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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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경보 울리자 도심 정적… 기업들 실전처럼 대피 훈련

6년 만에 실시된 민방위 훈련

시내 일부 구간 차량 운행 통제돼
영화 상영 중단되고 시민들 대피
HD현대중공업, 인명 구조·화재 진압

대피소인 공덕역은 훈련 미실시
시민들 역사 밖 통행 제지 안 해
대피소 비상품 구비 자치구 3곳뿐

“가까운 대피소나 지하 시설로 대피하시고, 통제구간의 운행차량은 도로 오른쪽에 정차 후 라디오를 청취하시기 바랍니다.”

 

23일 오후 2시를 기해 전국에 공습 대비 민방위 훈련 시작을 알리는 경보가 발령됐다. 공습 대비 민방위 훈련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 공습 상황에서 대피하는 요령을 익히는 훈련이다. 전국 단위로 일반 국민까지 참여하는 공습 대비 민방위 훈련은 남북 긴장관계 완화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2017년 8월 이후 중단됐다가 이날 6년 만에 실시됐다.

공습대비 민방위 훈련이 실시된 지난 23일 지하철 시청역에서 시민들이 지하철보안관 안내를 받으며 대피를 하고 있다. 뉴스1

훈련 공습경보가 울린 뒤 15분간 일부 구간에서 차량 운행이 통제됐고, 대형마트와 영화관 등 다중이용시설 480곳은 시민들의 대피를 유도하는 등 방식으로 훈련에 협조했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한 멀티플렉스 극장 앞에는 빨간색 출입 통제선이 놓여 있었다. 극장 직원 2명은 입구에 서서 들어가려는 관람객들에게 “민방위 훈련 끝날 때까지 입장이 어렵다”고 안내했다.

 

멀티플렉스 극장 CGV는 이날 훈련이 진행되는 오후 2시부터 2시20분까지 아예 영화를 상영하지 않았다. CGV 측은 서울 기준 29개 상영관 중 12개 상영관에서는 관람객과 함께 대피 훈련도 진행했다고 밝혔다.

 

직원들끼리 훈련을 진행하는 곳도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 한 대형마트에서는 공습 경보가 울리자 직원들이 매장 한 곳에 모여 대피 요령을 교육 받았다. 마트 관계자는 “고객들에게 훈련에 동참하라고 강제할 수 없어 직원들만이라도 동참했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울산시청에서 열린 공습 대비 민방위 대피 훈련에서 공무원들이 지하주차장으로 대피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른 기업들도 비상상황 매뉴얼대로 분주히 움직이며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진행했다. 울산 동구에 위치한 HD현대중공업은 사이렌 발효 직후 건조 중인 선박에 적의 포탄이 떨어진 상황을 가정, 인명구조와 화재진압 조를 정해 훈련에 임했다. 북한 미사일 공습에 대비해 직원들이 대피소로 이동하는 훈련도 했다. 북구에 있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과 남구 석유화학단지에 있는 SK에너지 등은 차량 출입을 통제하면서 직원의 건물 밖 출입을 제한했다.

 

다만 대다수 시민들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냈다. 안전디딤돌 앱에 민방위 대피소로 등록된 서울 마포구 공덕역 지하 1층은 시민들 휴대전화에서 경보음이 울렸을 뿐, 특별한 훈련이 진행되지는 않았다. 오후 2시부터 15분간 지하철에서 내려도 지하철역사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공지된 바 있지만, 시민들을 통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시민들은 평소처럼 편하게 역사를 드나들었다.

공습대비 민방위 훈련이 실시된 지난 23일 지하철 시청역에서 시민들이 대피를 마치고 나서고 있다. 뉴스1

시민들은 민방위 훈련에 대한 안내가 부족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공덕역에 있던 직장인 장연지(29)씨는 “(지난 5월31일) 경계경보 오발령으로 대피 요령을 알아두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는데, 오늘 훈련을 보면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장씨는 “실제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의 훈련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피소 시설 문제도 제기됐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청사 민방위대피소에 의약품 등 비상용품을 구비하고 있는 구청이 단 3곳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소영철 시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 25개 자치구 중 청사 민방위대피소에 ‘민방위기본법 시행규칙’에 따른 시설, 장비, 물자를 확보한 구청은 광진구, 동대문구, 양천구뿐이었다. 용산구, 성동구, 마포구 등 2만명 넘게 수용할 수 있는 구청 대피소들도 비상용품은 하나도 갖추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비상용품 미보유 자치구들은 “행정안전부 민방위 업무 지침상 1일 미만 단기 대피소의 비상용품 준비는 의무가 아닌 권장 사항”이라고 해명했다.

 

서울지역 재난,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컨트롤타워가 돼야 할 서울시는 본청에만 민방위 대피 시설을 갖춘 것으로 확인됐다. 서소문청사·서소문2청사는 본청(1933명)보다 많은 2761명의 직원이 상주하는 데도 자체 대피소가 없다.


조희연·윤준호·구윤모 기자, 울산=이보람 기자