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림역 사건 때도 무서웠지만 서현역 사건을 보니 이제 (흉기 난동 사건이) 우후죽순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최근 인터넷 쇼핑몰에서 삼단봉을 구매했다는 장모(30)씨는 “도망치는 게 최선이겠지만 혹시 도망치지 못할 수도 있지 않냐”며 “삼단봉은 크기도 작아서 평소 가방에 넣고 다닐 계획”이라고 말했다.
#2. 직장인 오모(29)씨는 며칠 전 신발장에 묵혀 뒀던 삼단봉과 캡사이신 스프레이를 꺼내 들었다. 2년 전 지인이 장난삼아 건넨 선물이었지만 최근 연이어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하자 실제로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오씨는 “삼단봉은 무거워서 들고 다니진 않지만, 스프레이는 챙겨서 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21일 서울 관악구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지난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자 시민들의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경찰은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하고 나섰지만 시민들의 두려움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방검복과 삼단봉이 품절되는 등 시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호신용품을 사들이고 주위를 경계하는 분위기다. 50대 직장인 김모씨는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삼단봉을 구입하려 했지만 이미 품절됐다고 해서 구입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각 사건을 ‘묻지마 범죄’라고 부르며 한 ‘악마’의 소행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범행 동기를 연구한 뒤 그에 맞는 정책적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갑차·무장경찰 배치했지만…“임시방편”
6일 서울 강남역에는 전술 장갑차와 기동대가 각 1대씩 배치됐고, 소총으로 무장한 경찰특공대원 4명이 2인 1개조를 이뤄 30분 단위로 강남역 지하상가를 교대 순찰했다. 경찰이 지난 4일 인파가 몰리는 지하철역, 백화점 등 전국 247개 장소에 경찰관 1만2000여명을 투입하고, 다중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경찰특공대 및 전술 장갑차를 배치한 데 따른 조치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경찰이 살인 예고나 흉기 난동 예고가 나왔던 89개 지역에 기동대와 특공대 등 경찰력을 배치했다고 보고했다”며 “거동이 수상한 사람들에 대한 검문 검색도 442회가 이뤄졌고, 14건은 혐의가 발각돼서 검거했다고 보고받았다”고 전했다. 또 “다중이용시설 등 범죄 발생이 우려되는 지역 3444개소에 대해 자율 방범 등 협력 단체 인원 총 2만2098명을 배치했다고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강남역을 방문한 시민들 중 경찰의 강화된 치안 활동에 안도감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불안감이 완전히 사그라들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강남역 인근 스터디카페로 향하던 김민정(23)씨는 “사고가 난 서현역 근처에서부터 왔는데 계속 무서웠다”며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밖에 계속 다닐 수밖에 없는데 경찰차가 보이니 덜 불안하긴 하다”고 말했다. 경남 합천군에서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여름휴가를 왔다는 김현정(53)씨는 “어린 조카들과 놀러 왔는데 갑자기 칼 든 범인이 나타나면 근처 지구대나 경찰서로 뛰어가 신고하고 경찰을 데려올 생각에 막막했다”면서 “오늘은 경찰들이 바로 옆에서 순찰을 다니니 안도감이 든다”고 언급했다. 다만 그는 “사전 예방을 해서 원천 차단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보다 근본적인 안전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휴대전화 매장을 운영하는 사공덕윤(38)씨는 “칼부림이 이미 시작되고 도망치고 있는데 (경찰이) 무거운 장비를 들고 쫓아가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회사원 김희선(28)씨는 “매일 모든 곳에 경찰이 순찰을 다닐 수도 없고, 순찰은 임시방편이 아닌가 싶다”며 “범죄자는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결국 내가 조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범죄자 악마화보단 범행 원인·대책 찾아야”
전문가들은 이런 공포감이 ‘누가, 언제, 어떻게 나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막연함 때문에 증폭된다고 입을 모았다. 역대 ‘묻지마 범죄’로 일컬어진 사건들은 한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됐고 그 개인에 대한 처벌만 논의한 탓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계속해서 반복될 수 있다는 두려움만 남게 됐다는 것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범죄자 개인을 악마화해서 사형시키자고 하는데, 이런 건 ‘묻지마 범죄’라는 가장 어려운 문제에 가장 쉬운 답을 내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면식 없는 대중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묻지마 범죄 특성상 명확한 동기를 파악하는 게 관건인데, 지금은 범죄의 원인을 파악하기보다 어떻게 처벌할지만 얘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승 연구위원은 “사회구조적 분노가 원인이라고 하지만 추상적인 얘기만 할 뿐, 예컨대 취업 불균형이나 기득권화에 대한 불만 등 구체적 원인은 파악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승 연구위원은 “왜 이런 범죄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집중 연구가 없으면 실효성 있는 형사정책이 만들어질 수 없다”며 “미국처럼 범죄자에 대한 ‘생애사 연구’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무차별 난동 피의자가 태어나서부터 범죄를 일으키기까지 생애를 분석하며 이 범죄가 언제, 무엇 때문에 잉태됐는지, 트리거는 무엇인지 파악할 때 비로소 해결책이 나온다”며 “1∼2년은 걸리는 연구고 1억∼2억원이라는 비용이 들 수 있지만, 국가가 한 명의 피해자라도 막기 위해서는 비용을 들여야 한다”고 부연했다.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프로파일러)도 “이런 범죄가 발생하면 으레 사이코패스 테스트를 하는데, 사이코패스 여부는 부차적”이라며 “개인적 원인을 찾기 전에 조선의 경우 재범 관리와 보호관찰에 대해, 최모(22·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씨의 경우 정신과 치료 중단이 문제였다면 정신질환 관리에 대해 얘기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보여주기식 대처만 하고 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배 교수는 “경찰의 장갑차와 총기를 보여 주면 대증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특별치안활동을) 앞으로 계속, 매일 할 수는 없지 않냐”며 “가석방 없는 종신형 있든 없든, 조선이나 최씨가 범행을 저지르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상동기 범죄의 원인을 알고 그에 대해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며 “단번에 해결되지는 않아도 해결할 정책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시민들이 안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