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해양방류하기로 발표한 다음날인 23일 부산 자갈치시장을 찾았다. 부산을 넘어 전국을 대표하는 수산물시장으로 평소 인파로 북적이던 자갈치시장은 활기를 찾기 어려웠다. 기자가 이날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에 걸쳐 자갈치시장과 인근 신동아수산물종합시장 및 자갈치 난전(노점상) 등을 돌아본 결과,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매장은 썰렁했고 손님보다 상인이 더 많았다.
해당 시간 자갈치시장을 찾은 손님은 총 6개 팀에 불과했다. 이 중 한 팀은 남미 칠레에서 관광을 온 가족들이고, 나머지 5개 팀만 내국인이었다.
친구 부부와 함께 부부동반으로 자갈치시장을 찾았다는 서경애(67)씨는 “최근 식재료를 비롯한 생필품 가격이 크게 인상돼 가계 부담이 크다”며 “상대적으로 저렴하던 수산물까지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로 안전문제가 제기돼 식단을 어떻게 준비해야 될지 난감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내일부터 원전 오염수를 방류한다고 하니 오늘까지만 회를 먹고, 내일부터는 생선을 일절 먹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한창 영업 준비로 바빠야 할 상인들은 대부분 손을 놓은 상태였다. 자갈치시장에서 40년째 꼼장어 장사를 하고 있다는 송용주(63) 사장은 “일본이 원전 오염수를 방류한다고 곧바로 한국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닌데, 정치인이나 언론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며 “지난 3년간 코로나19에다 최근 단가 상승으로 힘든데,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까지 겹치면서 솔직히 버티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인근 신동아수산물종합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40년째 활어장사를 하고 있다는 장한상회 박동규(64) 사장은 “3개월 전부터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소식에 손님이 하나 둘 줄더니 어느 순간 절반 이상 줄었다”며 “정치인들이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언론이 이를 받아 보도하는 행태가 지속되면서 상인들만 죽어날 판”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또 다른 활어가게 김영순(72·가명) 사장은 “자갈치시장에서만 37년째 장사를 하고 있지만, 코로나19때도 지금보다는 나았다”며 “지난달부터 손님이 절반으로 줄더니 어제부터 아예 뚝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새벽부터 나와 하루 종일 장사를 해도 2~3팀 받기가 어렵다. ‘가짜뉴스’ 때문에 죽어나는 것은 상인들”이라며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는 이미 결정된 것이고, ‘안심하고 먹어라’고 해도 부족할 판에 정치인들이 나서서 ‘(수산물을) 먹지 말라’고 부추기면서 국민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한결같이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진정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정치인들이 오히려 국민 불안을 야기하고 생업을 방해하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자갈치시장의 한 여성 상인은 “정부에서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가 인체에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발표했는데도, 야당에서 굳이 문제를 제기하는 바람에 상인은 물론 어업인들까지 생계가 막막하게 됐다”고 한탄했다.
자갈치시장의 또 다른 명물인 ‘난전’은 사정이 더 열악했다. 자갈치시장 주변 바닷가를 따라 길게 늘어선 생선가게 및 꼼장어가게들은 대부분 냉동수산물만 취급하기 때문에 활어가 대부분인 일본산 수산물은 일절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찾는 손님이 없어 꼼장어가게들은 파리만 날리는 신세가 됐다.
자갈치시장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한 70대 여사장은 “전기세와 수도세 등 고정 지출은 정해져 있는데, 수입이 절반으로 줄어 장사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 중”이라며 “추석 대목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원전 오염수 때문에 제수용품도 안 팔린다”고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