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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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 집권세력, 지방선거 수도권 수성…‘동방정책’ 마하티르 한 표 행사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연립여당 vs 야권연대, 6개주 ‘3 대 3’ 비겨
야권 “여당의 수도권 독주 저지·사실상 압승”
연정성립 후 첫 선거, 말레이계는 야권 지지
안와르 “개혁동력” vs 마하티르 “연정 불신”

“(야당연합 상징인) 녹색 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었지만, 연립정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정도의 초강풍은 아니었다.” 

 

말레이시아 지방선거에서 예상대로 집권세력과 야권이 ‘3 대 3’ 동률을 기록했다. 12일 말레이시아 전체 13개주 가운데 6개주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집권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희망연대(PH)·국민전선(BN)은 슬랑오르·페낭·너그리슴빌란 3개주를, 야권 국민연합(PN)은 끌란탄·트렝가누·끄다 3개주에서 다수당 지위를 유지했다. 여야가 현상유지를 한 것이다. 

말레이시아 오토바이 운전자가 8·12 지방선거를 사흘 앞둔 9일 쿠알라룸푸르 시내에서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를 배경으로 삼은 선고 공보물 앞을 지나가고 있다. 쿠알라룸푸르=AP연합뉴스

◆ 집권연정 PH·BN, 지난해 구성 이후 첫 선거화음 

 

이번 결과는 PH·BN 연정과 야권연합이 각기 3개주에서 다수당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봤던 여론조사업체들의 선거 직전 전망과 궤를 같이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PH·BN의 연정의 지지세는 확인됐지만, 야권은 선거 승리를 주장할 근거를 확보한 결과였다. 

 

모든 지역에서 당선자를 배출한 야권에 비해 집권세력은 뜨렝가누주에서는 전멸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집권세력에 아쉬움을 안긴 선거였지만,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를 축으로 한 여권은 대표적인 개혁성향 지역이면서 국민소득이 높은 슬랑오르·페낭·너그리슴빌란 3개주 등의 승리를 발판삼아 개혁 속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PH·BN 연정 집권세력이 힘을 합해 선거를 치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세력은 2022년 11월 연정 구성에 합의하기 전까지 적대적 관계를 이어왔다. 그간의 관계 때문인지 이번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완전한 협력 분위기를 보이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BN의 통일말레이기구(UMNO) 측 인사는 페낭주 선거결과와 관련해서 이런 아쉬움을 표출했다. 선거 평가를 바탕으로 연정의 효용성도 향후 내부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12일 말레이시아 지방선거 직후 개최된 기자회견에서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가운데)와 아흐마드 자히드 하미디 부총리(오른쪽) 등 연립정부 지도부가 대화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EPA연합뉴스

◆ 안와르 총리 “모든 정당들, 국가 발전에 동참하자” 

 

안와르 총리는 12일 밤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결과 공개 직후, “혈전을 치른 뒤엔 승패와 상관없이 모든 정당이 평화 수호와 국가 존엄성 집중, 공익 옹호에 힘을 합해 동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이후에도 연방정부가 안정을 유지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BN의 수장으로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아흐마드 자히드 하미디 부총리는 “이제는 단결과 안정 유지를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며 “연정의 참여세력이 협력을 계속하고, 향후 5년간 연정 유지를 위한 시너지 창출을 공고하게 하자”고 밝혔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가 12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지방선거 기자회견을 끝내고 전용차에 탑승해 손을 흔들고 있다. 쿠알라룸푸르=로이터·연합뉴스

야권은 승리했다고 주장했다. 야권 PN을 이끌고 있는 무히딘 야신 전 총리는 “압승했다”고 강조하기까지 했다. 야권의 시각에서 보면 이번 선거는 분명 승리로 기록될 수 있다. 야권의 주장을 따라가 본다.

 

야권은 “끌란탄·트렝가누·끄다 3개주에서 압승을 거두고, 슬랑오르주에서 공고했던 집권세력의 3분의 2 의석 점유율을 저지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끌란탄·끄다 2개주에서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했으며, 트렝가누주에서는 전체 32석 의석 모두를 차지했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지방전거 246석 중에서 야권이 145석을 획득해 전체 의석의 60% 넘게 차지했다. 

말레이시아 연립 여당·정부 지도부가 12일 지방선거 기자회견에 참석해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가운데)의 발언을 듣고 있다. 쿠알라룸푸르=AP연합뉴스

◆ 야권 “투표율 높았다면 압승” 

 

무히딘 전 총리는 “투표율이 높았다면 더 많은 의석을 획득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말레이 원주민 부미푸트라의 정서를 파고든 게 주효했다고 봤다. 무히딘 전 총리는 “PH가 안와르 총리와 중국계의 민주행동당(DAP) 중심이어서 다수 집단인 말레이계의 이익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했던 것을 유권자가 심판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총선을 즈음해 역할이 두드러지는 않았지만, 눈에 띄는 인물도 있었다. 1925년 7월에 태어나 2년 뒤면 100세를 맞이하는 마하티르 모하메드 전 총리다. 지난 2일 쿠알라룸푸르 소재 국립 심장센터에서 치료받았다가 4일 퇴원한 마하티르 전 총리는 지방선거 투표일에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고향인 끄다주 주도인 알로스타에서 아내와 함께 투표를 한 뒤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것이다.

 

그는 투표 직후 “건강은 좋다”며 “야당이 지방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집권세력에 대한 불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야권이 끌란탄·트렝가누·끄다 3개주에서 다수당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집권세력인 PH가 장악한 슬랑오르·너그리슴빌란 2개주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드러냈다. 선거결과는 ‘정치 9단’의 예상대로 나왔지만, 그의 추가적인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 98세 마하티르, 야권연합에 한 표 행사 

 

마하티르 전 총리는 말레이시아 정치사의 산증인이다. 연임을 포함해 2차례에 걸쳐 총리직을 수행했는데, 마하티르 전 총리와 더불어 1980년대 이후 20세기를 호령했던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지역의 국가수반 대부분은 세상을 떠났다. 연임을 거듭했던 첫 총리직은 1981~2003년 수행했으며, UMNO 주축의 BN 연정을 통해 말레이시아 경제 현대화의 초석을 다졌다. 당시 한국과 일본의 경제발전을 본받자는 ‘동방정책’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는 2010년을 전후해 이뤄진 기자와의 몇 차례 인터뷰에서 “말레이시아는 멀리 서구가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가치, 애국심, 사명감, 국가발전 등에서 교훈을 얻는 게 효율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마하티르 모하메드 말레이시아 전 총리(오른쪽)가 12일 끄다주 주도인 알로스타에서 아내와 함께 투표한 뒤 웃고 있다. 마하티르 전 총리실 제공

두 번째 재임기는 2018~2020년이었다. 93세를 몇 개월 앞둔 2018년 5월 연정을 통해 UMNO의 오랜 집권체제에 종식을 가져왔다. 하지만 2020년 연정 내부의 분열로 임기를 끝냈다.

 

2022년 총선에서는 랑카위에서 투쟁당(뻐주앙) 후보로 나섰지만 낙선했다. 지난 2월엔 투쟁당을 탈당해 부미푸트라의 권익을 강조하는 군소정당인 PBPM에 입당했다. 이제는 이슬람 세력이 주도하는 정당 PAS의 PN 연합을 지지하고 있다. 자신과 적대적 관계를 형성했던 PN을 지지하는 이유와 관련, “(중국계, 인도계와 달리) 말레이계가 분열돼 있는데, 함께 했으면 싶어서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총리 재임 시절 말레이시아의 다문화사회를 위해 다른 민족과의 공존에 노력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