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순은 달항아리를 구어 내는 도예가다. 1975년 도자기에 입문하여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조선백자의 맛을 구현해왔다.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은 일찍이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과 김환기 화백이 찬사를 보낸 바 있다. 최순우 선생은 ‘백자달항아리에서 한국의 흰 빛깔과 공예 미술에 표현된 둥근 맛은 한국적인 조형미의 특이한 체질 가운데 하나’라고 보았다. ‘폭넓은 흰 빛의 세계와 부정형의 원이 그려 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도 하였다. 김환기 화백은 ‘자신의 교과서는 도자기일지도 모른다’고 고백을 했을 정도로 백자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그는 달항아리를 만들기 위해 직접 흙을 채취해 굵은 돌들은 분쇄하고 불순물을 걸러내는 수비(水飛)작업을 통해, 백색의 태토를 만들어 장작 불가마에 직접 구워내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조선백자 전통 방식의 맥을 잇고 있다. 달항아리 하나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흙과 불의 조화와 함께 매 제작과정에 세심하고 많은 공력이 들어간다. 인간의 노력에 자연의 조력이 더해져야 온전한 달항아리 하나가 탄생한다.
일본의 근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서정시인 무로 사이세이(室生犀星 1889~1962)는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에 관한 글을 ‘이조부인李朝夫人’이라는 제목을 달아 1956년 쿠라시노테쵸우暮しの手帖(삶의 수첩)에 기고한 바 있다. 그는 백자의 무한하고 둥근 아름다움을 인간의 육체에 비유할 정도로 백자에서 인격을 발견하기도 했다.
무로 사이세이는 태평양 전쟁 종전 후, 가루이자와의 한 미술품 점에서 조선의 백자 항아리를 보게 된다. 백자의 부푼 몸통은 보름달처럼 아름답고, 질감은 여자의 피부처럼 섬세하고 유백색 유약에 몽환적인 옅은 녹색이 비쳤는데 그것은 꿈결처럼 희미한 황갈색의 광선상태로 보였다. 그것들은 색이 있다고는 하겠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며, 색이 없다고 보면 유백 그 자체의 색조 같기도 했다고 말한다. 미술품점의 주인과 오랜 흥정 끝에 백자를 소유하게 된 무로 사이세이는 그 보름달 같은 백자를 가까이에 두고 아끼게 된다. 도자기에 대한 애착이 극에 달한 경지는 역시 매일 도자기를 만져야만 하는 기분이었을 정도로 백자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다.
그는 실제로 1957년 <이조부인>을 표제로 한 수필집을 발간했다. 조선의 백자는 자국민을 비롯한 외국인에게도 한결같은 인상을 주면서 사랑받아 왔다. 백자는 인간이 빚어낸 사물이지만, 무심하되 넉넉한 인품을 가진 인격체와 같이 감각을 초월해 다가오는 까닭이다. 벨기에의 디자이너이자 아트컬렉터로서 명성이 높은 악셀 베르보르트,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도 그의 작품을 자신의 공간에 앉혔다.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선생도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는 이용순의 달항아리를 두고 ‘형식이나 테크닉을 뛰어넘은 경지가 느껴진다’면서, ‘생존 달항아리 작가 중 최고’라고 평했다.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는 카게에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 작가를 소개하는 공간이다. 후지시로 세이지에게 빛과 그림자는 상반된 성질의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관계선상에서 해석된다. 그는 화면에 그림자를 허락하여 빛의 아름다움을 선보임으로써, 우리에게 이 세상을 살아갈 위로의 말을 전한다. 그가 거장인 까닭은 오로지 작품으로 이 단순한 진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달항아리 역시 가장 단순한 형태로 자연의 섭리를 풀어낸다는 데서 궤를 같이한다.
강혜숙 아트 디렉터는 “이번 전시회는 빛과 그림자를 평생의 화두로 다루어 온 그림자그림의 거장의 작품과 조선의 달항아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순간은 예술로 소통하는 경지가 무엇인지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25일부터 9월24일까지 서울 종로구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