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국제사회 기여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인다는 목표 아래 지난 6월 2024년도 유·무상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안으로 사상 최대 규모인 6조8421억원을 의결했다. 순수 인도적 지원만을 놓고 봤을 때도 우리 정부의 올해 예산은 2744억원으로 2022년의 2366억원에 비해 다소 늘었다.
하지만 19일 ‘세계 인도주의의 날’을 맞아 세계일보·공공의창·메디피스가 공동 기획하고 조원씨앤아이가 지난 5, 6일 실시한 여론조사(18세 이상 남녀 1009명 대상·표본오차 ±3.1%포인트·신뢰수준 95%) 결과를 보면 일반적으로 우리 국민은 해외 원조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직접 참여하겠다는 의지는 낮았다. 인도적 지원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다소 정체돼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원조가 필요한 이유와 방법에 대해서도 세계시민 의식에 기반했거나 인도주의적 사고를 하기보다는 국가 중심적 사고에 머물러 있었다. 국제 보건의료 비정부기구(NGO) 메디피스의 신상문 사무총장은 13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진정한 인도주의의 출발은 시민 개개인의 참여로부터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원조 필요” 절반 “참여 의향 없어”
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자 다수는 해외 원조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65.1%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재원 등의 도움을 제공하는 해외 원조가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필요하지 않다는 답변은 25.1%에 불과했다.
실제 ODA 예산 증가가 필요한가엔 답변이 좀 더 신중했다. 어느 정도 찬성한다는 입장이 41.5%, 매우 찬성한다는 입장이 17.9%로 찬성(59.4%)이 반대(34.4%) 응답보다 많았으나 단순히 해외 원조 필요성을 물었을 때보다는 다소 소극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과반수 응답이 해외 원조를 위한 예산 증가에도 긍정적이었다.
NGO 등을 통해 직접 해외 원조에 참여하겠느냐는 질문에는 답변 경향이 바뀐다. 참여할 의향이 있다는 답변은 31.8%에 불과했으며, 절반이 넘는 52.2%가 ‘참여할 의향이 없다’고 했다. 해외 원조가 필요하다고 답한 65.1%의 응답자 가운데서도 절반 가까운 46.6%가 직접 원조에 참여할 의향은 없다는 점을 밝힌 것이 눈에 띈다. 조사를 진행한 김대진 조원씨앤아이 대표는 “해외 원조가 필요하다는 점은 느끼지만 스스로 참여하겠다는 세계시민으로서의 공동체 의식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며 “해외 원조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자발성이 높은) 선진국형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고 짚었다.
참여 의향이 있다고 밝힌 31.8%의 조사 대상자 중 절반가량은 금전적 기부(48%)를 참여 방법으로 꼽았다. 이어 자원봉사활동(27.5%), 글로벌 캠페인 참여(18.1%) 등 순서였다. 바람직한 해외 원조 활동 유형으로는 재난 긴급구호활동(27.3%)을 꼽은 응답이 가장 많았다. 평시에도 원조가 필요하다고 보기보다는 재난 등 긴급 구호 수요가 있을 때로 원조 필요성을 한정해 인식하는 경향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튀르키예 지진, 수단 내전 등 긴급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해외 원조 필요성이 자주 언론에 보도되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국가 중심적 사고에 갇힌 해외 원조
원조가 필요한 이유로는 ‘과거 한국도 원조를 받아서’(35.2%)와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위상 제고를 위해서’(31.3%)라는 답변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큰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해서’라는 답변도 12.7%로 비중이 작지 않았다. 반면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해서’(20.0%)라는 답변의 비중은 높지 않았는데, 국내 해외 원조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인도주의적, 인권 중심적 사고에 기반했다기보다는 국가 중심적 관점에서 형성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도움을 받았으니 외국을 도와줘야 한다거나, 한국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방편으로 해외 원조를 한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개인이 직접 원조에 참여하기보다 정부 기관이 나서 해외 원조를 늘리는 방식을 더 친숙하게 느끼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ODA가 국가 위상 제고에 중요하다고 보는 응답은 조사 대상자의 70.8%로,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11.6%에 비해 절대적으로 다수였다.
해외 원조가 필요하지 않다고 답변한 응답자들은 절반 이상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로 ‘국내 빈곤층 문제가 더 크다’(60.9%)는 점을 들었다. ‘북한이나 해외 동포를 먼저 도와야 한다’(12.0%)는 답변도 있었다. 모두 해외 원조를 국가 중심적으로, 혹은 민족주의적인 시각에서 보는 사고를 보여 준다. 특히 조사 대상자 전체를 상대로 정부의 해외 원조나 개인의 해외 후원보다 국내 빈곤층 지원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얼마나 동의하느냐고 물었을 때 절대 다수(85%)가 동의한다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