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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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트라우마 때문” 굉음에 놀라 흉기 들고 대학로 배회한 60대…시민 1015명 선처 탄원

이상 SBS 뉴스 영상 갈무리

 

서울 번화가에서 흉기를 들고 배회한 60대 남성을 위해 시민 1000여명이 선처를 요청했다.

 

22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최근 60대 남성 박모씨에 대한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시민 1015명이 박씨를 선처해달라며 탄원서를 제출했다.

 

지난 17일 박씨는 흉기를 든 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일대를 5분간 돌아다니면서 소리 지르다 경찰에 검거됐다.

 

그는 정신연령이 3∼7세인 중증 지적장애인으로 장애 특성상 소리에 민감한데 오토바이 굉음에 놀라 집에 있던 흉기를 들고 밖으로 나오면서 소동이 벌어졌다. 다친 피해자는 없었다.

 

박씨가 검거되고 19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그를 아는 이들이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19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총 3시간 동안 모인 탄원서는 총 1015건.

 

탄원서를 제출한 이들은 시민단체 ‘홈리스행동’ 활동자들이다. 이 단체는 2002년 거리에서 노숙하던 박씨를 처음 발견했고 20년 넘게 박씨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

 

탄원서에 활동가들은 “A씨가 흉기를 들고 다녀 불안감을 조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장애 특성과 생애 과정을 고려하면 구속은 적절하지 않다”며 “1983년 무호적 상태에서 호적을 취득해 주민등록증에 기재된 나이보다 열 살가량은 나이가 많고 여러 지병이 있어 물리적으로도 범행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박씨를 잘 안다는 한 활동가 역시 탄원서에 “박씨가 몇 번이고 하던 말이 ‘나 옛날에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무척 많이 맞았다’는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가해보다는 자기방어 수단이었던 거 같다. 구속보다는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선처해주실 것을 탄원드린다”고 간청했다.

 

홈리스행동의 한 집행위원도 “저를 비롯한 홈리스야학의 모든 구성원들이 그가 누구에게 위협을 가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과거 어려웠던 생활과 국가폭력(형제복지원)의 트라우마와 취약해진 건강으로 인해 종종 울분을 느꼈고, 큰소리로 마음속 응어리를 푸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소리를 내곤 했으나 어느 누구에게도 폭력을 행사한 적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은 범죄의 중대성과 도망 염려 등을 이유로 지난 19일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한편, 22일 MBN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했다. 입주 전엔 고아원, 미인가 종교시설, 부랑인 시설을 떠돌았고, 부산의 ‘형제복지원’에서도 지냈다.

 

시설 탈출 뒤 서울 중구에 있는 회현역에서 노숙 생활을 하다 2002년 시민단체 홈리스행동 활동가들을 만나게 됐다. 당시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아 활동가들이 호적 취득을 도왔고, 박씨는 시설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활동가들의 노숙인 지원을 함께 도왔다고 한다.

서울중앙지검 제공


정경인 온라인 뉴스 기자 jinori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