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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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운동화… 신발에 담긴 세계 역사·문화와 철학

구두를 신은 세계사/태지원/자음과모음/1만6000원

 

신발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인물이 있다. 바로 한때 필리핀의 영부인이었던 이멜다 마르코스다. 이멜다는 남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집권하는 동안 엄청난 권세를 누리다 독재와 부정부패를 견디지 못한 국민의 민주화 혁명으로 쫓겨났고, 부부가 살던 말라카냥 궁에선 1000켤레가 넘는 구두가 발견됐다.

영부인 시절 단 하루도 같은 구두를 신은 날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 이멜다는 “누구에게나 구두를 가지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말했다.

태지원/자음과모음/1만6000원

누구나까지는 아니겠지만, 실제 많은 이들이 신발에 대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한 백화점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역주행하며 수십명이 달려가는 모습의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나이키 한정판 ‘에어 조던’ 골프화를 사기 위한 소위 ‘오픈런’이었다. 때때로 한정판 운동화는 수십만원짜리가 몇백만원에 되팔리거나 1000만원을 넘기는 경우도 있다.

신발에 대한 관심이 현대 상업주의 속에서 갑자기 싹튼 건 아니다. 17세기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는 하이힐을 즐겨 신었고, 귀족들은 이를 따라 했다. 그러다 18세기 유럽에 계몽주의와 합리주의가 퍼지며 남자들은 하이힐을 멀리했고, 당시만 해도 남성을 위한 미적 이미지가 강조됐던 여성의 신발이 됐다. 하지만 미국에서 여성들이 참정권을 외치며 자유의 상징으로 하이힐을 신는 등, 하이힐은 점차 여성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상징하는 물건이 됐다.

우리나라에선 조선시대, 신발이 계급의 상징이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관료는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신었고, 특히 정1품부터 3품까지는 징을 박은 가죽신으로 추정되는 ‘협금화’를 신었다.

부와 지위를 드러내며, 동경의 대상인 신발은 때론 아픈 역사의 기록이며 저항의 상징이 된다. 헝가리 다뉴브 강변에는 갖가지 모양을 한 60쌍의 신발이 놓여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아돌프 히틀러의 추종자들이 이곳에서 유대인을 총으로 쏴 죽이고 밀어 버린 잔혹한 역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조형물이다. 2015년 프랑스 파리 광장엔 2만 켤레의 신발이 놓였다. 기후변화에 맞서기 위한 시위가 프랑스 정부에 막히자, 환경운동가들이 항의의 뜻에서 신발을 전시한 것이다. 1987년 6월 민주화 시위 중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기념관엔 그가 신었던 신발 한짝이 복원·전시돼 있다. 저자는 “한 켤레의 운동화일지라도 역사적인 흔적은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린다”고 말한다.

인간의 발자취인 신발에 대해 어렴풋이 알거나 혹은 몰랐던 흥미로운 장면을 담은 책은 청소년을 위해 쓰여졌지만, 성인이 읽기에도 손색이 없는 ‘인문교양 강좌’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