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제6호 태풍 ‘카눈’이 시속 100㎞가 넘는 비바람을 앞세워 한반도를 종단하면서 대구에서 60대 남성이 심정지로 발견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도로에 쏟아진 물에 휩쓸려 보행자가 100m를 떠내려가고, 맨홀 뚜껑이 버스 바닥을 뚫고 솟구쳤다. 이날 전국에서 1만4000명 이상이 불어난 물을 피해 긴급대피했다.
72년 만에 한반도를 수직으로 할퀸 태풍인 카눈의 위력은 거셌다. 이날 오전 9시20분 카눈이 경남 거제로 상륙하면서 출근길 시민들은 몸이 휘청이는 바람을 뚫고 일터로 향했다. 부산 가덕도에는 오전 7시41분 최대순간풍속 34.9㎧의 강풍이 불었다. 시속으로 따지면 126㎞로, 고속 주행 자동차와 맞먹는다.
강도 등급 ‘강’으로 상륙한 카눈은 충청권까지 ‘중’ 등급을 유지했다. 하지만 충청권을 지나면서 강도는 ‘최고 낮은 수준’으로 잦아들었다.
지난달 ‘극한호우’의 상흔이 여전한 상황에서 이틀간 누적 강수량도 300㎜가 넘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전날부터 이날 오후 6시까지 비가 속초에 396.8㎜, 삼척 궁촌리 387.0㎜, 북창원 338.6㎜, 울산 삼동면 304.5㎜씩 내렸다.
많은 비로 하천·저수지 물이 불면서 오후 6시 기준 16개 시·도 108개 시·군·구에서 1만4153명이 일시 대피했다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밝혔다. 피해는 공공시설 56건, 사유시설 103건으로 각각 집계됐다.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이날 대구 군위군 남천 병천교에서 오후 1시10분 67세 남성이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끝내 숨졌다. 대구 달성군에서는 오후 1시45분 “전동휠체어를 타고 가던 사람이 도랑에 빠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남 창원시 의창구에서는 이날 오전 8시5분 멈춰 섰던 시내버스 밑바닥을 맨홀 뚜껑이 뚫고 올라왔다. 승객은 모두 무사했다. 창원시 성산구 삼거리에서는 60대 여성이 무릎 높이 급류가 흐르던 횡단보도를 건너다 중심을 잃고 넘어져 물에 휩쓸렸다. 경찰관 2명도 이 여성과 100m를 함께 떠내려가다 겨우 구조할 만큼 도로 물살이 거셌다.
주택이 무너지고 물에 잠기거나 유리창이 깨지는 피해 역시 속출했다. 전남 곡성군 곡성읍에서는 이날 오전 8시46분 주택 지붕이 땅으로 주저앉았다. 경남 함안군 칠원읍에서도 이날 오전 6시12분 시골 폐가가 무너졌다. 두 사고 모두 인명 피해는 없었다. 울산에서는 이날 오전 4시48분 동구 방어동의 한 도로에 가로 3m, 세로 4m 크기에 약 5t 무게의 바위가 굴러떨어져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하늘길과 뱃길은 무더기로 끊겼다. 중대본에 따르면 14개 공항 355편이 결항했다. 여객선은 102개 항로 154척, 도선은 76개 항로 92척이 운항 중단됐다. 철도는 이날 첫차부터 고속열차 161회, 일반열차 251회, 전동열차 44회의 운행이 중지됐다. 집중호우 피해를 복구 중인 3개 노선(충북·정선·영동 일부)도 멈춰 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태풍 현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으며 대비에 주력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부터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하며 “이번 태풍이 이례적으로 한반도를 직접 관통, 느리게 이동하는 만큼 많은 피해가 우려된다”며 “위험지역에 대한 철저한 통제, 선제적 대피 그리고 재난관리 당국 간 긴밀한 협조가 있다면 소중한 인명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대통령실은 태풍이 북한으로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11일 오전까지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