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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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 ‘준비 부족’ 알고도 손놓았다 [‘잼버리 파행’ 책임규명]

17개 부처·전북도 등 40여명
호우·폭염·배수시설 현황 등
올 3월부터 2차례 안전점검
미비점에도 보완 없이 강행

환경단체 부지매립 중단 요구하며
이미 매립된 대체부지 제시했지만
여가부, 공사 진척·안전 이유로 거부

침수·배수대책 대회직전도 문제 제기
야영지 전기설비도 절반만 적합 판정
‘침수 텐트’ ‘화장실 불결’ 등 총체적 부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가 개최되기 이전 숱한 문제들이 지적됐지만 잼버리 조직위원회와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가 이런 경고에 귀를 닫으면서 대회는 ‘예고된 파행’을 낳았다는 지적이다. 잼버리 운영을 사실상 책임진 전라북도는 중앙정부와 조직위에 책임을 미루며 반발, 빈축을 샀다. 감사원 등의 조사 과정에서는 전북과 잼버리 조직위, 여가부의 잼버리 파행 책임이 집중적인 검증 대상이 될 전망이다.

지난 8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에서 각국의 스카우트 대원들이 철수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행정안전부와 여성가족부·문화체육관광부 등 17개 중앙부처, 전북도와 전기·가스안전공사 등 유관기관, 민간전문가 등 40여명은 지난 7월11∼13일 새만금 행사장에 대해 안전 전반을 점검했다. 이 기관들은 지난 3월에도 1차 안전점검을 실시했다.

점검 내용은 하나같이 잼버리 파행을 낳은 원인들이었다. 정부는 주요 점검사항으로 △태풍·호우 등 대응체계와 배수시설 정비현황 △폭염 쉼터 등 온열질환자 구조·구급 대응 체계 △식중독 예방 관리대책을 꼽았다. 또 다중인파 사고 관리대책과 소방·가스·전기 등을 들여다봤다. 정부는 점검에 앞서 보도자료를 통해 “분야별 점검 결과 즉시 개선이 필요한 사항은 바로 조치하도록 하고, 시일이 다소 소요되는 시설에 대해서는 행사 전까지 조치되도록 조직위원회 등에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며 “편의시설 등 아직 미설치된 시설에 대해서도 관련 기관에서 추가 안전점검을 별도로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잼버리 후폭풍 벨기에 잼버리 대표단이 지난 1일 공식 인스타그램에 게재한 물웅덩이 위의 플라스틱 팔레트에서 텐트를 치는 모습. 벨기에 잼버리 대표단 인스타그램

새만금 세계잼버리에서 수백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하고, 비가 오자 물웅덩이가 고였으며 곰팡이 핀 계란이 공급됐다. 점검 결과 준비 부족이 확인됐는데도 보완 조치 없이 대회는 치러졌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실이 전기안전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잼버리 야영지 시설 안전점검 현황’을 보면 개영식 전날인 지난달 31일 기준 전체 343곳의 전기설비 가운데 적합 판정은 198곳(58%)에 불과했다. 안전 부적합은 58곳, 미시공은 87곳에 달했다. 주로 화장실과 샤워실의 누전 위험이 지적됐다.

정부 관계자는 “안전점검은 이미 설치된 시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기설비라면 누전 위험이 없는지, 배수펌프가 물에 잠겨 사고가 나지 않을지, 덩굴터널이 무너지지 않을지 등을 확인한다”며 “당시 점검이 제대로 됐는지, 점검 결과에 따른 권고 조치가 사후 제대로 이행됐는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연합뉴스

◆‘펄밭 부지’ 선정 옹호한 여가부… 수차례 경고음 모두 무시

 

잼버리 주무부처인 여가부는 3년 전 지역 환경단체의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부지 매립공사 중단 요구에 “안전한 행사장 조성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회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여가부가 전북도의 잼버리 부지 매립공사를 엄호한 셈이다.

 

여가부의 ‘잼버리 부지 조성공사 중단 요구 등에 대한 의견 회신’ 자료에 따르면 여가부는 2020년 8월 전북환경운동연합 측 공사 중단 요구에 대해 “잼버리 부지 매립사업은 제19차 새만금위원회(2017년 12월6일)의 심의 의결을 거쳐 진행하게 됐으며 현재는 상당히 진척(약 60%)된 상태”라고 밝혔다. 공사가 상당 부분 진행된 점을 들어 공사 진행의 불가피성을 설명한 것이다. 여가부가 이 같은 의견을 회신한 건 문재인정부 임기 때이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은 당시 잼버리 부지로 공사가 진행 중이던 해창 갯벌이 “갯벌 원형이 남아 있고 인근 하천과 연결하면 기수역(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구역)으로 복원하기 용이하다”며 공사 중단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단체는 신시도-야미도 부지와 계화도 부지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이와 관련해 “당시 여가부에 관광레저용지인 신시도와 야미도 사이에 20만평 이상 부지로 대체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냈다”며 “시간이 촉박하니깐 그 시점에 이미 농업용지로 조성돼 있던 계화도 쪽 부지를 공사하는 게 안정적으로 야영장을 확보하는 데 더 낫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오후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 내 잼버리 병원에서 온열질환자가 치료를 받는 모습. 연합뉴스

여가부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세계 각국 5만여명의 청소년이 한곳에 모여 진행하는 행사의 특성상 안전한 행사장 조성이 필요하다”며 “수면에서 노출돼 있는 부지에서의 행사 개최는 침수피해 등 안전 문제와 함께 행사 준비·운영에 차질이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답했다.

 

다만 여가부가 우려했던 “침수피해”는 결국 현실이 됐다. 잼버리 야영장은 대회 직전까지 배수가 원활하지 않아 물에 잠겼고, 실제 태풍 카눈 예보로 침수 피해 우려가 커지자 조기 철수 결정까지 내려졌다.

 

윤석열정부 들어서도 여가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잼버리 대회를 코앞에 두고 수차례 진행한 현장점검 또한 결과론적으로 보여주기에 그쳤기 때문이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대회를 일주일여 앞두고 임상규 전북도 행정부지사, 권익현 부안군수 등과 함께 현장점검을 벌였다. 여가부는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주요 자연재난에 대한 대응체계 및 배수로 정비상황” 등을 중심으로 점검했다고 밝혔다. 화장실, 샤워장 등 영지시설도 점검했다. 6월에도 다른 공동조직위원장들과 함께 잼버리 일정·분야별 준비사항을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도 내·외곽 배수로 정비, 강제배수시설 설치 등 침수·배수 대책이 논의됐다. 그러나 실제 대회가 시작된 이후 현장점검에서 대책을 논의했던 침수·배수는 탈이 났고, 화장실·샤워장 위생 문제 또한 외신을 통해 지적됐다.

 

김관영 전북도지사가 14일 전북도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 사태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전북도 제공

이날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잼버리 운영 파행에 사과를 표명하면서도 업무 분장에 비춰볼 때 중앙 정부와 조직위원회가 1차적인 권한을 가진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조직위가 예산, 운영 권한 등을 틀어쥐고 있어 개최지인 전북도의 자체 역할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잼버리 개최를 활용해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을 구축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허위사실로 전북도민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잼버리 특별법에 따라 조직위 결제, 지침 등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며 “폭염에 대비한 덩굴터널 설치와 화장실, 샤워장 등 부대시설 준비에 대해서는 조직위에서 준비했고 역대 대회에 비춰볼 때 적지 않다는 의견에 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폭염이 예상보다 심각하고 청소인력 부족 등 문제가 불거져 유감”이라고 했다.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김윤덕 공동조직위원장이 14일 전북 전주시 전북도의회 기자회견장에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모습이다. 전주=뉴시스

김 지사는 인력 문제와 관련, “조직위가 2020년 7월 출범 초기 정부와 민간 인력조차 확보하지 못해 전북도가 정원의 절반이 넘는 공무원 71명을 파견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또 “화장실 청결 문제와 샤워장 추가 설치, 해충 방체 등에 대해서도 사전에 수시로 건의했는데 문제없다고 해 신뢰했다”며 “정부 부처와 조직위가 운영 예산 등에 관한 권한을 가지고 있어 전북도로서는 큰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새만금 잼버리를 구실로 수조원의 예산을 썼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그는 “새만금 사업은 잼버리를 유치하기 훨씬 이전인 노태우 정권부터 30년 넘게 국가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10조원 규모의 SOC 사업은 잼버리와 관계 없이 새만금 기본계획(MP)에 따라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김승환·송은아 기자, 이강은 선임기자, 전주=김동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