다. LH 출신 인사가 있는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는 전관예우 문제 방지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어 발주 계약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상세 방안도 나올 수 있다. LH 출신 인사의 취업을 제한하는 조치가 포함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국토부와 LH는 과거 취업 제한을 검토한 적이 있으나 개인의 직업 선택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어 보류했다.

한편 LH는 전날 임원과 지역 본부장을 중심으로 반카르텔 대책회의를 개최한 데 이어 이날은 ‘철근 누락’ 15개 단지의 시공사, 감리사와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LH는 입주민의 불안감과 불신을 조속히 해소하기 위해 시공·감리업체의 유기적인 협력체계 구축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건설 이권 카르텔 타파 동참 △부실시공 묵인 및 타협 금지 △품질·안전 확보 등 기술혁신을 당부했다.

 

사진=연합뉴스

벌점 매긴 업체에 또 공사 맡긴 LH… 단지 15곳 중 13곳 사업 참여 드러나

 

지하주차장 ‘철근 누락’이 확인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 단지의 설계·시공·감리를 담당한 회사 중 상당수가 LH에서 벌점을 받은 이력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이 LH로부터 제출받은 ‘건설사업자 및 건설사업관리자 벌점 부과 현황’ 자료에 따르면 철근 누락 15개 단지 중 13개 단지의 공사에 참여한 업체들이 2018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벌점을 부과받은 이력이 있었다.

 

15개 단지 시공·감리·설계에 참여한 업체는 모두 70개인데 이 중 23개 업체(40%)가 48차례에 걸쳐 벌점을 받았다.

 

벌점 사유는 ‘건설용 자재 및 기계·기구의 적합성 검토 및 확인 소홀’이 20건으로 가장 많았다. 설계도서대로 시공됐는지에 대한 ‘단계별 확인 소홀’(5건), ‘시험 장비 또는 건설기술인 확보 미흡’(5건)한 경우도 있었다. ‘품질관리계획·품질시험계획의 수립과 시험 성과에 대한 검토 불철저’ 사례도 5건 확인됐다.

 

파주운정 A34 지구 시공사인 대보건설은 최근 5년간 3건의 공사에서 벌점을 받았으며 누계 벌점은 4.72였다. 이는 LH 발주공사 시공업체 중 3번째로 높은 수치다. 대보건설은 파주운정3 A-23BL 지구도 시공사로 참여했다.

 

케이디엔지니어링과 목양이 각각 벌점 6.28점과 3.83점을 받았다. LH 발주 공사에 참여한 건설관리 업체 중 벌금 누계 1, 2위에 해당하는데, 이번에 적발된 15개 단지 중 4곳의 설계와 감리를 이 두 업체가 담당했다.

 

15개 단지 중 설계·시공·감리에 참여한 업체가 한 곳도 벌점을 받은 적 없는 단지는 광주선운2 A-2BL과 양산사송 A-88L 2곳뿐이다. 이 두 곳은 LH가 직접 감리를 담당했다.

 

허 의원은 “안전을 가장 우선 해야 할 LH가 발주한 공공주택단지 사업에 설계·시공·감리 건설 전 과정에서 벌점을 받은 업체가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LH의 안전불감증의 심각성을 보여준다”며 “국민 안전을 경시하고 생명을 위협한 LH는 반드시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